시발비용이 쏘아올린 작은 고찰
할부도 아닌 일시불로 한 달 용돈의 대부분을, 너무나 섬세해 일 년에 세 번도 채 입지 않을 것이 뻔한 실크 소재의 원피스를 주문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제 영수증 창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뭐 하니, 너?"
한 달 동안 브랜드 웹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군침 흘렸던 원피스다.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어치파 전 사이즈 품절된 지 오래된 상태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중고 사이트들을 샅샅이 훑어봐도 찾을 수가 없어, 인연이 아니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원피스다. 하필이면 잔뜩 고대하며 준비했던 영화지원금사업에서 떨어지고 마음에 비죽 배죽 가시가 돋쳐있던 다음날, 그 원피스, 다른 사이즈도 아닌 딱 내 사이즈만이 재입고되어있던 것은 자본주의의 신의 장난이었으리라.
지름신, 스튜핏, 멍청비용, 시발비용. 충동구매를 나타내는 말들이 언제 이렇게 많아진 걸까. 시발비용, 누가 떠올렸는지는 몰라도 참 마음에 든다. 충동구매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속에서 올라오는 깊은 빡침을 해소하기 위한 구매였음을 잘 보여준다. 멍청비용. 차가운 이성으로는 절대 하지 않았을 소비였음을 참 적절히 나타내 주는 것 같다. 이런 단어들이 생겨나고 사랑받는 것을 보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피식 웃게 된다.
지원금사업에서 거절의 메일을 받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수도 없이 많이 받았다. 거절의 메일은 어떤 단체에서 보냈든 항상 자로 잰 듯 똑같다. 보통 "Thank you (고맙지만)"로 시작해 "Unfortunately (안타깝게도)" 혹은 "We regret to inform you (알려드리게 되어 유감이지만)"로 끝난다. 유감이지만 안타깝게도, 합격이나 승낙의 메일은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어떤 말들이 쓰여 있는지 모른다. 4년간 꾸준히 작업했던 영화 대본이 계속해서 물만 먹을 때, 상처받은 마음을 즉각적으로 즐거움으로 달래 주는 건 어찌 보면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시발비용'이나 '멍청비용'이라는 표현들은 그런 즐거움을 선택한 사람들의 후회를 내포한다. 보통 나를 열받게 했던 문제는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이고, 반짝이 쾌락 후에는 줄어든 통장 잔고와 늘어난 신용카드 요금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 번쯤 그럴 수도 있지."가 아닌 것이, 사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침구는 주기적으로 세탁해 주어야 하고, 먼지는 쌓이면 털어줘야 하고, 쓰레기는 잘 분리해서 내다 버려야 한다. 먹기 위해선 장을 봐야 하고,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선 관리비를 내야 하고, 키우는 반려동물이 아프다면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싫은 상사의 잔소리는 참고 재미있지 않은 농담에 웃어줄 정도의 사회성은 있어야 한다. 과감하게 퇴사를 하고 꿈을 좇을지, 현상유지를 하며 소소한 곳에서 기쁨을 찾을지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가족 혹은 친구들과 사소한 일로 멀어지기도 가까워지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나날들 속에 화가 나고 속상한 일들은 잧게 찾아오기 마련, 그때마다 카드를 시원하게 긁을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다면 실망에, 분노에, 설움에, 좇같음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오늘 아침 나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플스 5로 엘든링을 플레이할 수도, 헬스장에 가서 무게를 치고 땀을 낼 수도, 덴버의 한인식당에 가서 한국음식을 양껏 먹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선택지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원피스를 구매하고 난 후 찾아온 자기혐오는 이런 무력감을 더 짙게 만들 뿐이었다.
내가 싫어, 세상이 싫어. 꼬리를 물고 찾아오며 엉켜가는 생각의 타래들에, 무거운 실망감에 타는 듯한 가슴에 한동안 몸을 맡기는 것은 쉬웠다. 얼마간 달콤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위험했다.
"그만 생각하자."
일단, 샤워를 했다. 나를 소중히 여겨주고 싶었다.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고, 망고 향기가 나는 비누로 몸을 씻었다.
샤워를 했으니 오늘 운동은 안되겠다 변명을 주는 나 자신을 보며 힐끔 웃었다.
깨끗한 몸에 다시 목 늘어난 티와 고무줄 바지를 입고 싶지가 않아서, 정성껏 관리한 체리빛 스웨터와 까만 바지, 데님 재킷을 꺼내 걸쳤다.
깔끔하게 입고 나니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지?
멀리는 싫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커피숍에 가자.
가서는 뭐 하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며칠 전 읽기 시작한 소설책,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데 주로 사용하는 아이패드, 대본 작업을 하는 노트북, 일기를 쓰는 다이어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전기.
"그만 생각하자."
일단 도착해서 마음이 가는 것을 하자 싶어 그 모든 것을 바리바리 챙겼다.
브런치스토리 계정을 만든 지는 꽤 됐지만, 한 번도 글을 쓰진 않았다. 브런치스토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본 작업이나 일을 영어로 하는지라, 한글로 글을 쓴 지도 한참 되었다. 오늘 아침,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갑자기 짧은 글을 한국어로 써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시작하고 나니 의외로 술술 문장들이 찾아왔다.
훌쩍 두 시간을 보내고 나니, 더 이상 내가, 삶이, 싫지는 않았다.
글을 쓰는 건 역시 재밌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게 재밌으니까, 글을 쓰는 걸 멈출 필요는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걸 멈추지 않을 거라면 다시 대본을 다듬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삶이 던지는 물음표들을 예측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그 물음표들에 대처하는 것은 나의 통제 아래 있다.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주변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아니면 영화를 제작하며 사람들과 연결되는 경험이 소중해서?
영화를 만든다는 꿈은 언제 접어야 하는 걸까.
한번 더 거절의 메일을 받았을 때? 아니면 더 이상 이야기를 쓰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할 때?
대본이 계속해서 거절당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고차원적인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심사위원들을 비난할까?
아니면 어디 보완할 곳이 있는지 다시 읽어보고 고민해 볼까?
가슴을 똑바로 펴고, 흐려지지 않은 맑은 눈으로, 신중히 다음 발걸음을 위한 대답을 선택해야 한다.
앞으론 절대 다시 시발비용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으련다.
약속은 못하지만 다짐은 하겠다.
원피스를 환불할지 말지는, 도착하면 입어보고 결정하겠다.
이미지 출처 - [마리 앙투아네트 (2006)] by 소피아 코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