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릭스 leex Aug 12. 2022

76년생 L과장, 공황장애가 온다

반백의 글 휴지통 休智通 _ 아플 땐 쉬어가. Pause

마흔이 됐을 무렵의 나는 무척이나 흔들렸다. 특히 회사에서의 나는 더욱 불안했다. 더 큰 문제는 그 사실을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고가 난 직후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타박상을 입었음에도 벌떡 일어서서 아무렇지 않은척 걸어다니려 했던 꼴이랄까?


천성적으로 약간의 반골기질이 있는 편이었다. 이를테면,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미국 프로야구의 절대강자인 뉴욕 양키스 보다는 약자의 이미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응원하는 그런 식이다. 강자가 이기는 것은 당연해서 흥미가 없고 약자가 강자를 들러 메치는 사건에 관심이 가는 타입 말이다.


회사에 들어와 사람들을 보며 느낀 사실은 그 반대의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었다. 강자의 강함에 매료되고 그들의 편에서서 이기는 일에 참여하고 싶은 본능을 가진 사람들. 악의 제국이든 뭐든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었다. 그들은 학벌로, 지연으로 어떻게든 연줄을 걸어 정치를 만들고 줄을 내려주고 내려받으며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공고히 구축해왔다.


그 안에 드는 것도 능력이라는 인식은 그렇지 못할 사람들을 좌절케 했다.


"누군 뭐 좋아서 그러는줄 알어?"

맞다. 자신을 버리고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좋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만 적어도 체질상 거부반응은 없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전형적인 회사체질 말이다. 조금만 비굴하면 더 큰 성과가 눈에 보이는데 그쯤이야.


문제는 연차가 쌓이고 직책이 올라가면서 불거진다. 대리 정도의 직책이라면 그저 자신의 일만 적당히 잘해내면 별 문제 없다. 물론 그 시점부터 어떤 유력자와 연이 닿아야 할까 고심하고 그런 일에 특화된 사람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일에, 일상적 관계에 두드러지지 않는 평범한 삶을 이어간다.


그런데 과장 이상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누구의 사람이 되었는가? 에 따라 평가와 승진 등에 그 당장 영향을 미친다. 고분고분 예스맨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때에 따라 마음에 내키지 않는 서비스까지도 가리지 않아야 한다. 회식이 끝나고 대리기사가 올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은 양반이고, 주말이면 등산이나 골프 멤버 채우기에도 동원된다.


이른바 마음의 거리다. 놀랍게도 마음의 거리는 학술적 용어도 있다. LMX(Leader Member exchange) 리더와 구성원 친밀도에 따라 in group 과 out gruoup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이론인데, 마음의 거리 만큼 찰떡인 용어가 없다 싶다.


유력자와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 in group에 속한 팔로워들은 평가, 승진 등 합당한 보상을 받는다. 때론 역량과도 관계없이 말이다.


마음으로 존경하고 가까이 하고 싶은 상사라면 우러나서 그렇게 하겠지만, 무언가를 노리고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건 스토리도 없고 감동도 없으며 자기 자신의 성장을 정체 시켜 사회적 난장이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되려,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고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조직문화책임자로써 담당 임원을 들이받는 지경까지 갔다. 회의 자리에서 고성이 오가고, 얼굴을 붉히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일도 잦았다. 팀원들의 표정은 좌불안석. 나는 그 행동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믿었다. 구성원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으니까. 당연한 일이라고도 믿었다.


그러던 어느날,


"L장, 다 좋은데 말이야.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임원에게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남는게 뭐야? 조직문화가 이렇게 된게 사실은 조직문화팀이 일을 잘못해서 그런거 아니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평소 친분이 있던 모팀장이 나를 은밀히 불러 누군가의 속내를 전해 주었다. 회사의 문제점을 격정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임원, 팀장들을 꾸짖듯 말했다는 것이다. 순간 할말을 잃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반응이라니, 더 큰 충격은 의외의 곳에서 전해졌다.


