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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호도 Aug 26. 2022

공통의 관심사는 많은 것을 대변한다

제주살이 9일차 2022년 8월 9일

제주 한주훈요가원 일일 수련을 마치고 쓰는 일기


스승보다 제자가 더 유명한, 이효리요가원이라는 별칭을 가진 한주훈요가원에 다녀왔다. 그리고 이 한주훈요가원 또한 싸치타난다요가(Satcitananda Yoga)라는 정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무엇이 실재인가..ㅋㅋ) 간판은 말 그대로 이정표일 뿐. 한주훈 선생님을 뵙자마자 아, 이곳은 '한주훈요가원'이구나 싶었다. 요가 수련을 하는 사람을 '요기(Yogi)'라고 칭하는데 진정한 요기란 도인에 가깝다고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오전 10시 수련에 참석하였다. 여러 후기에서 미리 예상할 수 있었듯이 정말 힘든 수련이었다. 수많은 보이차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상당한 어색함을 느끼는 인원은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다. 다른 한 분은 초등학교 교사셨는데 방학을 맞아 잠시 제주 여행을 오셨다고 했다. 우리 둘 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한주훈 선생님께서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가운데 숙련자 두 분을 배치해 주셨다.


한주훈 선생님은 수업 내내 끊임없이 말을 하셨다. 경추 몇 번, 요추, 좌골 등 수많은 인체해부학 용어와 산스크리트어로 된 요가 동작들, 그리고 중간중간 넣어 주시는 농담(토끼 배설물 냄새를 맡으면 후굴이 잘됩니다. 다들 토끼를 기르세요.)이 쉴 새 없이 몰아쳐서 웬만한 영어 듣기보다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과묵할 것 같은 첫인상과 다른 수업 방식에 꽤나 당황스러웠다. 한주훈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핸즈온을 잘 안 해주시는 편이라고 하셨다. 자신의 몸에 맞는 움직임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정신을 꼭 붙잡고 '한주훈 듣기 평가'를 다 들으려 노오력 하였다.


마지막 20분의 사바사나를 끝으로 요가 수련은 끝이 났고, 모두가 빙 둘러앉아 차담 시간을 가졌다. 6살부터 스스로 요가 수련에 임했다는 한주훈 선생님은 요가를 가르치며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쌓아 온 관상학 데이터 베이스도 방대한 듯했다. 날 보고 '다재다능하다.'거나 '위장이 좋지 않다.', '술을 마시면 60살까지 밖에 못 살고 술을 안 마시면 125살까지 살 체질이다.' 등 복비를 드려야 할 것 같은 말들을 하셨다.


실제로 나는 스스로 잔재주가 많아 진로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유전적으로 위장이 좋지 않은데 20살 초반 술을 퍼부어 마시면서 엉망진창으로 산 결과 병이 낫기 때문이다.(네이버 블로그 '망할 한포진' 카테고리 참고 https://m.blog.naver.com/ouogb) 조부모님도 단명하셨는데... 술을 드셔서 그랬나? 그렇지만 125살은 너무 했다. 그렇게 오래 살면 좋은 꼴을 못 보여줄 것 같다. 그때까지 건강히 요가를 할 수 있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른 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한주훈 선생님은 고향인 제주도 밖을 딱 2번만 나갔다고 한다. 내 편견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간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은 사람들을 경계했다. 그들은 한 지역에 뿌리를 박고 사느라 그들의 사고 또한 틀에 박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틀에 박힌 사람은 나였다. 나는 몸만 떠돌아다닐 뿐이지, 생각은 한 곳에 고여있었다. 나는 어딜 가나 습관처럼 내가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을 것을 측정하며 계산했고 그로 인해 불행했다. 한주훈 선생님의 일화를 들으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한순간도 갇혀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 나는 정작 감옥에 갇힌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고 나만이 유일하게 세금을 내고 감옥 바깥에 있는 자유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그들은 나의 육신을 감금하고 내가 수감된 감방 문을 철통 같이 지켰지만 나의 정신까지 가두지는 못했다. 그들이 감방 문을 자유롭게 드나들듯이 나의 정신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감옥을 드나들었다.



향긋한 보이차와 함께 한 차담도 끝이 나고, 근처 식당으로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제주 와서 처음으로 다양한 직업군/나이/출신의 사람들을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다.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트이는 기분이 정말 상쾌했다.(이게 퇴사의 맛이지... 크으으...) 돈벌이 수단으로 '회사'란 곳에 있을 때도 여러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로 다녔는데 회사 밖엔 더더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확실한 건 돈을 목적으로 만났을 때보다 기분이 훨씬 좋았다는 것이다. 오늘 만난 사람들은 요가를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공통의 관심사는 많은 것을 대변한다. 대화가 이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내가 비싼 돈을 주고 일일 수련을 하러 요가원에 간 이유는, 더 깊이 있는 수련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있었지만 요가를 삶에 녹여낸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롤모델을 찾기 위한 여정이랄까. 어제 일기에서 썼던 것처럼 '이 정도로 요가를 좋아하면 요가를 생업으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란 고민이 한가닥 있었다. 실제로 요가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보니 몸을 움직여 수련하는 시간 외에도 끊임없이 수행을 하는 모습(식단 관리, 수면시간 관리, 명상을 통한 마음 관리 등)이 매우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죽을 때까지 요가를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도구 및 재미있는 취미로 즐기기로 하였다. 돈벌이 수단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택해야겠다.



요가 수련을 통해 균형 잡는 법을 배우고 있다. 몸이든 인간관계든 인생이든. 내 한계를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파도소리, 갈매기 소리가 사방에 꽉 차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집중이 잘 된다. 자연이 내는 소리는 시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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