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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Aug 18. 2022

연남동 출판사 미팅의 추억. feat.분노의 돼지불백

글을 쓰고 싶었어

'띠링' 

임원 보고용 PPT 장표를 작성하던 중 메일 도착 알람이 울렸다. 제목을 보니 Re...로 시작하는 출판사 투고 회신 메일이다. 약 6개월에 걸쳐 조직문화 관련 경험담을 A4 100페이지 분량으로 완성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에 들러 출판사 이메일을 수집하길 일주일, 약 50여개의 출판사에 일일이 투고 메일을 보냈다. 자못 비장한 마음으로 send 버튼을 누르고 한동안 희망에 부풀었더랬다.


'이 정도면 그래도 한 두군데 출판사에서는 연락이 오겠지?'


회사에 출근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혹시라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가슴이 쿵쾅거려 사무실을 박차고 뛰쳐나가길 수차례. 대개는 광고 전화이거나 빌어먹을 여론조사 따위였다. 또 다시 일주일이 흘렀고 희망은 실망으로 실망은 좌절로 바뀌어가던 중 날아온 출판사의 회신 메일에는 별 기대가 없었다.


[선생님의 옥고는 훌륭하나...저희의 역량이 부족해...]

따위 Ctr C, Ctr V 자동응답 회신일테지. 일주일만에 그들의 생리를 훤히 알아버렸달까? 시큰둥한 마음으로 메일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XXXXX출판사입니다. 저희 출판사에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검토를 해본 결과 흥미가 있어 회신 드립니다...]


앗, 뭔가 다르다. 눈이 번쩍 뜨였다. 자세히 눈을 비비고 내용을 재차 확인했다. 두번 세번, 네번 거듭 읽고 또 읽었다.


[...원고와 관련하여 미팅을 할 수 있을까요? 저희 출판사는 연남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팅 요청 메일. 나는 환호했다.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쳐다봤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몇 번을 더 확인해봐도 분명한 미팅 요청이었다. 그동안 투고 성공 후기를 모조리 찾아보며, '출판사 미팅 = 출간계약' 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 어렵다는 투고를 뚫는 것인가? 설레기 시작했다.


그 즉시 '언제든 괜찮다. 시간만 정해서 알려다오.' 회신 메일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왠지 그래선 안될 것 같았다. 시간차를 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미 회신메일은 구구절절 마음을 담아 1분도 안되어 써놓은 상태.  보고서 작성도 미룬채 약 1시간 후 슬그머니 전송 버튼을 눌렀다. 


'띠링'

이내 회신이 왔다.


[2015년 10월 모일, 모시, 연남동 XXXXX출판사에서 뵙겠습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속으로 환호를 삼켰다. 지금으로부터 약 3일 후다. 


약속당일, 6시 칼퇴근을 한 나는 2호선을 타고 홍대역에서 내려 연남동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까페와 독특한 술집으로 이름을 타기 시작한 연남동은 처음이었다. 10월의 청량한 저녁 공기와 젊음이 어우러진 생경한 거리 풍경은 부푼 희망으로 더할나위 없는 생동감이 흘러넘쳤다.


약 20분쯤 걸었을까? 알려준 주소 근처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적한 빌라밀집지역이었고 XXXXX출판사는 간판도 없는 5층짜리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따라 오르니,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이런데 출판사가 있단 말이야?'


3층에 올라 투명유리로 된 출입문을 통해 내부를 보니, 20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홀로 PC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 오늘 오시기로 한..."

"네. L입니다."


남자는 나에게 이메일을 보낸 편집자라고 했다. 악수를 나누고 남자는 2평 남짓한 회의실로 안내했다. 회의실이라고는 하지만 4인이 앉을 수 있는 네모난 탁자와 의자 몇개 그리고 포장을 풀지 않은 책무더기와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어 창고를 방불케 했다. 


"곧 사장님이 오실건데, 같이 이야기 하시죠."

편집자는 종이컵에 차인지 따뜻한 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를 전해주고는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10분 후 자그마한 체구에 흰머리의 꼬장꼬장한 중노인과 편집자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편집자의 손에는 원고뭉치 두덩이가 들려 있었는데 내 원고를 인쇄한 것이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중노인에게 인사를 했고 중노인 또한 까딱 목인사로 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명함을 건네자 


"아, 여기, 내 후배도 여기서 일을 했는데. 아마 경영지원본부장 까지 했을걸?"


이름을 듣고 보니 재작년까지 모셨던 담당 상무가 아닌가? 그때부터였다. 사장은 거만한 표정으로 돌변해 자세를 고쳐 잡고 원고를 훑더니 오만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약 5분여를 별말없이 원고를 읽더니 원고 뭉치를 탁자에 탁! 내려놓고 말했다.


