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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으로 충만한 기념일

by 서린

어렸을 적 기념일은 전부 보이는 것들 중심이었다. 케이크와 촛불, 꽃과 풍선, 선물과 근사한 식탁. 반짝이는 장면들은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터졌다가 금세 사라졌다. 화려한 만큼 허무함도 있었다. 그래도 기념일은 좋았다. 함박웃음이 함께했고 두 손을 마주치게 했다. 눈과 귀, 그리고 입을 사로잡는 무언가와 더불어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니 말이다.



작고 화려한 순간들은 차츰 덜 화려하지만 더 깊은 순간들로 대체되었다. 열손가락보다 더 넘치게 초를 불었던 생일에서 점점 한 번의 초를 불까 말까 싶은 생일로 바뀌었다. 가볍고 반짝이던 만남들은 무겁고 진중한 만남으로 줄어들었고, 초를 부느냐 마느냐는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어느덧 각종 행사에도 무덤덤해졌다. 삶이 무상하게 느껴졌다. 결혼식날에도 큰 감흥이 없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던 공주놀이는 즐겁지 않았다. 그냥 해야 할 일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만 남았다. 그날 내 마음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외부의 것으로는 더 의상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을 때 삶은 다시 활력을 되찼았다. 능동적으로 삶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자 인생이 달라졌다. 사소한 선택과 경험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의 울타리를 넓혀갈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다.



작은 의미들이 모여 기쁨과 충만함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념일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기념일이니깐’ 보내는 날이 아닌 의미로 빚어낸 기념일은 ‘처음에 지녔던 마음과 느낌을 감사히 되새기는 날’이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진짜 기념할 이유를 곱씹고 서로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기념하기까지 존재하게 해 준 모든 존재에 감사하며. 그렇게 아이들과 공휴일, 명절 그리고 우리가 새로 만들어나가는 기념일까지 우리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음미하며 살고 싶다. 그럼 매일이 기념일과 별반 다름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기념일은 이제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잠시 눈을 감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기념일을 기념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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