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좌충우돌 멘토링_2』 오십 네번째 글
“멘토링이라고 하면 뭔가 단번에 판을 뒤집어줄 마법 같은 처방을 기대하는 창업자들이 있다. 그러나 현실의 멘토링은 훨씬 사람 냄새 나고, 함께 구부러지고 깨지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글은 스타트업 현장에서 만난 작은 에피소드와 ‘멘토링은 마법이 아니다’라는 진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멘토링 자리에 앉을 때면 늘 마음속으로 되뇌는 말이 있다.
“오늘도 누군가의 문제를 대신 풀어주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방향을 찾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어느 오후, 작은 카페 구석에서 한 팀을 만났다. 팀원 셋이었는데, 첫인상이 꽤 경쾌했다. 그중 대표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동시에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말을 시작하자마자 그 초조함의 이유가 드러났다.
“멘토님, 우리가 뭘 해야 할지 명확하게 알려주시면 그대로 실행하겠습니다. 그냥 정답만 주세요.”
그 말을 들으면서 순간 숨이 한 번 걸렸다.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정답을 기대한 이유가 뭘까요?”
대표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이제 6개월이 지났는데… 계속 제자리입니다. 그래서, 누가 툭 건드려주면 확 넘어갈 것 같아서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늘 마음이 조금 아릿해진다. 창업이 얼마나 버거우면 ‘누군가의 한마디’에 모든 걸 기대고 싶을까. 그런데도 나는 멘토링 자리에서 단번에 해결해주는 영웅 역할을 해본 적이 없다. 아니, 할 수도 없다. 멘토링은 애초에 그런 자리가 아니다.
그날도 나는 우회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드리는 말 중에 여러분의 판을 바꿔놓을 마법 같은 문장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의 뿌리를 함께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대표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과 첫 시간에 우리가 했던 일은 의외로 단순했다.
지금까지의 실행 기록을 하나씩 펼쳐보며 “왜 그렇게 했는지”를 되묻는 것.
무엇을 했느냐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자, 팀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저희…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 여러 곳에서 들은 조각들을 붙여서 계속 바꾸기만 했어요.”
그 말에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팀이 그다.
지속적으로 바꾸는 것은 좋은데, 이유 없이 바꾸면 ‘방향 상실’이 된다. 방향 상실이 반복되면 ‘무기력’이 된다. 그리고 그 무기력이 쌓이면 마지막에 ‘멘토의 정답’을 기대하게 된다.
그날 우리가 한 멘토링의 핵심은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문제를 먼저 정확히 정의해보자.”
"많은 창업팀이 '어떻게(How)'를 고민하느라 밤을 새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무엇을(What)' 그리고 '왜(Why)' 해결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멘토링은 바로 그 'Why'를 찾아주는 시간인 것이죠"
대표는 처음 그런 접근이 어색한 듯 보였지만, 세 번쯤 되묻고 나서야 표정이 바뀌었다.
“아… 그러니까 우리가 겪는 문제는 고객이 없는 게 아니라, 고객을 만날 장면을 설계하지 못한 거군요?”
그 말이 나오자마자 나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멘토가 던져준 답이 아니라, 팀 스스로의 머릿속에서 연결된 문장이었다.
멘토링이 의미 있으려면 이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멘토의 말이 아닌, 창업자의 언어로 문제의 본질이 정리되는 순간.
거기서부터 비로소 ‘자신의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그 팀은 갑자기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전에는 외부 정보와 조언에 흔들렸다면, 이제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이 생겼다.
실패를 해도 이전보다 훨씬 덜 흔들렸다.
자기 문제를 자기가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멘토링을 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멘토님, 우리도 이제 감이 좀 잡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되묻는다.
‘감’이 아니라 ‘이해’를 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 말 뒤에 숨은 마음을 알기에 굳이 교정하지 않는다.
감이 생겼다는 말은 정답을 들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갈 힘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돌아보면 멘토링은 화려하지 않다.
창업자들은 종종 ‘한 방’을 기대하지만, 나는 늘 ‘축적’을 이야기한다.
정답이 아니라 과정, 방향, 선택의 원칙을 점검하는 그 지루해 보이는 시간들이 결국 팀의 근육을 만든다.
마법은 없지만, 변화는 그 속에서 천천히 자란다.
가끔 어떤 팀은 후속 멘토링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멘토님, 지난번에 큰 도움 받았습니다. 근데 사실 그날 뭘 배웠는지 한 문장으로 말하라면 잘 모르겠어요.”
나는 대답한다.
“괜찮습니다. 창업에서 중요한 건 튀는 한 문장이 아니라, 살아남게 하는 사고방식이니까요.”
멘토링은 화려한 해답 쇼가 아니다.
조용한 길 찾기 여행에 가깝다.
창업자는 자신의 걸음으로 길을 만들어야 하고, 나는 그 길 옆에서 조심스럽게 돌을 치우거나 나침반의 방향을 확인해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멘토는 결승선에서 기다리는 심판이 아니다. 선수와 함께 뛰며 호흡을 맞춰주는 페이스메이커다. 선수가 너무 빨리 달리면 속도를 늦춰주고, 지쳐서 포기하려고 하면 옆에서 함께 뛰어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존재다."
그래서 나는 멘토링 자리에 앉을 때 늘 마음을 가볍게 한다.
누군가의 인생을 완벽하게 바꿀 수 있다는 과한 책임감도 내려놓고,
누군가를 단숨에 성장시켜줄 수 있다는 환상도 내려놓는다.
단 하나만 남긴다.
“오늘 만난 이 팀이 스스로의 길을 조금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멘토링은 마법이 아니라, 함께 걷는 시간이다.
"오늘 당신이 만난 멘토는 당신에게 정답을 주었는가, 아니면 스스로 답을 찾을 용기를 주었는가? 멘토링은 마법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당신은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