"이런 수준으로 책을 내려고 했단 말이야? 출간하는게 장난인가? 이런 거 인쇄하려고 종이만 낭비하게 한 거야?"


별안간 호통에 어안이 벙벙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별 대응도 못하고 무슨 상황인가 판단 하려는 와중에 사장은 출판업계의 사정이나 자신이 책을 내준 사람의 스토리 따위를 반말로 일장연설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내 이성을 되찾은 나는 사장의 말을 끊고 말했다.


"아니, 사장님. 제가 왜 퇴근 후 이시간에 여기 와서 사장님 훈계를 듣고 있어야 되지요? 원고가 불만이라면 애초에 부르질 마시던가요? 제가 사장님 직원입니까? 반말로 이게 뭐하는 겁니까?"


사장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내 후배가 그쪽 상무 어쩌고 하며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사장님 후배가 제 전 직장 상사면, 사장님이 저한테 이래도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아, 미안합니다. 실수했네요."


사장은 그제서야 자세를 고쳐앉고 이번엔 편집자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저는 원고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장님께도 보시라고 메일로 전해 드렸잖아요."


편집다는 입을 뚱 내민 채 사장에게 반박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편집자가 전해준 원고를 읽지도 않고 미팅 잡겠다는 말에 동의를 했던 모양이다. 그 시점부터 공수가 바뀌었다. 나는 원고에 대한 설명을 포함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조직문화의 생각을 분노의 감정을 담아 토로했다. 뭐? 종이가 아깝다고? 무례를 범한 상대가 듣던 말던 경험상 느꼈던 현장의 이야기를 포함해 원고를 초월하는 엑기스를 모두 토해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장과 편집자는 20여분 넘게 쏟아져 나온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말미에는 내 생각을 모두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제스처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새 시간은 한 시간 반이 훌쩍 흘러 저녁 9시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출간을 한다 하더라도 당신과는 하지 않겠다! 라는 마음에 강한 어조로 무례함을 나무랐다. 예비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런식으로 고압적으로 대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사장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출판사에서 만들었다는 5권의 책을 내밀었다. 마음같아선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과를 받아주기로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문을 닫고 나온 그 시점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화장실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왔다.  어둠이 짙게 내린 골목을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순간 코를 찌르는 맛있는 냄새. 꼬르륵 그러고보니 미팅에 참여한답시고 들떠서 저녁도 거르지 않았던가?


눈을 들어 보니 기사식당 앞이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사진이 걸린 것을 보니 유명한 맛집인 듯 싶었다. 홀린 듯 들어가 돼지불백을 시켰다. 후각을 자극하는 돼지불백을 한점 넣자 이런, 쓰다. 씁쓸하다. 순간 오만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설렘? 당황? 분노? 격정? 허탈? 마치 감정의 오미자라도 된 듯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뒷맛이 씁쓸했다. 아마 계약하자는 연락은 오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만큼 책 출간이 간절했던 걸까? 나는 왜 직장 생활 잘하는 와중에 책을 쓰고 싶었던 걸까? 나는 뭘 하고 싶었던 것일까? 


막 40줄에 들어섰고 과장이 됐다. 나는 무엇을 위해 6개월간 누가 시키지도 않은 원고를 쓰고 그것을 정리해 기어이 투고까지 했던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하고 싶었을 뿐.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라는 이유가 자리잡지 않았을까? 싶다. 언젠가 반드시 증명해야할 내 전문성에 대한 무기 하나를 어떻게든 만들어야 겠다는 강박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노트북을 펼쳐 글을 썼다. 물론, 쉽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샤워를 하고 그냥 뻣기도 하고 회식이나 야근이 한 주내내 있어,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주도 있었다. 그 이전까지 일기장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해보지 못한 경험에 비추어, 완결을 지을 수 있을까? 스스로도 못미더웠지만, 결국 한편의 원고를 완성시키지 않았던가?


이후 XXXXX출판사로부터도 그 어떤 출판사로부터도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그렇게 무모했지만 열정적이었던 첫 글쓰기의 도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로부터 5년 후 나는 회사를 나왔고 또 그로부터 1년 후 투고를 통해 첫번째 책을 냈다. 그리고 또 1년 후 두번째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지금에 와서 그날의 원고를 꺼내 보면, 사장의 말이 맞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글의 수준은 형편없었고 이런 글로 출판사의 선택을 받으려 했다니, 얼굴이 달아오를 지경이다. 어쩌면 그날의 중노인은 내 인생의 갈림길에서 일부러 나타나 고마운 일침을 날려준 은인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유를 모르지만 마음이 시키는 일은 하게 되어 있다. 어렴풋 하지만 그런 불빛이 조금이라도 살아 있다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불빛에 주목해 보자. 관심을 주고 노력을 더해 커다란 불로 활활 살릴 수 있을지 자신만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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