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도호도 Sep 30. 2022

제주도 여행 중에 맞이하는 추석

제주살이 41일차 2022년 9월 10일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 사람의 감정을 극심한 우울&슬픔(0)~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쁨(100)까지 있다고 할 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평소에 기분이 50이다. 조증인 사람들은 갑자기 100까지 치솟는 경향이 센 편이고, 우울증인 사람들은 0으로 가는 경향이 센 편이다. 그러면 조울증은 0에서 100까지 왔다 갔다 하는 거라고 생각되겠지만 사실 50에서 100까지 왔다 갔다 하는 편이 많다고 하였다. 100까지 쉽게 올라가서 50만 되어도 우울하고 슬프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내 작은 눈이 순간적으로 엄청 커졌다.(유레카!) 그래서 내가 우울했었구나. 객관적으로 따지고 보면 우울할 일도 없는데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는 내 꼴이 우스웠다. 그동안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으면 100인 상태가 많았을까. 이제는 체력이 받쳐주지 않고 그에 맞게 욕심도 없어져서 50 정도가 된 것인데... 그런데 나는 살면서 이런 적이 처음이라 계속 당황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사춘기가 10대 때 안 오고 20대 후반에 와서 참 살기 팍팍하다.


그래도 배에 기름칠은 할 수 있었다. 퇴근할 무렵, 사장님께서 추석 맞이 전을 한가득 싸주셨기 때문이다. 반찬통에 가지런히 담긴 전들이 오늘 하루를 조금은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제 나의 체력에 한계를 느껴 요리를 안 하기로 결심하였지만(본격적으로 일한 지 고작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앉으나 서나 무릎이 시리다.) 여전히 음식이 주는 이 따뜻한 느낌은 너무 좋다.


기분이 조금 좋아져서 일까, 식욕이 조금 돌아왔다. 이왕 먹는 거 제대로 먹고 싶어서 컵라면에 김치까지, 상을 차렸다. 후루룩 후루룩 냠냠 쩝쩝. 맛있게 먹는 사이, 과식 증상이 다시 도졌다. 2~3일은 두고두고 먹겠다고 생각한 전 한 통을 다 비워냈다.(이거 저녁도 아니고 야식인데...!) 그리고 홀린 듯이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나에게 프랑스인의 피가 흐르는지, 배가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후식은 먹어야 했다. 아이스크림 중독자인 나는 영화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두 통이나 퍼 먹었다. 영화도 별 재미가 없었고 아이스크림도 도통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든 적당히 즐기다 끝내는 법을 모르는 나는 나 자신을 해치기를 참 잘한다. 이런 걸 중독이라고 하는 거겠지? 조울증으로 시작해서 중독으로 마무리 짓는 오늘의 일기가 참 씁쓸하다.


프로 과식 쟁이인데 그나마 건강한 이유. 야채를 좋아함. 양파 몽땅 넣고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땡그란 보름달, 눈 부셔서 못 볼까 봐 구름이 얇은 커튼을 드리워줬다.


이전 15화 제주도에서 찾은 삶의 단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