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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은 감정의 습관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법

by 정물루

동네를 벗어나 다른 지역,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건, 대부분 대학 진학 이후일 것이다. 서울의 여러 지역은 물론, 지방 도시, 그리고 나처럼 중고등학교를 해외에서 보낸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같은 지역 출신끼리, 같은 고등학교끼리, 해외에서 거주했던 사람들끼리. 이미 익숙한 리듬과 감정선이 만들어낸 모임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나는 이런 경험을 중학교 시절, 홍콩에 거주하면서도 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 부모의 국적이 서로 다른 아이들, 그리고 홍콩 사람이지만 홍콩 국적이 아닌 친구들까지. 국적과 모국어가 다양한 국제 학교였지만,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면 아이들은 다시 제 나라의 친구들 곁으로 모였다. 한국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끼리, 일본 아이들은 일본 아이들끼리. 홍콩에서는 국제학교 수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였고 토요일에는 한인학교(우리는 '토요학교'라고 불렀다)에서 함께 국어, 국사, 그리고 한문을 공부했다.


사라 아메드는 '감정은 개인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을 이동하며 배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사실 사회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감정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어떤 표정에는 미소로 답하고, 어떤 언어에는 긴장을 느끼는 법을 습득한다. 그렇게 ‘좋아함’은 개인의 감정이라기보다,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 의해서 자라는 감정이 된다. 홍콩의 토요학교에서, 대학의 고향 모임에서, 혹은 두바이의 한인 단톡방에서 나도 그 익숙한 '한국 사람으로서의 감정'을 느꼈다.


현재 13년째 거주하고 있는 두바이에서는 한인들의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이 있다. 'UAE생활정보방(스마트라이프)'라고 하는 그룹 채팅방에는 두바이 뿐 아니라 아부다비를 포함한 UAE 여러 곳의 한인들이나 UAE로 이주할 계획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인다.


식당, 청소업체, 학교, 이사, 주차장 정보까지 시시콜콜한 대화들이 오가고 우리는 왠지 같은 한국 사람의 추천을 본능적으로 더 신뢰한다. 그건 단순히 정보의 신뢰도가 아니라, 감정의 공통어를 믿는 것이다. '그들이 좋다고 하면 나도 좋을 확률이 높을 것 같다.'에는 이미 감정이나 취향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아메드의 말처럼, 감정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관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대만 출신의 가수 주걸륜(Jay Chou)의 콘서트가 두바이의 코카콜라 아레나에서 열렸다. 코카콜라 아레나는 서울의 올림픽 체조경기장보다 큰 사이즈다. 당시 UAE 전역에 있는 중국인들은 물론, 카타르, 오만, 사우디 등 주변 국가에서 거주 중인 중국인들까지 비행기로 몰려왔다. 티켓은 오픈 몇 시간 만에 매진되었고, 현장 주변은 거의 춘절(구정) 분위기였다고 한다. 관객의 90% 이상이 중국인 또는 중화권 출신이었고, 공연장 안에는 중국어가 거의 '공용어'처럼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내 주변의 중국, 대만, 싱가포르 친구들, 심지어 중국계 미국인들까지 전부 이 콘서트에 갔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이 무대는 어린 시절의 시간으로, 누군가에게는 고향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디아스포라의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있을 거라고. ‘좋아함’이라는 감정은 이렇게 국경을 넘어, 동시에 사람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다시 묶는다.


존 듀이는 예술을 '삶과 분리된 특별한 영역이 아니라, 삶의 연속성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경험'이라 말했다. 예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더 깊이 감각하게 만드는 일, 삶의 조각들을 이어주는 흐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에 끌릴 때,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다시 살아보는 경험을 하는지도 모른다.


예술에 끌린다는 건 결국 나의 사회적 위치, 내가 속한 공동체와 기억, 언어의 맥락 속에서 이미 배워온 감정의 길을 다시 걷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익숙한 감정과 새로운 감각을 동시에 느낀다. 감정은 그렇게 우리를 연결하고, 예술은 그 연결을 느끼고 경험하게 만든다.


끌림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사회의 기억이다. 예술은 그 기억을 다시 살아보게 하는 감각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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