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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Nov 04. 2024

함께 떠나다

 우리가 집을 나와 독립한 것은 찌는 듯한 한여름, 8월의 어느날이었다. 집을 나가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나 굴뚝같았다. 그런 순간은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자연스럽게 울리는 고성과 싸움과 화로 가득한 공간, 모든 구질구질한 것들로부터 언제나 떠나고 싶었다.


  그럼에도 집을 떠날 용기가 쉬이 나지 않았다. 집을 구하고 계약을 하는 등 독립의 일련의 과정은 두려운 미지의 세계여서 나는 안일하게 현재에 머물렀다. 그랬던 마음상태에 불을 지핀 계기는 근무시간 중 아빠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다.


 아빠는 갑자기 미안하다며 집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 모아놓은 돈이 없냐고 물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중에도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내가 그만한 돈이 어딨겠냐고 반문하자 전화는 끊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아빠는 장문의 편지를 남기고 정말로 집을 나간 상태였다. 편지의 내용은 엄마 몰래 엄마 명의로 대출을 해서 빚을 졌다,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안되어 집이 차압이 들어가게 생겼다, 결국 우리가 알아서 어떻게든 빚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수차례 겪어온 부모님의 무책임함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지만, 그때만큼 화가 나고 치가 떨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나를 더욱 화가 나게 만든 것은 너무나 당연한 듯 모아놓은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엄마였다. 그때 지금 집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당장.


 급하게 월세방을 구하러 다니던 그 여름에 어쩐지 지9살의 겨울이 생각났다. 그때 부모님은 우리 네 식구가 살게 될 집을 찾고 있었고,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아까 본 그 집이 더 마음에 든다며 훈수를 놓기도 했다. 그때 나는 드디어 가족이 모여 산다는 사실에, 이제 나도 내방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그 방이 예쁘고 아기자기해질 거라는 꿈에 부풀어 행복했었다.


 그리고 그 집에 20여년을 함께 살았다. 그런데 그 긴 세월동안 우리가 함께 웃었던 기억이 너무 희미해서 슬펐다. 도망치듯 집을 떠나려 하는 그때, 혼자 남을 엄마에게 드는 어쩔 수 없는 죄책감, 괴로운 기억들로 점철된 공간을 드디어 떠난다는 해방감, 앞으로의 우리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뒤얽혀서 나는 울고 싶었다.


 독립을 결심했을 때 나와 동생이 함께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것은 서로밖에 없었. 내가 집을 떠나는 선택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도 동생이 함께 했기에 낼 수 있는 용기였다. 작은 트럭에 옷가지들을 챙긴 이삿짐 몇 개를 싣고 함께 집을 떠났다. 어차피 멀리 가는 것도 아니었고 혼자서 금융 일을 처리할 줄 모르는 엄마를 도우러 집에 수시로 들러야 했지만, 공간이 분리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 우리만의 공간에 처음으로 놓여졌다. 원치않던 온갖 소음들로부터 멀어졌고, 이해할 수 없는 온갖 규칙들로부터 해방되었다. 비록 남의 집을 빌린 것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었다. 독립은 우리의 삶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 자매 둘만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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