"장님 말이야. 왜 이렇게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그냥 앞에서는 예 하고 따로 방법을 찾던지 하면 될텐데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을 해서 상무님을 열받게 하는거야? 우리에게도 불똥 튈까 조마조마했네."


정확한 워딩이 무엇이었는지, 그 말이 어떻게 내게로 전해졌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지만, 믿었던 내 사람들이 저런식의 반응을 보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터였다.


순간,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할말을 하고, 내 기준을 지키고, 누군가에게 굽신거리지 않는다는 내 나름의 소신이 누군가에겐 고집세고, 감정적이고, 상황 파악을 못하는 독불장군으로 읽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엔 사람 그 자체가 싫어지기도 했다. 그 무렵의 나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다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사람을 가리고 오직 내가 믿을만한 사람만을 곁에 두려 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들 또한 내가 편을 가르고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보통의 상사들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인격적으로 완벽하거나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도 나는 무슨 자신감으로 나를 도모하면 된다고 믿었을까?


오직 사람을 자르는데만 혈안이 된 직속 임원을 빌런화하고 그들과 얼굴 붉히며 대립하기만 하면 꽤나 정의로운 '직장인'이라고 홀로 자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몸에 이상이 생겼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 같은 생각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탈때도 사람이 많아지면 같은 증상이 생겼다. 서있지를 못하고 주저앉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을 자다가도 심장이 멈출 거 같은 두려움이 들어 잠에서 깨어났다. 차를 운전하다 증상이 시작되면 죽음을 눈앞에 둔 것 같은 두려움이 온몸을 지배했다. 지금도, 운전을 하며 그 증상이 생겼던 장소는 다시는 지나가지 못한다.


평소 1년에 한번도 병원에 다니지 않던 나는 6개월여간 온갖 검사를 다했다. 심장초음파, 혈관검사, 뇌기능검사 등 이른바 검진 쇼핑을 하고도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응급실에 제발로 찾아간 것만 5차례.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였다.


자신을 모르면 몸과 마음에 병을 얻게 되어 있다. 버티려고만 하면 어느순간 부러지게 마련이다. 부러지기 전까지는 모른다. 자신의 내면을, 몸을. 한 번 무너진 몸과 마음은 내 의지를 벗어나 멋대로 상상하고 아프고 나를 나에게서 앗아 간다.


연예인의 병이라고 알려졌던 공황장애가 요즘 심심찮게 들려온다. 직장의 구조를 감안하면, 이런 유행이 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다.


남자는 태어나 세번 운다고 했던가?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내면을, 몸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로 위태위태하게 관계를 맺는 오늘날의 중년들. 그렇게 버티어 남는 것은 몸과 마음의 병 뿐이다. 한번 부러지고 나면 회복이 좀처럼 쉽지 않다.


쉰을 앞둔 마흔일곱, 반환점이 눈에 들어오는 시기다. 반환점을 돌면, 남은 힘이 아닌 새로운 힘으로 가야 한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절대로 새로운 자기를 들일 수 없다. 고요한 상태로 멈춰서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 그렇게 포착한 몸과 마음이 주는 신호는 준엄하다. 여기에 저항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다. 아주 작은 챙김으로도 회복이 가능했던 시기가 지나면 더 큰 댓가를 치르고도 되돌리기 어려운 지경이 될지 모른다.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나 자신을 멈춰 세웠다. 운좋게 어린시절부터 마음에 품었던 꿈의 목소리를 포착해냈다. 오랜시간 일해왔던 조직문화와 사람 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글이라는 하드웨어에 담는 일을 하기로 결정한 일은 나를 살리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거짓말처럼 그날 이후 공황증세는 서서히 사라졌다. 매일 글을 읽고 쓰는 일상속에서 공연한 

작가의 이전글 준비 없는 마흔 다섯의 퇴사, 그 동화같은 결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