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도호도 Oct 02. 2022

제주도 스텝 생활을 마치고 쓰는 일기

제주살이 43일차 2022년 9월 12일

고기떡볶이 재료를 싸들고 가게로 향했다. 제주도 돼지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고기 떡볶이를 만들면 정말 맛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 전엔 방에 틀어 박혀 있느라 가게에 얼씬도 안 하던 내가 점심 시간에 밥을 같이 먹자고 가게로 간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내가 고기 떡볶이를 만든다고 하니 쉐프 사장님이 가게 주방을 내어 주시고 재료도 이것저것 주셔서 아주 편하게 요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장님은 내가 떡볶이 하나를 만드는 동안 옆에서 잡채, 전, 김말이, 우엉김밥을 뚝딱 준비하셨다.(WOW) 나도 사장님도 손이 커서 순식간에 분식 잔치상이 차려졌다.


사장님 두 분과 카페 직원 언니, 그리고 나까지. 넷이서 분식상 앞에 둘러 앉아 밥을 먹었다. 진작에 이렇게 편안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으면 참 좋았을텐데… 순발력이 부족해 늘 타이밍을 못 맞추는 나는 근무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사람들 틈새로 다시 나오게 되었다. 남들은 놀 시간도 부족한 여행지에서 여행도 제대로 안 한 시간이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처절한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나니 다시 바깥 세상에서 재미있게 놀면서 그리고 일하면서 잘 살 자신을 얻게 되었다.



주방에서 쉐프 사장님이 나에게 해주신 말. 사장님도 지금보다 어릴 때 뭔가를 절제하려고 해서 힘들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절제하는 걸 안 하려고 노력하였는데 나중에 그것 또한 '절제하는 걸 안 하려고 절제하는' 것 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스스로 절제하는 성향임을 인정하고 나니 편안해졌다고...


듣는 순간 와! 탄성이 절로 나오면서 머릿속이 한 층 더 개운해졌다. 그래, 난 어느 정도 강박이 있는 사람이야. 그냥 그대로 살면 돼. 난 나답게 살면 돼.


나는 언제 어딜가나 주변에 이랗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꼭 한 명 쯤은 있었다. 방랑벽을 어찌할 수 없는 인생, 인복이라도 많아서 참 다행이다.


푸짐하게 차려진 오늘의 분식상. 네 명이서 안 남기고 다 먹은 거 실화? ㅇㅇ.
안 놀아준다고 방충망 찢어버린 담이. 그래도 귀여워...


이전 17화 중독은 새로운 중독으로 치료해야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