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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호도 Aug 18. 2022

제주도로 떠나는 백수 노마드의 일기

제주살이 1일차 2022년 8월 1일

김포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 곧 저녁 비행기로 제주도에 도착할 예정이다. 국내 여행의 성지, 제주도로 가는 설렘… 따윈 없다. 나는 지금 ‘거처를 옮기고’ 있는 중이다. 이번엔 돈벌이 수단도 없이 가는 거라 약간 불안하기까지 하다. 다들 퇴사하고 제주도 간다고 부러워하는데 난 왜 아무 감흥도 없는 건지. 그나마 8월 성수기를 맞이하여 휴가를 낸 친구 몇몇과 제주도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내가 가는 곳이 제주도 임을 일깨워주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노마드. 즉, 떠돌이 인생의 시작은 정읍이었다. 당시 정읍은 코로나 확진자가 0명인 전국에 몇 없는 코로나 청정지역이었다. 나는 코로나 피해서 학원을 다닌다는 핑계로 가출을 했다. 그마저도 이모네였다. 두 이모 댁에서 매일 바뀌는 반찬과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먹으며 처음으로 ‘K-엄마’의 손길을 느꼈다. 이래서 다들 힘들 때 집밥 타령, 엄마 타령하는구나 싶었다.(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우리 엄마가 못 해서라기 보다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다른 ‘K-엄마’들이 상주하는 집들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시골 생활은 심심하기 짝이 없었지만 꽤 살만했다. 코로나로 아수라장이 된 수도권을 떠나와 건강 염려증이 사라진 것만 해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그랬나? 첫 번째 정규직 일자리를 가평 산속에 얻었다. 기숙사가 있어 숙식제공이 되는 곳이었다. 나의 두 번째 가출이었다. 일은 그럭저럭 할만했다. 공부한답시고 앉아만 있던 몸이라 서서 일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사람 적응이었다. 밤마다 전화를 붙잡고 그나마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온 친구들에게 하소연과 고민 상담을 하였다. 내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위로해주고 조언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시간이 지났고 쌓인 시간은 경험이 되어 비교적 무탈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고립된 산속 생활은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는 나는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란 점도 힘들었다. 그래서 운 좋게 집 근처 지점으로 옮길 기회가 생기자마자 부리나케 기숙사 짐을 정리하고 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출 생활을 오래 한 탓인지 집이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생활하긴 편한데... ‘우리 집’이란 느낌이 없어졌다. 이제 진짜 독립할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집을 나갔다. 이번엔 출가였다.


가평 생활에서 인프라의 중요성을 실감한 나는 도시의 번화가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서울의 월세를 감당하기엔 내가 택한 직업의 월급이 너무 작아 숙식제공을 해주는 동탄신도시에 가기로 했다.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일자리, 잠자리, 요가원, 스터디 카페가 한 블록 내에 모여 있는 최상의 입지였다. 첫 일주일은 건물 4개만 왔다 갔다 하며 살았다. 너무 편했다.  편리함은 돈 쓸 곳이 가득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결국 스트레스 해소라는 명목으로 불필요한 외식을 했고 그게 습관이 되는데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어렵사리 끊었던 당 중독에 다시 빠지게 되었다.(남들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것만큼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마침 일터에서도 적응을 못&안 하고 있던 터라 엉덩이가 다시 가벼워지기 쉬웠다. 내게 필요한 건 더 멀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주 워홀을 신청했다. 비자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빨리 나왔다. 충동적으로 워홀 비자를 신청해 아무 계획이 없던 상태였다. 잠시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었다. 거긴 이미 집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친구가 흘러가듯 말한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텝’에 마음이 동했다. 머릿속으론 이미 스텝으로 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침 여름이고, 로망 실현 한 번 해보자 싶었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모집하는 글들을 몇 날 며칠 뒤진 결과 맘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카톡이 몇 번 오가고, 나는 두 달간 제주도에서 내 한 몸 누일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제주도 게하 스텝은 대게 숙식제공을 받는 대신 무급으로 일한다.)


노마드이길 자처한 나지만 실은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게 어디인지 모를 뿐이다. 그래서 내 몸과 마음이 편히 지낼 곳을 찾을 때까지만 이렇게 떠돌아다니며 지내는 거라고 스스로 타협했다. 과연 그런 곳이 있기나 한 걸까 의문이지만 말이다. 돈 주고도 못 사는 시간을 ‘청춘’이란 두 글자로 낭비하는 건 아니겠지. 뭐라도 남기자라는 마음으로 이번엔 남몰래 써오던 일기를 전체 공개하고자 한다.




동탄에서 매일 퇴근하고 먹었던 카페 음료수들. 음료수 마실 때만 잠시 행복했다.^^;
제주 버스터미널에 있는 마스크 자판기. 코로나 언제 끝나?(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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