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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정치

몸이 먼저 반응하는 감정들

by 정물루

인간은 보통 '역겨움'을 숨길 수가 없다. 역겹다는 감정은 생각보다 몸에 먼저 반응하는, 묘하게 끈적한 감정이다.


사라 아메드는 <감정의 문화정치>에서 ‘역겨움(Disgust)’을 감각적 거리의 정치학으로 본다. 우리는 역겨운 것을 보면 피해야 하는 게 맞는데, 이상하게도 그쪽으로 몸이 끌린다. 다시 쳐다보고, 더 알고 싶어지고, 결국 역겨움이 나를 붙잡는다. 멀리해야 할 것을 오히려 더 들여다보게 만드는 모순된 그 감정.


‘공포(Fear)’도 비슷하다. 공포는 우리를 위협의 대상과 멀어지게 하지만, 같은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끼리는 반대로 결속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공포의 대상을 함께 배척한다. 그리하여 우리만의 안전한 공간을 만든다.


9·11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이슬람포비아가 그 대표적 예다. 당시 피해자였던 미국의 주도 아래, ‘아랍인은 곧 공포의 대상’이라는 방정식이 세상에 널리 퍼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자기의 공간에 들이지 않으려 했고, 공포는 차별의 문화를 만들었다.


13년전 두바이에서 잡오퍼를 받아, 두바이로 이주를 한다고 하니까 한국에서 주변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위험하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돈이 필요하냐 등등. 하지만 두바이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이곳이 얼마나 안전하고 특히 아이와 여성을 위한 시스템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를.


한국은 대부분의 세계 뉴스를 미국과 유럽 미디어를 통해 접한다. 할리우드, OTT, CNN, BBC - 이들이 보여주는 세계의 프레임 안에서 우리는 타자를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느끼는 공포를 우리도 무심코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국의 지식계층이나 경제인의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 많아 이들에게 편중된 인싸이트를 나도 모르게 흡수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두바이에 와서야 알았다. 이 지역 사람들과 이슬람 문화에 대해 내가 얼마나 몰랐는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역겨움과 공포의 시선을 주입받았는지를. 진짜 무서운 건, 아마도 그 ‘보이지 않는 감정의 전염’일지도 모른다.




2024년 베를린에서 열린 스티브 사벨라(Steve Sabella)의 개인전 작품 중 하나가 떠올랐다. 멀리서 봤을 때는 르네상스나 중세 교회의 벽화 같았다. 웅장하고 화려한 색감, 그리고 수많은 요소들이 뒤엉켜 엄청난 서사를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가까이 클로즈업된 이미지들을 보니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77년 동안, 어끄제 끝내기로 했던 전쟁까지 여섯 차례의 전쟁을 치루고 수많은 분쟁, 무력 충돌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멀리서보면 인류의 시작과 구원을 그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끝나지 않은 고통의 서사다. 그는 디지털 이미지와 사진작가들의 기록을 콜라주해서 '무한(Infinity)'을 의미하는 우주 공간과 결합시켰다. 여기서 우주는 지구의 지도에서는 사라졌지만, 기억과 상상 속에서는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존재를 뜻한다. 팔레스타인의 집단적 기억, 그리고 해방의 염원을, 그는 현대의 ‘프레스코’로 새겨넣었다.


이스라엘은 늘 미국이라는 든든한 백을 등에 업고 전쟁을 이어왔다. 9·11은 물론 엄청난 비극이었다. 하지만 궁금해진다. 왜 그렇게 많은 전쟁과 학살을 일으킨 미국과 서구는 한 번도 공포의 주체가 된 적이 없을까? 왜 이슬람포비아는 존재하지만 ‘백인포비아’는 없을까?


Image 13.jpeg 스티브 사벨라의 <The Great March of Return, 2020>, (출처: 스티브 사벨라의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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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9.jpeg <The Great March of Return>의 상세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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