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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Oct 13. 2022

탑모델은 왜 못친소에 초대됐을까?

40대 자존감에 대하여

마흔 중반을 넘어 쉰에 가까워지면서 거울 보기가 싫어진다. 그 전엔 그냥 못생겼는데 이젠 늙고 못생겨졌기 때문이다. 미간과 팔자주름은 영화 [반지의 제왕] 헬름 협곡마냥 깊게 파였고 흰머리가 하나 둘 늘더니 어느새 절반 이상 덮었다. 애초에 머리카락 색깔이 브라운이라 망정이지 반백 중늙은이로 보일 뻔했다(뭐 그렇게 보인다 한들 달라질 건 없겠지만).


신체 역시 정점을 찍고 노화가 시작된지는 오래. 여기저기 삐거덕 거리고 몸속에 뭔가 반갑지 않은 것들이 생기고 눈도 침침해지는데 세월 참 속절없다 싶다.


신체도 신체지만 더 큰 문제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떨어진다. 나로 말하자면 이미 자존감 박살 3박자를 모두 갖췄다. 앞서 말했듯 몸은 늙어가고, 직업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다 끊긴 강제 자연인 신세(윤택이나 이승윤이 찾아올 가능성은 없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자존감이 높은 편이었다. 자존감 상실 3박자를 모두 갖추고도 여전히 자의식이 강한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자존감은 타고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다. 예쁘고 잘나고 똑똑하면 자존감이 무조건 높을까? 자존감이란 대체 무엇일까? 자존심 하고는 어떻게 다를까? 별로 잘나고 잘생기고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나는 자존감이 비교적 높은 걸까? 따위 궁금증이 이어졌다.


그 답을 준 건 뜬금없게도 탑모델 장윤주였다.


언제 적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무한도전]을 무척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종영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젊은 시절과 함께 했다'는 무수한 X세대 중년들의 아련한 고백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팬덤을 넘어 일종의 전우애까지 생긴 예능 아니던가?


장윤주는 그 무한도전에 여러 차례 출연했다. 그중 [못친소]에도 초대되었는데. 못친소가 뭔가? '못생긴 친구를 소개한다' 라는 뜻이다. 그 장난같던 아이디어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이거 pd가 미친 거 아닌가?' '돌아이들인가?' 싶었을 정도로 여러 의미에서 허를 찔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의 정서로 보자면 '불편'했을 외모 지적질이 난무했는데, 결국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내면이 잘생기고 예뻐야 진짜 미남미녀'다 라는 외모지상주의를 에둘러 비판하는 메시지와 함께 시종일관 쿨한 웃음의 장으로 끝나면서 시즌 2까지 찍는 등 재미와 의미를 모두 챙긴 나름 레전드 반열에 올라선 특집으로 남았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 기획에 여자 연예인을 초대할 생각을 하다니?


이런 예능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기분이 나쁠까? '누가 봐도 못생긴 사람' 을 초대한다는 기준이 명확했으므로 초대장을 받았다는 것은 자타공인 못난이 인증이 된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초대된 멤버들은 전원 남자 연예인들 뿐이었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에두른 비판이라는 취지에 공감했을지는 몰라도 '못생겼다' 라는 낙인에 유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초대된 멤버들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폄하와 조롱, 지적질을 받아들이며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그들의 속마음이야 어땠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불편함 없이(그런 내색 없이) 못.친.소 페스티발은 성황리에 끝났다.


그런데 왜 여자 연예인들은 없었을까? 참석 자체는 물론 초대장을 전달하는 과정조차 단 두 명의 여자 연예인만 등장한다. 바로 모델 장윤주와 가수 정인이다. 특히 장윤주의 경우 초대장을 전달하는 장면을 포함해 실제 페스티벌에 페스티벌 레이디로도 참석했다. 유일한 여자 참여자였던 셈이다.


장윤주는 초대장을 받아 들고 어이없어하면서도 '아 왜 나는 내 얼굴이 너무 좋은데' 라며 받아쳤다. 예쁘고 잘생겼다는 객관적 기준이 있을 리 없지만 조각 같은 미남 미녀가 넘쳐나는 연예계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거침없이 말하듯 장윤주는 '못생긴' 축에 들었던 모양이다.


장윤주는 객관성을 가장한 불편한 시선에 보란 듯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 세웠다. 누가 봐도 전형적 미녀는 아니지만 나는 내 외모가 너무나 마음에 들고 좋다 라는 내면은 자존감 그 자체다. 그녀도 알 것이다. 주변에 수도 없이 마주쳤을 것이다. 인형같이 예쁘고 조각 같은 미남미녀들을.


어떻게 저렇게 완벽하게 생길 수 있을까? 인정하고 감탄할지언정, 걔들은 걔들이고 나는 나다. 그건 그거고 나는 내 외모가 좋고 마음에 든다 라는 내면의 확고함. 자존감은 바로 그 지점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이야 어쨌든 그 자체로 인정할 건 인정하고 그 인정이 나의 내면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


그 기준이 내면이 아닌 외면으로만 향해 있다면, 누가 봐도 헉 소리가 나오는 미모를 가지고도 끝없이 타인과 비교해 부족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찾아 더더더를 외치며 평생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따라잡기 위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자존감이 아닌 자존심이 상하는 것 일터.


책을 내고 인터뷰나 매체에 나갈 일이 종종 생긴다. 머리를 염색하고 옷을 새로 사고 피부를 관리하라는 조언이 잦다. 숫제 강요에 가깝다. 이왕 하는 것 조금 더 돋보이게 하라는 선의의 조언임을 충분히 알지만, 그 염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만, 나는 이대로의 내가 좋다. 흰머리가 절반을 뒤덮어도, 주름이 자글자글해져 흉해 보여도, 바지 아랫단이 헤져 실밥이 삐져나와도 괜찮다. 그런 외적 요인들이 나를 더 얕잡아 보게 한다면 또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러고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자존감 하나만큼은 타고났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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