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연체료...."
깜빡했다. 안 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요금이 아까워 미적거리다 납부기한을 놓쳤다.
단지, 내 것이 아닌 거 같아서 조금 억울해서 내기 귀찮았을 뿐인데 기간을 놓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도 괜찮다. 까짓 거 내면 되고 이로 인해 나의 뇌는 새로운 주름이 강력하게 잡혔다.
매년 가스비, 전기세, 수도세가 번갈아 오른다. 소폭, 유지, 인상, 유예를 거듭하기에 들쭉날쭉하지만 한발 뒤에 물러서서 보면 분명한 상향곡선. 그것도 점점 가파른 상향곡선을 그린다.
전년 대비 동일한 평수 대비 많이 나온 요금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왜 이 요금은 내가 쓴 것 같지 않지? 내가 지난달, 이번 달 이렇게 많이 썼나? 씻었나? 먹었나?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배가 아프다. 내가 뭘 얼마나 따숩고 시원하게 지냈다고! 배 째란 식으로 돈을 내기 싫다.
고백하건대 가장 귀찮은 건 공과금 납부다.
금액이 얼마 되지 않지만 납부할 때, 이체할 때도 폴짝! 가볍게 하지만 무거운 금액에는 손가락도 무겁게 슬로우모션이 걸린다.
그렇다. 나는 돈 내는 게 제일 귀찮다. 이체에 게으른 사람이다.
이 게으름은 뜻밖의 선순환을 만든다.
돈내기 싫으니까 아예 덜 쓰려고 애쓰게 된 것이다.
안 쓰는 콘센트는 강박적으로 뽑고 금방 나갈 일이 있을 때는 (가끔은 만들어서) 더워도 곧 나갈 거니 참는다. 여름엔 그래서 의외로 부지런해지기도 한다. 얼른 빨리 밖으로 나가려고. (카페나 도서관으로 가면 천국이다.)
설거지도 마찬가지. 샤워할 때도 이하동문!
물 끄는 게 귀찮아서 콸콸콸, 줄줄줄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는다면 통장에서, 카드에서 돈이 줄줄줄 콸콸콸 샌다.
질량보존의 법칙.통장 or 수도꼭지. 어디든 새는데 당신이 어느 곳의 누수를 선택할지는 자유다. 전제 조건은 자동이체를 하지 말라는 것. 눈으로 보고 꼭 확인해라.
그리고 단언컨대 수도꼭지 들어 올리는 것보다 불필요한 요금을 납부하는 게 훨씬 귀찮은 일이다. 어차피 한 번은 잠가야 하는데 뭐 하러 몇 분 뒤에 잠가서 통장도 물도 새게 내버려 두는 건지 곰곰이 따져보길 권한다.
자동이체의 단점은 또 있다.
은행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각종 계좌 정보 입력하고... 이것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게다가 나도 모르게 내 통장에서 돈을 빼가는 건 더 싫다. 잔인하지만 보기 싫은 것조차 내 책임이기에 내 눈으로 꼭 확인해야 한다.
확실 사살이 필요하다. '자동 이체'는 내 돈이 새는 것도, 내가 얼마나 낭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망각의 '기억 이체' 시스템이다.
이 게으름 때문에 생기는 ‘연체료’는 아깝지만 이 연체료 때문에 더 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걸 다시금 자각하게 되니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연체료로 인해 이 절약 습관들이 몸에 배이니 돈도 절약되고, 자원도 아끼고 환경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러니 당신도 이 좋은 걸, 꼭 경험해 보길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불하지 않아도 될 가치와 비용을 지불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