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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안 납니다. 진짜예요

by 천유

'쇼핑은 귀찮아'는 생활 곳곳에서도 빛을 발한다.


계란 프라이를 할 때 소금은 매번 깜빡하고 사다 놓는 것도, 뿌리는 것도 깜빡한다. 강제 저염식이다. 게으름은 이렇게 건강에도 이롭다.


부모님의 집에서 나온 이후, 섬유유연제는 사다 놓고도 늘 잊어버려 한통을 몇 년째 버리지 못하고 비치했었다. 사도 쓰지도 못할 거 이제 섬유유연제는 우리 집 쇼핑 목록에 없다.


정전기가 극성을 부릴 즈음엔 주방으로 가서 식초를 가져와 넣는다. 음식에 넣을 거랑 구분해야 되지 않냐고? 조리 시, 식초 넣는 것도 까먹으니까 어차피 걔는 그냥 그날부터 세탁실에 비치된다.


걱정은 노노! 게으름도 일관되면 나름의 루틴과 질서가 생긴다.


쟁여두고 살 때도 있지만 물건이 떨어지기 전에 사지는 않는다. 사는 것도 귀찮은 일이지만 물품을 정리하는 것도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샴푸, 린스, 휴지 기타 등등, 세일 등의 이유로 마음먹고 사면 산더미처럼 있을 때도 있지만 한번 똑 떨어지면 줄줄이 여러 아이템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집 이곳저곳이 비기 시작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는가. 게으름은 창의의 원동력이자 개성의 어머니라고.


가장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을 들어보겠다. 화장실.


그래, 화장실에서 휴지가 똑 떨어졌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휴지 좀 사 와!!” “휴지 왜 미리 안 사다 놓았어.”


왜? 집에 휴지가 진짜 없다고? 설마,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이건 리얼이다. 집안 곳곳, 가방을 뒤져보면 여기저기서 받은 일회용 휴지와 티슈가 화수분처럼 나온다. 카페에서, 음식점에서 나온 티슈도 곳곳에서 나온다. 이거 찾는 재미, 급박한 상황에서 이걸 찾아냈을 때의 희열도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자기 효능감도 마구 샘솟는다. 쟁여놓고 쓰는 안락함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극강의 쾌락이 게으른 자의 일상에서는 샘솟는다.


일회용 안 쓴다고? 히키모코리가 아닌 이상 그럴 리가 없다. 나를 믿어라. 왜냐면 나 역시 꼭 지금, 당장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회용품을 받는 것도 피하는 편인데 이런 내 집에도 항상 쌓여있다.


저 티슈는 주지 않으셔도 돼요. 없어도 됩니다, 괜찮아요를 남발하며 살지만 그러지 못한 상황도 번번이 발생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테이블 위에 오른 것을 반납하는 건 케첩, 머스터드 소스밖에 없다. 한겨울, 폭염에 길에서 할머니가 나눠주는 전단지와 휴지는 여간해서는 뿌리치기 힘들다.


굳이 내손을 탄 건 위생 등등의 측면에서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서 가지고 온다. 절대로 그냥 버려서는 안 된다. 일회용품을 없애거나 줄이면 좋겠지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야만 한다고 완강하게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가끔 필요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절대로 내가 필요 없다고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위기에서 나를 구해줄 럭키비키 아이템이 된다는 것을 한번 경험하고 나면 그럴 일이 없다. 인생이 행복으로 넘쳐난다, 일회용품 안 쓰면 좋은 거고 있으면 운이 좋은 하루로 여겨질 테니.


물론 이런 득템의 찬스는 제때제때 정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하다.


받아올 때마다 정리를 한다면 이 역시 무의식 속에 쟁여놓은 일부지만, 가방에 넣어놓고 깜빡깜빡하다 위기의 상황에서 긴박하게 찾아내면 보물 찾기다.


이렇게 보물 찾기를 하면 어머, 뜻밖에 가방도 주기적으로 정리가 되네? 역시 세상만사는 자정작용에 맡겨 놓는 게 최고다. 사람의 노력이 개입할 부분이란 사랑과 꿈밖에 없다.


샴푸는 대체할 것이 너무나 많다.


일단 각종 일회용 샘플을 뒤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종종 딸려오거나 이런 생활이 알려져 타인이 주는 숙박업소 어메니티 등이 1 차고, 그다음 타깃은 바디워시, 비누 등. 정히 없으면 물로만 씻어도 하루쯤은 무관하다. 그날 사 오면 되지, 뭘 또 굳이 쟁여놓는가.


욕실 세정제도 따로 필요 없다. 별도의 화장실 청소하는 날은 없지만 냄새도 안 나고 물때도 안 낀다. 믿어라. 나는 후각이 너무 발달해서 사는 게 가끔 힘들다 싶을 만큼 개코에 비위도 약하다. 그럼,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비누 거치대로 스펀지 재질 제품, 실리콘 수세미, (진짜) 수세미 재질 샤워볼 등을 추천한다. 비누가 미끄러지지도 않고 물기가 없는 상태를 유지해 세균번식의 위험도 없다.


이 거치대를 사용하며 가장 좋은 건 별다른 청소용품이 없어도 청소가 가능하다는 데 있다.


비누가 물컹해지거나 해당 거치대가 더러워지거나 너덜 해질 즈음엔 별도의 청소용품 없이 그걸 바닥이며 벽을 문지르면 청소 끝이다. 양치하고 칫솔교환 주기가 되면 바로 실리콘이며, 줄눈, 수전 가장자리 등을 벅벅 닦고 문지르고 물로 헹군다.


시간을 내고, 날짜를 정해 놓고 솔부터 화학세정제까지 각종 청소용품을 사지 않아도 좋은 이유다. 샤워할 때, 양치할 때 청소찬스가 이렇게 다가오면 잠깐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욕실은 늘 깨끗하게 유지된다.


따로 사는 물품은 하나 더 있다. 손잡이가 짧은 유리밀대. 덤벙대는 성격이라 설거지를 하고 나면 바닥이며 싱크대 주변이 물이 많이 튀어있는데 밀대로 쭉쭉 밀어서 가볍게 행주로 닦아내면 간편하고 깨끗해서 좋다.


룰루랄라, 청소와 쇼핑의 시간이 줄어드니 인생은 뭘 하든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진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도 게으름이 만든 개성은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히피펌 했어?”


명치까지 닿는 긴 머리카락 끝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친구가 어디서 한 무슨 펌인지 묻는다.


뭘 또 물어. 뻔하지. 알면서 그런다.


“린스가 떨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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