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의 삶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심지어 이곳에서 태어나도 외국인에게는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2025년 기준, 로컬 에미라티는 전체 인구의 11.5%뿐이고, 나머지 88.5%는 모두 외국인이다. (https://www.globalmediainsight.com/blog/uae-population-statistics/#population_of_uae_in_2018 검색일: 2025.10.29)
13년째 두바이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나 역시 여전히 ‘외국인’이다. 현지 로컬들이 누리는 사회적 대우와 혜택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교육, 은행, 비자, 커리어, 심지어 통신상품까지도 ‘에미라티 전용’ 플랜이 따로 있다. 정확히 어떤 지원을 받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의 시스템은 로컬과 비로컬을 명확히 구분한다.
이슬람이 정치와 사회의 중심인 나라답게, 아랍에미리트의 기본 구조는 종교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 불과 3년 전, 2022년 1월이 되어서야 주말이 금, 토에서 토, 일로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이슬람 예배일인 금요일이 주말의 시작이었다. 라마단을 비롯한 모든 공휴일은 이슬람 달력에 따라 정해지고, 국제학교에서도 아랍어는 필수 제2외국어다.
그럼에도 두바이는 일곱 개 토후국(Emirate) 중 가장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했다. 아랍어를 몰라도 전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고, 외국인에게 개방된 국제학교와 비자 제도, 부동산 정책이 잘 갖춰져 있다. ‘외국인도 살기 편한 도시’를 표방하며 만들어진 구조 덕에,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운도 따랐다. 근처 국가들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 불안 속에서 두바이는 ‘안정된 대안지’로 부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정치·경제 불안, 유럽의 경기 침체,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의 불안정 속에서 ‘안전하고 유연한 도시’ 두바이는 더 많은 이주민을 맞이했다. 코로나19 이후 몇 년 사이, 두바이의 인구는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이에 맞춰 두바이는 외국인을 위한 각종 비자 정책-사업, 부동산, 기술, 재능 비자 등-을 확대했다. 살기 점점 편해지고 있다. 외국인이 88.5%를 차지하는 도시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더 이상 비주류의 삶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내 조국도, 고향도 아니다.
2013년, 첫 해외 근무지로 두바이에 왔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들이 있다.
“한국 여자들은 왜 그렇게 하얘?”
“다들 왜 그렇게 날씬해?”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만큼 영어를 못한다며?”
한국이 얼마나 다양한데, 이렇게 쉽게 일반화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때는 한국인이 많지도 않았고, ‘아시아 여성’이라는 하나의 틀로 바라보는 시선이 낯설었다.
반대로, 내가 두바이로 이주한다고 했을 때 한국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거기 위험하지 않냐?”, “테러 많지 않냐?”, “사막 바람 때문에 피부 다 상할 걸?” 심지어 MERS가 유행했을 때는 “낙타 조심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나는 이미 ‘중동’이라는 이미지 안에서 고정 관념에 노출 되어 있었다.
유럽과 가까운 두바이는 백인, 유럽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이 뒤섞인 도시다. 그 속에서 내가 처음 느낀 것은 ‘서양이 만들어낸 동양의 이미지’였다. 신비롭고, 조용하고, 명상적이며, 현실보다는 영적인 존재로서의 동양인. 한때 나는 오리엔탈리즘을 그저 ‘동양의 매력’ 정도로 이해했지만, 이후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으며 그것이 ‘지배의 언어’임을 알게 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자 지배방식이다.
‘동양(Orient)’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서양이 만들어낸 시선의 결과다. 그 시선 안에서 우리는 늘 ‘타자’로 존재한다.
두바이에서의 나의 삶은 어쩌면 그 일반화를 깨려는 행동으로 이어진 듯하다. 때로는 서양인들의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려 애쓰기도 했다. 그게 과한 방어인지, 혹은 내 정체성을 지키려는 본능인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주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홍콩에서 보낸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두바이의 지금까지. 어디서부터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었는지, 어떤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를 찾기 위해서. 언제나 ‘경계 위에서’ 살아왔던 나의 이야기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 그림은 오늘날 '오리엔탈리즘 회화'의 상징적 이미지로 자주 언급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했듯, 이런 회화들은 서구가 '동양'을 관찰하고 재현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즉, 실제 '동양'이 아닌 서구인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이국적이고 성적으로 대상화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