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B

by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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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입학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어머니가 Sanyo 브랜드의 CD 데크를 사 오셨다. 그때 함께 동봉되어 있던 CD는 차이코프스키의 클래식 음반이었다.

이런 모양으로 기억한다.

그전까지는 TV에서 가요톱10을 보며 듣던 음악이 전부였는데, 헤드폰을 끼고 처음 접한 CD의 음질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마치 텅 빈, 컴컴한 공간 속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데, 엄청난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다.


충주의 시골 동네에서 처음 이렇게 접한 음악이 아직도 생생한 걸 보면, 그때의 경험은 꽤 강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 CD 데크는 부모님 방에서 조용히 먼지가 쌓여 갔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중학교 때 밴드 음악에 푹 빠져 있던 동선이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다시 CD 데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선이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굿모닝팝스를 즐겨 들었고, 그래서 외국 음악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카세트 테이프에 여러 외국 음악을 복사해 주곤 했다. 대학교 때인가, 우연히 그 테이프를 찾아 틀어봤는데, 그 안에는 Nirvana, Pearl Jam, Bon Jovi 같은 유명 밴드들의 명곡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때 음악을 잘 모르던 나에게는 참 이상한 음악들이었다...)


Designer (1).jpg 이런 컴필레이션 앨범들도 나왔었다


이후 동선이는 015B 이야기를 한참 했고, 꽤 비쌌을 텐데 015B의 CD를 나에게 선물했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들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 걸 보면 3집이었던 것 같다.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데뷔는 1990년이라고 나오는데, 내 첫 시작은 3집이었다)


오래된 CD 데크의 먼지를 털어내고 헤드폰을 끼고 플레이했을 때,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처음 도입부의 키보드, 기타, 드럼 등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간주 부분이 정말 멋있었다.

하지만, 겉멋 가득한 중학생 리스너는 타이틀곡 외에 다른 곡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있어 보였기 때문에, 전곡 가사를 다 외울 만큼 앨범 내 다른 곡들을 더 열심히 들었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5월 12일’**이었다. 첫사랑 같은 기억도 없으면서, 왠지 그 가사가 참 아련했고, 이장우님의 보컬이 그 가사와 너무 잘 어울렸다.


그리고 아직도 좋아하는 가수인 윤종신님의 **‘우리 이렇게 스쳐보내면’**은 박선주님과의 듀엣이 귀에 때려박는 음색과 절절한 가사 때문에 정말 좋아했다.


이후 4집, 5집... 그리고 7집의 **‘그녀에게 전화 오게 하는 방법’**까지 기억난다.


015B를 통해 무한궤도, 윤종신, 지니(기억하는지... 신성우, 장호일), 신해철, 넥스트를 거쳐, 노브레인, 크라잉넛, 레이지본, 18크럭 등 드럭의 조선펑크에 한참 빠져 지냈다.


그리고 나중에는 드렁큰 타이거를 통해 힙합 음악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내 첫 음악 경험은, 친구 동선이에 대한 아련한 기억처럼, 내 플리 어딘가에서 불쑥 랜덤 플레이 되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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