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여성 예술이 전하는 이야기
감동은 고통을 이겨낸 이야기에서 온다고 한다. 즐거운 일보다 힘든 일을 함께 겪거나, 그걸 함께 헤쳐 나가면서 생기는 동지애가 더 오래 남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자꾸 꺼내 보게 된다. 그래서 육아를 함께하는 남편과 그런 ‘애’가 생기는 걸까.
‘전쟁 같은 육아’를 함께 겪으며 싸우고, 울고, 웃다 보면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도 깊이 공감하게 된다. 지금 그 과정이 현재진행형이라면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는 없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 보면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며 위로를 받는다. 어쩌면 설명하기 어려운 힐링도 그런 데서 오는 것 같다.
예술이 주는 감동도 비슷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밤새 보면서 울고 웃는 순간, 우리는 결국 내 과거와 기억을 떠올린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본다. 모든 일이 나와 어느 정도 연결되어야 관심이 생기고, 감정도 움직인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그곳 사람들의 고통보다 ‘그 상황에 처한 나’를 상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두바이에서는 정치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위나 파업 같은 연대의 행위도 없다. 다들 쉬쉬하며 불편한 마음으로 전쟁 소식을 지켜본다. 그러던 중 지난달, 이스라엘이 카타르 민가에 있는 하마스 고위 인사를 제거하기 위해 폭탄을 투하했다.
두바이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 도하의 영상 속 폭발 장면은 어쩐지 두바이의 주거 지역과 닮아 있었다. 그날 이후,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가자지구의 일이 아니라, 이제야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유독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어쩌면 내가 여자라서 그런 장면에 더 눈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로서, 딸로서, 아내로서의 팔레스타인 여성들.
주말에 아부다비에서 열린 네 명의 팔레스타인 여성 작가들의 그룹전을 보았다. 전시 제목은 ‘유산, 기억, 그리고 몸 (Heritage, Memory, and The Body)’. 두 명은 팔레스타인에서, 또 다른 두 명은 두바이에서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역사, 유산, 그리고 회복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품 속 여성의 몸은 단순한 신체가 아니라, 억압과 상처, 사랑과 기억이 켜켜이 쌓인 하나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그저 평범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도 쉽지 않은데, 전쟁 속에서 그들은 엄마이자 딸, 아내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 속 기분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문득,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본 문장이 떠올랐다.
“전쟁 중에도 생리는 계속된다.”
화장실도, 생리대도, 진통제도 없는 상황에서 그 고통과 불편함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여성들. 그 와중에 걸어서 피난을 가고, 가족이 다치고, 죽음을 맞이한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곳에서 여전히 가족을 돌보는 이들. 의식주가 무너진 전쟁 속에서도 그들은 생리를 하고,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 뉴스를 보며,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자존감과 자존심. 자존감은 내가 나를 보는, 내면의 존엄이다. 자존감을 지켜야 살아갈 수 있다. 고통과 불결, 책임감과 미래가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 그들은 무너진 자존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그 사실 자체가 가장 위대한 존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