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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에 마음이 끌릴 때

문화와 사회

by 정물루

중고등학교 때, 나는 홍콩에서 살았다. 언어도, 사람들도, 음식 냄새도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주변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웃고, 걷는지를 유심히 보는 일. 대학은 한국에서 혼자 다녔다. 가족은 여전히 해외에 있었다. 졸업 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대기업, 광고 회사, 작은 디자인 스투디오까지. 이곳저곳을 옮기며 깨달은 건 한국 사회의 '문화'가 겉보다는 그 안에 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류엔 파트너쉽이라 되어 있지만 현실은 갑과 을, 눈치와 체면, 그리고 '존버'의 하루하루. 열정보다는 충성이, 실력보다는 위계와 평가가 기준이 되었다.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을 사랑하기 보다는 '회사에 속해 있는 나'를 지키기 위해 버티는 듯이 보였다.


그때의 나는 '왜 그래야 하지?'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두바이에서 오퍼가 왔다.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몇 년 살아보다가 안 맞으면 돌아오면 되지.'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벌써 13년이 흘렀다. 9년 넘게 다니던 광고회사에서 나는 한 팀의 팀장이었고 팀 간 협력을 위해서 우리는 팀장 미팅을 자주 했다. 두바이 특성 상 팀장들의 국적은 다양했다. 영국, 호주, 인도, 시리아, 레바논, 러시아에서 온 각 팀의 팀장들과 주간, 월간 미팅을 진행했다. 각자 국가의 억양이 섞인 영어로 대화하고 보고가 아닌 대화를 나누었다.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토론을 하며 해결책을 함께 만들어갔다. 물론 사람 간의 컨플릭트는 어디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문화'가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실감했다. 언어의 톤, 표정의 온도, 상대를 대하는 자세. 그 모든 무형의 것들이 일을 움직이고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그 무렵부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끌리기 시작했다. 태도, 습관, 사고 방식, 세계관 그리고 예술. 그 안에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기억이 있었다. 나는 그걸 '무형의 문화'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무형의 것들에 끌렸던 건,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한 '정치적 무의식'과 닮아 있었다.


모든 문화적 텍스트는 사회적 총체의 흔적을 품고 있다.

즉, 우리가 쓰고 말하고 느끼는 모든 감정은 단순히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시대와 구조가 반영된 언어라는 것이다. 이 말이 내게는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나는 내 의지로 해외에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를 밀어낸 건 한국 사회의 구조,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무형의 억압이었다. 나의 독립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회적 힘의 결과였던 것이다.



개인의 서사 안에는 사회 전체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제임슨의 말처럼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예술을 보며 그 안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읽는다. 작가의 감정 뒤에 숨은 사회적 기억, 작품의 색감에 스며든 무의식,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의 글과 삶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가고 있다. 그렇게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마음이 더 끌리기 시작했다. 언어의 결, 태도의 온도, 예술에 깃든 감정 같은 것들. 어쩌면 문화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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