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계획과 즉흥 사이

by 서린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MBTI가 유행한 지 몇 년이 된 듯함에도 우리의 대화는 여전히 P인지 J인지, 혹은 F인지 T인지로 흘러간다. 이분법적 성격 분류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나’를 하나의 고정된 사고의 틀 안에 가두어 무궁무진한 변화 가능성을 스스로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수년간 나를 탐색했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상황 혹은 관계에 따라 내 모습이 일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MBTI에서 P(Perceiving)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을 선호하며,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인식형을 뜻한다. J(Judging)는 질서와 규칙을 중시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며, 목표를 향해 체계적으로 나아가는 판단형이다.



나는 P와 J의 결과가 반반씩 나온다. 예를 들어 나는 저녁 식사 시간 한 시간 전까지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냉장고에는 다양한 재료를 미리 채워두고 냉동실에도 여러 가지를 얼려둔다.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조합해 요리하기 때문이다. 여행도 크게 계획하지 않는다. 짐은 꼭 출발 1-2시간 전에 싼다. 한 달 정도 장기 여행을 가는 경우는 전날 싸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P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가장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고 나를 아는 대다수는 내가 J인 것 같다고 한다. 나는 늘 1년 뒤, 3년 뒤, 5년 뒤 꿈과 계획이 있고 주로 그것들을 달성해 왔다. 세세한 계획은 세우지 않지만 큰 그림을 늘 염두에 두고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 계획은 세우지만 또 융통적이다. 세세한 계획은 거의 대다수 지키지 못한다. 그래도 늘 미래의 목표가 있어서인지 검사를 하면 또 절반의 경우엔 J라고 나오긴도 한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며칠 전 MBTI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계획을 세워놓고 못 지켰을 때 스트레스받아?”

“음… 아니? 계획은 늘 못 지키는데? 자책을 좀 하긴 하지.”

“그렇다면 너는 P야.”



웃음이 났다. 사실 나는 내가 P인지 J인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P이기도 J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P처럼 살기도 하고 J처럼 살기도 한다. 기왕에 어떤 유형인지 모를 바엔 한 번 더 극단적으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한없이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살아보다가도 나를 계획과 체계 안에 한 번은 제대로 구속해보고 싶기도 하다. 양 극단을 끝까지 경험해 봐야 진정으로 P와 J의 중심에서 때에 따라 각각의 장점을 더 잘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은 그래서 하루를 절반으로 나누어 실험 중이다. 오전에는 계획과 규율 속에 나를 구속하고 오후에는 나를 자유롭게 해보려고 한다. 오전까지 하루를 벌면 나머지 반나절은 자유다!! 그렇게 나는 하루를 두 번 살아보려고 한다.




Untitled_Artwork 32.jpg


keyword
이전 27화가장 좋아하는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