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예뻤어도 피곤할 뻔했어. 딱 좋아."
볕이 드는 창가 소파자리에 나란히 앉은 엄마와 아빠가 나이든 딸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다.
"쟨 누굴 닮은거야?" "몰라."
저 아이의 골 때림은 절대 유전은 아니라는 무책임한 모르쇠에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에 손을 짚고 전신거울을 보며 앞태 뒤태 이곳저곳을 뜯어보던 딸은 다소 신경이 쓰인다는 듯 엉덩이를 씰룩 거리며 말을 잇는다.
"그래도 엉덩이는 좀 신경 써야겠어."
엉덩이가 쳐진 할머니가 되고 싶지 않다.
미인은 아니지만 얼굴에 불만은 없다. 어쩌겠는가. 이렇게 태어난 것을. 사실 엄청난 이목구비, 몸매를 타고났어도 사는 게 좀 피곤했을 거 같다. 딱 이정도가 좋다. 적당히 묻어갈 수 있는 밋밋한 얼굴도 괜찮고 가슴에 볼륨감이 조금 많이 부족해도 좋다.
없으면 없는 대로 멋(?)이 있는게 볼륨이다. 딱 하나. 엉덩이는 양보할 수 없다. 특히나 살집도 있는 편이라 이 많은 살이 쳐지는 건 그야말로 끔찍하다.
겨울철 낭만은 온탕에서 피어오른다고 생각하는데, 명치까지 몸을 담그고 멍 때리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이 타인의 비밀스런 라인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눈높이도 하필 그녀들의 엉덩이 즈음에 걸쳐진다. 대중목욕탕 선호 연령층은 대체로 높아 탄력과 볼륨, 매끄러운 각선미를 뽐내던 전성기에서 슬슬 내려오는 이들이 많다. 수증기속 오가는 엉덩이를 보며 깨달았다.
어린 시절, 모르는 할머니들이 찰싹찰싹 엉덩이를 때리며 "좋을 때다"라고 말하던 이유를. 아름다운 노화는 엉덩이에 있음을.
잘 생각해보라.
이건 남녀 무관한 문제다. 작은 가슴, 큰 가슴 모두 선호가 있다. 넓은 어깨, 좁은 어깨. 이것도 마찬가지. 통통한 몸? 마른 몸? 이 역시 취향 및 가치관의 차이다.
그런데 엉덩이는 무조건 업! 애플힙이 보기 좋다.
애플힙은 또한 건강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엉덩이 운동을 따로 하는건 너무나 귀찮다. 홈트든, 헬스클럽이든. 나는 내가 너무 만족스럽고 사랑스럽고 무한히 믿어주지만.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하겠다는 일만큼은 믿어줄 수 없다. 늘 그랬다. 오늘의 나는 내일로 미루고, 내일의 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걷기라면 다르다.
돈이 들지 않고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좋다. 차로 이동할 거리를 그저 걷기만 하면 되니까.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 대신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피곤하면 중간 탑승, 중간 하차 등 타협도 가능하다.
사실 걷기만큼 게으른 사람에게 딱 맞는 운동도 없다.
특별한 장비도, 회원권도, 예약도 필요 없다. 컨디션에 따라 속도와 거리를 즉석에서 조정할 수 있고, 언제든 멈추고 돌아올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도 있다. 비, 눈, 추위를 완벽한 휴식 명분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하루 30분만 걸어도 심혈관 질환 위험이 35%나 줄어든다니, 이보다 효율적인 게 어디 있을까.
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에 있는 로또방이 내 걷기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운동을 할 겸 도서관을 가기 위한 핑계로 시작했다. 동이 튼다는 이유만으로 눈꺼풀을 들어올리기도 힘든 내게 이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켜 도서관씩이나 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일타쌍피를 좋아하는 나는 생각도 건전했다.
'꼭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아도 좋아. 일어나서 밖에 나가서 걷기만 해도 오늘 하루 운동은 한 거잖아.'
그런데 문제는 일부러 나가서 걷는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날이 덥고, 춥고, 비가 오고, 핑계는 늘 있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이유를 만들었다.
'가서 근처 로또명당에서 로또를 사자.'
도서관을 왕복으로 걸으면 버스요금 약 3천원을 아끼게 된다. 그 돈을 로또에 투자하자. 건강도 얻고 복권도 사고, 당첨 가능성도 얻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일석오조 아닌가? 지구한테도 좋은 일이었더라. 내가 차 안 타고 걸어다니니까 배기가스도 안 나오고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신기하게도 도서관 가는 일이나 헬스클럽을 가고, 걷는 일에는 핑계가 생겼지만 로또를 사는 일만큼은 귀찮지 않다. '이번에 될 수도 있는데 귀찮아서 기회를 놓치면 어쩌지?'라는 조급증이 매일 나를 밖으로 나가게 한다.
그렇게 몇 달 걷다 보니 확실히 체력도 좋아지고 전체적인 군살도 많이 잡혔다. 라인도 ‘예전보다’ 탄탄해졌다. 등을 꼿꼿하게, 어깨를 쫙 펴고 빠르게 걸으면 복부 근육 활동이 50%나 늘어나고, 경사진 길을 걸으면 엉덩이 근육 사용량이 평지보다 두 배나 증가한다고 한다. 게다가 30분 걸으면 150-200칼로리 정도 소모된다.
사실 애플힙에서 중요한 볼륨감은 엉덩이 운동이 중요하지만 내가 원하는 힙업은 등운동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해부학적으로 뜯어보면 등의 넓은 근육(광배근)과 엉덩이 근육(대둔근)은 허리 부분의 질긴 막(흉요근막)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다. 마치 하나의 큰 근육처럼 함께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걸을 때 팔을 자연스럽게 흔들면 등 근육이 활성화되며 반대편 엉덩이 근육도 함께 자극이 될 수밖에 없다.
헬스클럽이나 홈트를 하면 부위별 운동을 따로 해야 하지만 걷기는 온몸의 근육을 골고루 쓰는 전신 운동이니 게으름쟁이에게는 여러 면에서 럭키비키다.
가자, 밖으로. 걷자. 앞으로 앞으로 자꾸 걸어나자. 아름다운 노년의 엉덩이를 위해 지금부터 꾸준히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