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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을 하는 방법

무의식적 표현

by 정물루

이전 전쟁들과는 달리 2023년 10월에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소셜미디어에서도 계속되는 카오스였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참혹한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공유되며, 이 전쟁은 사람들의 감정과 심리를 뒤흔드는 ‘디지털 심리전’의 양상으로 번졌다.


무엇보다 논란이 된 것은 콘텐츠 검열이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가 유대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부 팔레스타인 지지 게시물들이 삭제되거나 노출이 제한된 사례가 이어졌다. BBC나 CNN 같은 주요 서구 언론도 유대인 자본의 영향 아래 보도의 균형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같은 장면이라도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 어떤 뉘앙스로 말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온도는 달라진다. '전쟁(war)'과 '학살(genocide)'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팔레스타인 관련 보도에서 'genocide' 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기자들은 언제나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야 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시작

이 갈등의 뿌리는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에서 시작된다. 당시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로 나누는 분할안을 발표했지만, 유대인 측은 이를 수용했고 아랍 측은 거부했다. 이후 전쟁이 발발했고, 이스라엘은 승리하며 팔레스타인인 약 70만 명을 강제로 추방했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 역사에서 ‘나크바(Nakba, 대재앙)’로 불린다.


이후에도 1967년, 1973년 등 크고 작은 전쟁이 반복되었고 팔레스타인 땅은 점차 분단되었다. 현재 팔레스타인은 두 지역으로 나뉜다.

서안지구(West Bank) - 비교적 안정된 지역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LO)가 행정권을 가지고 있지만 곳곳에 이스라엘 정착촌이 확산되고 있다.

가자지구(Gaza Strip) - 면적은 서울의 절반 정도로 좁지만 2007년 이후 하마스(Hamas)가 통치하고 있다. 하마스는 무장 조직으로 분류되어,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공습, 봉쇄, 차단하며 사실상 감옥처럼 만들었다.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하면서 민간인 수백 명이 사망했고,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전면 공격하며 수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참혹한 전쟁이었다.


tempImagejeSigR.heic <평화통일> Vol 178, 2021.08 인남식 교수 칼럼 중*


금지된 색과 수박의 등장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저항의 방법을 찾아왔다. 그 상징이 바로 ‘수박’이었다. 1980년, 팔레스타인 라말라의 갤러리79(Gallery 79)에서 팔레스타인 대표 화가 슬리만 만수르(Sliman Mansour)의 개인전이 열렸다. 그의 그림에는 팔레스타인 농민, 여성, 국기의 색깔이 담겨 있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전시장을 찾아와 말했다.


왜 이런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그림만 그리나? 차라리 꽃이나 나무, 누드를 그려라. 팔레스타인을 떠올리게 하는 건 전부 금지다. 빨강, 초록, 검정, 하얀색이 들어간 그림은 전부 압수하겠다


이에 한 예술가가 농담처럼 물었다.


그럼 수박을 그리면요?
그것도 압수하겠다.


이 불쾌한 대화는 수박이 금지된 색의 은유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만수르는 그 뒤로 자신의 작품에 수박을 넣기 시작했고, 이 단순한 과일은 팔레스타인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수박의 녹색 껍질, 흰 속, 붉은 과일, 검은 씨앗 - 바로 팔레스타인 국기의 색과 같았다. 금지된 색이 예술로, 예술이 저항으로 변한 것이다.



예술은 집 없는 이들에게 집을 짓는다

팔레스타인 미술사학자 살와 믹다디(Salwa Mikdadi)는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팔레스타인관을 기획한 큐레이터이자 현재 NYU 아부다비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점령 세력은 팔레스타인의 존재와 정체성을 지우려 합니다. 그러나 예술은 그 지워진 자리에 집을 지어요. 예술은 집 없는 이들에게 집을 주는 행위입니다.

tempImageEvXSd1.heic PBS 뉴스에서 찾은 이미지 - 수박이미지, 팔레스타인 연대를 상징하며 전 세계로 확산되다. ***

예전에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가 외신 기자의 해석을 통해 전달되었다면, 이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직접 전해진다. 검열과 왜곡을 넘어, 사람들은 스스로 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수박, 언어와 알고리즘을 넘는 상징

팔레스타인 국기가 금지되고 수박 이모지가 차단되고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조차 검열당하는 시대. 이때 사람들은 언어와 문화를 넘어 알고리즘까지 우회하는 이미지 - 수박을 들었다. 예술가와 시민 모두가 이 단순한 과일에 존재와 생명, 기억과 자유의 메시지를 담았다.


수박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과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워진 역사 속에서 다시 피어난, 가장 조용하고도 강한 저항의 색깔이다.







* http://webzine2020.farmzonesnc.com/tongil/sub.php?number=2887


** https://www.thenationalnews.com/arts/how-the-watermelon-became-a-symbol-of-palestinian-resistance-1.1230806?utm_source=chatgpt.com


*** https://www.pbs.org/newshour/world/how-watermelon-imagery-a-symbol-of-solidarity-with-palestinians-spread-around-the-world?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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