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연히 소더비 특별전시에서 봤던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 여성 작가 경매가 신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낙찰가는 5,470만 달러(약 805억 원). 최근 몇 년 사이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흐름으로도 읽히지만, 사실 프리다 칼로는 늘 “나는 초현실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현실을 그릴 뿐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신기록을 경신한 작품 역시 자화상이다. 2층 침대 구조의 상단에는 알록달록한 꽃을 안고 다리엔 폭탄이 설치된 해골이 누워 있고, 아랫층에는 나무 덩굴에 온몸이 감싸인 채 노란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여성이 있다. 해골은 깨어있고 여성의 자고 있는데 그 얼굴이 묘하게 평화로워보인다. 몸을 감싸고 있는 나무 덩쿨로 자유롭지 않아보이는데도.
배경지식 없이 보아도 어딘가 쓸쓸하고 애처로운 그림이다. 프리다 칼로는 평범하지 않은 생을 살아냈다. 태어나보니 소아마비를 가지고 있었고, 18세의 끔찍한 교통사고로 인한 평생의 통증, 사랑하는 남편의 반복된 외도. 제3자의 눈으로 봐도 고통과 분노가 삶 전체에 가득하다. 우리가 보지 못한 그녀의 내면은 아마도 원망과 슬픔으로 빽빽했을 것이다.
프리다 칼로는 그 삶을 그리고 또 그렸다. 지금은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 그리고 여성 작가 중 경매가 최고 기록을 가진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가 작업하던 당시에는 누구도 그녀를 그런 존재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프리다는 멈추지 않았다. 몸과 마음에 난 상처들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본능이 그녀를 계속하게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I speak Arabic and English, but I don't know in what language my fate is written. I'm not sure if that would change anything.
Light is the opposite of heavy or dark. In Gaza, when the electricity is cut off, we turn on the lights, even in broad daylight. That way, we know when the power's back.
나는 아랍어와 영어를 쓰지만, 내 운명이 어떤 언어로 쓰여 있는지 모른다.
그게 바뀌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빛은 무겁거나 어두운 것의 반대다.
가자에서는 전기가 끊기면 대낮에도 불을 켠다.
그래야 언제 다시 전기가 들어오는지 알 수 있기에.
- 모사브 아부 토하(Mosab Abu Toha)의 시집 <Things You May Find Hidden In My Ear> 중
모사브 아부 토하는 팔레스타인 가자(Gaza) 출신의 젊은 시인이다. 2025년에는 다큐멘터리 부문 퓰리처상도 받고 큰 주목을 받았다. 전쟁터에서 단절된 언어, 끊겨진 삶, 잃어버린 기억들을 아련하게 시로 표현한다. 분노로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잔해들 - 슬픔, 두려움, 체념, 희망이 그의 작품에 담겨 있다.
모사브의 텍스트는 사실을 말하지만, 사실만 전달하는 건 아니다. 분노와 공포의 한가운데서도 어떻게든 인간의 감정이 형태를 갖게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프리다 칼로가 몸과 마음의 고통과 상처를 그림으로 번역했다면, 모사브는 시로 그걸 번역한다.
분노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정도의 차이일 뿐, 그저 평온하게만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회사에서의 분노, 가족에 대한 분노, 더 나은 자신이 되지 못해 느끼는 자책,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분노 - 이런 감정들은 누구에게나 매일 조금씩 찾아온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그대로 말로 꺼내버리면, 인생이 더 슬퍼진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 감정을 미뤄두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무 데로나 걸어 다니거나. 분노가 나를 통째로 잡아먹기 전에 어떤 행동으로 희석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은 결국 몸 밖으로 배출된다. 사라 아메드가 말했듯이, 감정은 항상 몸을 통과해 표출된다. 그래서 분노는 때로는 거친 말과 표정으로, 때로는 글과 이미지로, 때로는 시와 그림이라는 추상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게 분노는 무언가를 창조한다.
프리다 칼로와 모사브 아부 토하는 전혀 다른 시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살아갔지만 그들의 예술은 비슷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감정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결국 형태를 갖게 된다. 기억이든, 색이든, 텍스트든. 누군가는 그림으로, 영상으로, 글로, 또 음악으로 남긴다.
분노 때문에 망가지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분노 덕분에 다시 살아가기도 한다. 견딜 수 없는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번역해내는 일 -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를 지켜내는 가장 오래된 방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