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 중 하나인 루브르 파리를 다 둘러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트페어에 가서 50개 이상의 갤러리, 100명의 작가를 전부 본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감각과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온라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소셜미디어에서 무심히 스크롤을 내리다가도 어떤 이미지에서 손이 멈추고, 넷플릭스에서는 특별히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클릭한다. 물론 알고리즘이 나의 관심사를 반영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있다.
나는 궁금했다. 내가 멈춰 서는 이 감정, 클릭하고 재생을 누르는 이 결정이 정말 나의 주관적 판단일까? 루브르에서 <모나리자> 앞에 서서 셀피를 찍는 건, 정말 그 작품을 좋아해서일까, 아니면 ‘좋아해야 한다’는 어떤 트렌드나 사회적 인식에 따라 움직이는 걸까?
나는 그 ‘끌림’이 순수한 개인적 감정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감정이라는 사실을 점점 깨닫고 있었다. 영국의 페미니스트 이론가 사라 아메드(Sara Ahmed) 는 <감정의 문화정치학>에서 말한다.
감정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움직이며 형성된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는 사회 속에서 대상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도록 감정을 '배우며', 그 감정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역사, 기억, 권력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13년째 살고 있는 두바이에서 전시나 미술관, 아트페어를 갈 때 더 이상 작가나 트렌드를 미리 검색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그냥 간다. 그리고 내가 멈추는 작품이 있으면, 그제야 그 이유와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두바이의 예술은 서아시아의 맥락 위에 있다. 아랍 작가가 많고,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구상보다는 추상이 많다. 여기에 왕정 체제의 특수성이 겹치면서 예술 작품의 검열은 미묘하고 날카롭다. 표현의 자유는 보이지 않는 선 안에서만 허락된다.
작년 라스알카이마 아트페어(RAK Art Fair 2024)에서 한국관 큐레이팅을 맡았을 때였다. 참여 작가 중 한 명의 작품이 리젝트됐다. 작품 코너에 브래지어가 그려진 회화였다. 누드도 아니고 선정적이지도 않았지만 주최 측은 그 이미지를 지우거나 교체하라고 했다. 결국 우리는 작품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이 지역에서 예술이 사회적으로 통제된 경계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지금으로 부터 2년 전, 2023년 11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두바이의 상업갤러리가 모여있는 알서칼 에비뉴(Alserkal Avenue)에서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대규모 전시가 열렸다. 가장 큰 전시관인 콘크리트(Concrete)에서. 'On This Land - 이땅에서'라는 전시 타이틀과 함께 회화, 조각, 디지털 아카이브 등 100점이 넘는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아무 사전 지식 없이 그 전시에 들어갔다가, 몇 시간을 나올 수 없었다.
그 전시 속에서 나는 나의 과거를, 내 안의 경험과 감정들을 보았다. 팔레스타인 출신 레바논 동료의 한국 방문기, 역사책에서 배운 일제강점기의 한국, 학부 때 듣던 북한 관련 수업에서 만났던 북한 탈북자와의 대화, 테헤란 출장에서 히잡으로 머리를 가리고 다녀야 했던 경험, 그리고 홍콩, 중국, 두바이에서 외국인으로서 독립적으로 살아온 시간들. 그 모든 조각들이 작품을 보면서 되살아났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예술이 단지 감상이 아니라 사회와 내 감정의 충돌임을 느꼈다. 작품의 재료나 기교보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밀도,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 사회적 영향을 느낄 수 있었다. 아메드가 말한 것처럼, 감정은 언제나 사회 속에서 움직인다. 팔레스타인의 고통 앞에서 내가 느낀 슬픔은, 결국 내가 살아온 세계가 내게 가르친 감정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왜 어떤 예술에만 끌리는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끌림의 방향이 어쩌면 나의 정체성, 나의 세계관, 그리고 나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