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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범 Jul 18. 2024

색(色)이 필요 없을 때.

찐-한 흑백의 기록

디지털 컬러사진에 흑백 필터를 사용해 봤던 날의 감흥이 아직 여전해요.


비가 잦아들길 기다리던 서점에서 창가를 바라보다 우연히 차도(車道)를 무단횡단하던 사람을 발견했던 적이 있죠. 당혹스러움과 불안감을 단 번에 불러일으키는 그 모습이 꽤 강렬한 사진으로 남을 것 같아 빠르게 포착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많은 아쉬움을 느껴졌어요. 왜냐하면 제 눈에는 선명했던 특유의 장면이 이런저런 거추장스러운 도시의 색(色)에 많이 묻혀 있었기 때문에요.


그렇게 아이폰의 기본 흑백 필터를 씌워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찌 된 게 아무 색깔이 없는 사진에서 피사체가 더 선명히 보일 때가 많더라고요. 슴슴하지만 잊지 못할 매력의 평양냉면과 닮았달까! 과거의 방식인 흑백사진을 오늘날 고집하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조화스러운 컬러들로 눈이 피곤한 현대의 거리에 딱 알맞은 사진의 표현 방식이 아닐까요?

by Evan Vucci(Chief Photographer in Washington), 좌측 사진은 편집되었음.

설익은 미적 지능을 강요하는 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감,


오직 빛으로 그려낸 흑과 백의 조화로움이

잡아놓은 찰나의 기록,


꾸며낸 감흥의 부담감을 덜어

사진의 느낌이 더욱 도드라지는 명민함.


이렇고 또 저렇고, 

저만의 이유들로 흑백사진이 좋습니다.


소중히 아끼며 넣어두었던 그때의 순간을 꺼내볼 때마다 바래져 가는 색 같은 건 없이 그대로 남아 있어 주는 고마운 기록물이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들도 저와 비슷한 이유로 좋아했으면.


� 저의 사진들은 비 전공자의 기록물로서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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