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혁의 장애인식개선 칼럼] 구리시 ‘인권센터’ 설립, ‘작은 영화제’
12월의 초입,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따스한 온기가 구리시를 채웠다. 지난 3일, (사)장애인미디어인권협회 구리시지회(회장 권미경)가 주최한 제1회 ‘한 해의 빛’ 작은 인권영화제는 단순한 송년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역사회에 ‘인권’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결연한 선언이자, 구리시 인권센터 설립을 향한 뜨거운 열망의 표출이었다.
이날 상영된 영화 ‘렛츠댄스’는 장애인의 삶을 조명하며 관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그러나 스크린 밖의 현실은 더욱 치열했다. 권미경 회장과 회원들은 구리시에 제대로 된 ‘인권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인권선언문을 낭독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다행히 백경현 구리시장과 신동화 구리시의회 의장이 자리를 함께하며 장애인 인권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이제는 이 관심을 실질적인 제도로 안착시켜야 할 때다.
왜 구리시에 ‘인권센터’가 필요한가. 통계는 그 당위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간 통계에 따르면, 인권위 진정 사건 중 장애인 차별 관련 진정은 매년 전체 차별 진정의 40~50%를 상회한다. 문제는 중앙 기관인 인권위만으로는 지역 곳곳에서 발생하는 생활 밀착형 차별과 인권 침해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자체 차원의 인권센터가 ‘골든타임’을 지키는 119구조대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다.
구리시 인권센터가 단순한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활성화 방안을 세 가지로 제언한다.
첫째, ‘구리시 인권 조례’의 실효적 개정과 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권센터의 설립 근거와 권한을 명시한 조례는 집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와 같다. 단순히 ‘설치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이 아니라, 인력과 예산을 의무적으로 배정하는 강행 규정으로 조례를 정비해야 한다. 이는 이날 참석한 구리시 의회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대목이다.
둘째, ‘예방적 인권 감수성 교육’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사후 약방문식 구제보다는 예방이 효율적이다. 장애인미디어인권협회의 전문성을 살려 미디어를 활용한 인권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공무원과 시민을 대상으로 한 정기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인권 교육은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셋째, 민관 거버넌스(협치)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관(官) 주도의 일방적 운영은 현장의 목소리를 담지 못한다. 장애인 당사자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미디어 모니터링을 통해 지역 내 인권 침해 요소를 스스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번 영화제에서 보여준 회원들의 자발적 서명운동은 이러한 거버넌스의 훌륭한 씨앗이다.
권미경 회장은 “장애인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주체”라고 강조했다. 백경현 시장이 약속한 “차별 없는 행복한 도시”는 인권센터라는 구체적인 그릇이 마련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제1회 작은 인권영화제가 쏘아 올린 빛은 작지만 강렬했다. 그 빛이 구리시 인권센터 설립이라는 결실로 이어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존중받는 ‘진짜 행복한 구리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서명 용지에 담긴 시민들의 간절한 마음은 이미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