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과 지저분한 것은 다르고 청소에 대한 강박과 정리정돈은 다르다.
세정제를 사용하지 않거나 남들만큼 쓰지 않는다고 해서 몸도, 집도 지저분하지 않으며, 최고급 숙박업소 수준으로 청소하지 않는다고 해서 집이 아수라장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중에 치울 일이 귀찮다는 궁극적인 게으름에 도달하면 미래의 쓰레기를 만들지 않게 된다. 이로 인해 집은 일정한 상태의 편안함을 잘 유지하는 항상성 상태에 도달한다.
여기서 말하는 편안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공간은 늘 트여 있고, 나름의 질서에 의해 정돈되어 있기에 물건은 찾기 쉬운 '나'의 ‘집’ 같은 집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집이 대궐처럼 크지만 않다면 굳이 청소기가 아니더라도 온 집의 먼지를 닦아내기도 편하다. 리아스식 해안처럼 들쭉날쭉하지도, 올록볼록 솟아오른 곳도 딱히 없는 평면의 평야 상태의 집은 그저 슥슥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끝이다.
하지만 굳이 흑백논리로 양분해서 '갑자기 청소하는 척을 하고 그래? 네가 주장하는 것은 더러움의 미학이지 않아'라고 묻는다면 뜨악하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이라고 답하고 싶다.
뭐든 과유불급이긴 하지만 청소도 중독이다.
강박증, 결벽증을 떠올린다면 다소 어수선하고 인간미 넘치는 공간의 흐트러짐 정도는 오히려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아이슈타인, 스티브 잡스 등등 천재들의 책상을 보면 대부분 난장판이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어수선한 책상이 어수선한 마음의 증거라면, 빈 책상은 무엇의 증거인가?"
그의 연구실 사진을 보면 정말 어마어마하다. 책과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바로 그 어수선한 공간에서 상대성 이론이 탄생했다. 과연 그가 매일 아침 책상을 반듯하게 정리 정돈했다면 같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을까?
아이들은 적당히 심심하고 어수선해야 창의력이 자란다.
과학적 근거가 있냐고? 놀이터와 방바닥 근거는 있다.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 하나면 OK! 공부도, 놀이도 그거 하나면 OK! 화면에 홀린 아이들은 심심하지도 않고, 초집중력의 상태다. 당연히 주변도 어질러질 틈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창의적인가?
심심하면 방구석이라도 긁고, 천장의 무늬라도 쳐다본다. 어수선한 무언가에서 생각지도 못한 관계성을 찾아 벌떡 일어나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논다. 이런 꺼리는 심심함과 어수선함에서 탄생한다.
생각해 보자. 어른들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된 공간에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무의식적으로 "아, 뭔가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워진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는 정해진 룰을 따르려고 한다.
반대로 약간 어수선한 공간에서는 어떨까?
"뭘 해도 괜찮겠다"라는 심리적 자유로움이 생긴다.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가 생긴다. 정리된 환경은 우리를 얌전한 모범생으로 만들고, 어수선한 환경은 자유분방한 예술가로 만든다는 얘기다.
창작하는 사람들의 작업 공간을 보면 대부분 공통점이 있다.
'정리된 무질서의 상태'로 본인만의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의 공간, 실행과 완성의 공간을 따로 두고 생활했다고 한다.
아이디어 스케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각종 프로토타입들이 무질서하게 놓인 어수선하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브레인스토밍을, 실행과 완성을 할 때는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치우고 오직 필요한 것만 남겨둔 깔끔하고 미니멀한 공간에서 집중했다고 한다.
시각적으로 복잡한 환경에 있을 때 뇌가 더 활발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양한 시각적 자극이 서로 다른 기억과 연상을 활성화시키고 그것이 예상치 못한 연결과 조합을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너무 단순하고 정리된 환경에서는 뇌가 '절전 모드'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청소를 하지 말자는 억지스러움을 주장하고 싶진 않다.
적당한 어수선함과 건강에 해로운 불청결, 더러움은 다르다.
내가 추구하는 건 '창의적 어수선함'이다. 물건들이 나름의 질서 없이 배치되어 있지만 더러운 건 아닌, 시각적으로는 좀 복잡해 보이지만 위생적으로는 문제없는, 남들 보기에는 정리가 안 된 것 같지만 내게는 편한 그런 환경 말이다.
완벽주의자들을 보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뭔가 안타깝고 짠한 마음이 든다. 뭔가 삶이 애달프고 고달파 보인다고나 할까? 완벽을 위해 애쓰고, 스스로 흡족한 상태에 이르기 전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이따금은 하루 종일 정리만 하다 지치곤 한다.
반면 좀 게으른 사람들은 군더더기 없이 무엇이든 바로 가능하다. 뭐 대충 이 정도면 나이스! 베리굿! 자존감 역시 높다. 타인에 대한 아량, 배포도 크다. 뭐 좀 흘리고 더러우면 어쩌리, 어차피 오늘내일 중 한 번은 치워야 됐을 일. 치우는 것 역시 그리 이들에게는 어렵고 복잡하지 않다.
남들이 보기에는 쯧쯧 저렇게 살아도 산다고? 싶겠지만 용케 산다. 잘 산다. 먹을 거 먹고 할거 하면서 신나게 삶을 향유한다.
이게 바로 게으름이 만들어낸 창의적 해결책이다.
게으름은 적당한 어수선함을 만들고, 그 어수선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냄새도 맡으며 뇌는 창의적인 방향으로 자극이 된다. 계획된 화면 속 이미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게으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정신적 여유와 무해한 존재로 거듭나게 됨이다.
완벽과 청결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이 정도’ ‘이 상태’에 대한 만족과 여유, 아량, 위로 같은 것들은 느슨한 경계에서만 숨 쉴 수 있다. 오로지 내 몸 하나면 충분한 게으름은 전기, 가스, 가공제품, 화학제품에서도 한발 떨어져 궁극적으로 딩굴댕굴 상태에 도달하기를 지향한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 지구를 위해 부지런히, 뚝심 있게 게으르다. 이대로 좋다. 난 게으름은 나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