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름옷을 입어. 춥게?”
“정리하는 것도, 꺼내는 것도 귀찮아.”
옷 꺼내는 것도 귀찮은 애에게 쇼핑은 너무 버거운 일이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면 머리가 아프다. 똑같아 보이는 옷들 사이에서 나의 예산과 취향과 목적에 맞는 '내 것'을 찾는 일은 가끔 절망적일 정도로 짜증이 난다.
온라인 쇼핑은 더 골치 아프다. 사이즈는 맞을지, 실제로는 어떤 색일지, 세탁하면 늘어날지 줄어들지... 가치 대비 저렴한 상품인지, 저렴한 걸 조명에 잘 비춰놓고 찍은 건지 배송받기 전엔 알 수 없다.
반품비, 교환 배송비는 최소 3000원에서 6~7000원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언젠가는 입겠지라고 쌓아둔 이들이 꽤 많다.
물론 그래서 득을 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나.
패스트패션 산업의 최종 승자라고나 할까? 최대 수혜자라고 해야 할까?
“옷 샀어? 예쁘네?”
“고모 딸이 샀는데 안 입는대.”
최근 몇 년간 거의 옷을 사지 않아도 됐다. 고모 딸, 이모, 친구로부터 옷이 마구 들어온다. 패피 고정 3명만 있어도 쇼핑 없이 옷장이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옷을 사고 반품이 귀찮거나 애매해서 그냥 둔 옷들이 점점 쌓이면 ‘애물단지’가 된 ‘새 옷’을 정리한다. 버리기에도 아깝고 입지는 않을 옷들. 그런 옷들을 기꺼이 내 집으로 차곡차곡 들어오고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은 그들은 내게 미안해한다. 새 옷을 사줘야 하는데 헌 옷을 줘서 어떻게 하냐고. 아니! 천만의 말씀! 나는 새 옷 같은 헌 옷이 참 좋다.
나름 미적, 패션 감각을 가진 이들이 1차적으로 선별해서 고른 옷이다. 내 손에 넣고 보니 마음에 달라졌지만 처음부터 버릴 옷을 사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게 어떠한 이유에서든 ‘입을 만한 옷’이 그냥 버려져야 한다면 내 손을 한번 거치기를 나는 원한다.
항상 그랬다. 보물 찾기처럼 내 취향의 옷이 한두 벌은 꼭 있다. 득템의 순간은 유료 쇼핑에서도, 무료 쇼핑에서도 빛난다.
한철 유니폼처럼 입을 옷을 고르고 나면, 나름의 수요를 찾아 옷을 분류하고 적절한 이들에게 전한다. 다행히 나의 큐레이션 서비스가 그들은 마음에 드는지 나는 또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100을 버려져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필요한 이들을 찾아 전해지며 절반 이하로 의류 쓰레기가 줄어든다.
옷은 만드는데도 물리적, 환경적 비용이 들지만 버리는 데도 비용이 든다. 쉽게 사고 금방 버리는 ‘패스트패션’의 그림자는 날로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헌 옷 수거함이나 수거업체를 통해 처리를 해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현재 국내 헌 옷의 98%가 소각 또는 매립되고 있다고 한다. 무심코 산 옷 한 벌이 대기, 수질 토양을 오염시킨다. 그러니 내가 헌 옷을 선별해 입는 것은 내게 경제적으로도, 시간활용 측면에서도, 환경적으로도 몹시 이롭고 권장될만한 일이다. 그리고 입고 다니면 누가 헌 옷인지, 새 옷인지 아나?
물론 아빠는 무척 속상해한다. 먹고살만한데 너처럼 헌 옷 주워 입고 사는 애가 어디 있냐며 이제 너도 나이가 있으니 좋은 사서 입고 사라고 가끔 화도 낸다. “주워 입지는 않아, 나도 골라서 입어!”라는 말에 더욱 열받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한다.
'헌 옷'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묘한 기분을 나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내 취향에 맞고 쓰임에 맞다면 헌 옷이라고 옷의 가치가 달라질까? 생각을 바꿔야 한다. 쓸데없는 고민을 한 번 더 줄일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럭셔리라고 말이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자존심 안 상해?"
자존심? 왜 그런 데 귀한 마음과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소모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왜 내 자존심 때문에 펭귄과 북극곰을 살릴 기회를 저버려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내 자존심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그들의 죄책감은 덜어주고 내 시간과 돈, 환경을 아꼈다는 자부심! 그것만으로도 나는 버려질 뻔한 옷들을 입고 다니는 게 행복하고 기껍다.
패션 산업은 어차피 잘 돌아간다. 패션 취향이나 트렌드에 예민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개인이 두는 가치는 저마다 다르다. 우리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 지구의 문화, 예술, 산업이 발전하고 순환한다. 환경오염, 잣대 하나로 모든 것을 stop 하고 싶지 않다. 취향과 가치관, 관심사가 다른 우리는 어차피 길길이 다르다.
내가 힘줘 이야기하고 설득하고 권유하고 싶은 것은 옷보단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내 주관으로 옷을 굳이 골라서 입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말이다.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깝고, 확고한 취향이나 트렌드에 그렇게 예민하지 않다면 타인의 취향에 기쁜 마음으로 숟가락을 얹는 건 어떨까?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자존심으로 모든 것을 낭비하지 말고, 내 가치를 어디에 두면 좋을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앞서 언급했듯 지구온난화로 매년 기온이 오르며 계절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덕분에 이미 여름옷에 겨울 외투만 걸치면 겨울 의상이 완성된다. 실제로 추위 더위를 많이 타는 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가디건, 스카프 등 간절기 패션아이템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옷에 쓸데없이 욕심을 부리면 앞으로는 모두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옷 없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적당히 멋 부릴 수 있을 때 적당히만 하자. 이건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