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험 허점에 관련해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거 같아. 천유는 좀 버르장머리 없어 보이니까. 박민식이가 나가.”
그렇다. 동안이다. 말 그대로 동안이다. 물론 요즘은 과거 동일 연령 대비 - 7~10을 해야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안이다. 대다수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걸로 치자.
후훗. 나만의 비기가 있다.
게으름. 타고난 게으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욱 아무것도 안 하고 싶기에 주로 누워있으니 아무래도 중력의 영향도 덜 받을 것이고, 움직이는 걸 싫어하니 과도한 운동을 할래야 할 수가 없고, 이로 인한 활성산소로 노화될 이유도 없다.
여기에 하나 더!
"아, 역시 피부는 손을 안대는 게 가장 좋구나!"
나의 게으름은 때론 지탄의 대상이 되지만 이따금 감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수를 안 하니 로션, 스킨 바를 일이 없다. 메이크업을 안 하니 클렌징 없이 물세안만으로도 충분하다. 매일 조금씩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자극이, 매주, 매달, 몇 년이 반복되니 어머! 건성인데도 주름이 별로 없네?
잡티는 워쩔겨? 어머! 이것도 방법이 있네? 선크림은 안 바르지만 양산은 가방에 꼭 넣어 다닌다. 합리적인 게으름은 무의의 상태를 말하지만 반드시 ‘대책’은 있다.
자자, 차분하게 게으름을 팔로우하고 동안으로 거듭나 보자.
세수를 원래 싫어했다. 머릴 감는 것도 귀찮다.
하늘도 이런 내가 불쌍했던 걸까? 한없이 게으른 게 한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 꼴로 살라고 얼굴도, 두피도 기름지지 않은 체질로 나를 존재하게 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모든 게 어진 하늘이 어리석지만 애는 착한 나를 굽어 살핀 게 아니었다. 과학적으로 그런 상태에 맞게 몸이 진화 혹은 퇴화한 것이다.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주변을 보면 피부 관리라는 이름으로 화장대가 빡빡하게 꽉 들어차있다.
토너, 세럼, 에센스, 앰플, 크림… 마치 화학 실험실 같다. 아침에는 이 순서대로, 저녁에는 저 순서대로. 주 2회 팩, 주 1회 필링. 그들의 화장대는 관리의 현장이자, 강박의 전시장이기도 하다.
미에 대한 추종은 인종성별과 무관하지만 유독 한국 여성들에게 두드러지는 걸까?
통계를 보면 한국 여성들은 연간 한 사람당 300–400달러를 스킨케어 구매에 투자한다고 한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스킨케어 단계만 봐도 외국은 대개 클렌저→토너(선택)→세럼(이것도 선택)→크림→선크림 총 3~5단계에 불과한데 한국은 무려 9단계 전후에 이른다고 한다. 클렌징 오일→클렌징 폼(이중세안)→토너→에센스→앰플→로션→아이크림→크림→선크림… 호흡을 따라가기만 해도 다소 숨이 찬다.
노력의 결과로 한국 여성들이 피부가 더 곱다고는 하나, 하나! 한데 말이다. 정말 과연 이게 최선일까? 이렇게까지 많은 제품을 바르는 게 정말 좋기나 한 걸까? 혹시 이중 생략할 단계는 없는 걸까?
그리고 정말 단순히 피부미용에 대한 지식수준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자랑스러워만 해도 될까?
혹시 스스로 필요에 의해 선택적으로 사용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주변의 압박, 눈치, 동질감을 얻기 위해 뒤쳐진다는 부담감의 결과는 아닐까?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과한 관리’가 오히려 피부에 스트레스를 주고 민감성을 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건 아닌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모든 걸 벗어던지고 쉬어야 하는 순간조차 너무 부지런하게 두드리고 문지르고 있다. 아예 손을 안 대는 극단적인 게으름도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많은 화장품을 바르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예전에 유난히 입이 짧고 작은 아기를 둔 엄마에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가 잘 먹고 잘 자면 잘 크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영향이 10% 정도라고 치면 잘 먹고 잘 재우기 위해 엄마와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가 -10% 정도 작용하지 않을까요? 그럼, 결국 제로인데. 구태여 애쓸 필요가 있을까요? 자연스럽게 내버려 둬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맞다. 너무 애쓰지 말고. 적당히 뭐든. 적당히 하는 게 가장 좋다.
피부관리에 대한 게으름은 의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가장 좋은 스킨케어는 피부를 만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것은 ‘적당함’을 말하는 것이지 ‘방치’를 말하는 것은 아니리라.
어쨌든 우리 피부는 원래 자기 관리 능력이 있다. 피지막이라는 자연 보호막이 있어서 스스로를 지키고, 수분을 유지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나치게 세안을 하고, 각질을 제거하고, 화학 성분을 바르면 이 보호막이 무너진다.
그러면 피부는 당황해서 "어? 왜 내 보호막이 사라졌지? 얼른 기름 더 만들어서 보충해야겠다!"라고 반응한다. 결국 더 많은 유분이 생성되고, 더 번들거리는 피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유분을 제거하고, 건조하니까 다시 수분을 제공하는 무한 굴레에 갇힌다.
미용 산업은 우리에게 불안을 판다.
"이 제품 없이는 안 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늙어요"라는 메시지로 우리를 심리 절벽으로 몰아붙이고, 그 불안을 제품으로 채우게 한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그런 수많은 병들이 아니라 피부를 믿고 내버려 둘 용기다.
그리고 양산처럼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해결책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나도 나이가 들면서 변화는 느낀다. 예전처럼 완전히 무신경할 수는 없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 원칙은 같다. 너무 괴롭히지 말자. 스스로도, 그로 인해 이웃한 사람도, 환경도, 내 지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