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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Oct 27. 2024

배 부른 소리

왜 배는 자꾸 고픈 걸까 / 난 유약하게 자란 젊은이 / 그래서 세상 모든 게 하드 트레이닝 / 이 허기는 가짜라 배웠지만 / 견뎌내는 법은 안 배웠어요 / 뭘 자꾸만 먹고 삼켜 / 부른 배는 머리까지 차오르다가 그만 / 영혼의 자리까지 빼앗겠네 / 네 맞아요 배부른 소리 노래 같은 신세 한탄 / 견딜 수는 있겠지만 보기보다 제가 좀 약해서요

                                                                                          -선우정아, 노래 <부른 소리> 중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교사이자 주부이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한 학교에 적을 둔 지 어느덧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한 아이당 3년씩 육아휴직을 해야 했다. 야근이 잦기로 유명한 IT 계열 회사를 다니는 남편, 한 두 시간 떨어진 거리에 살고 계셔서 자주 오실 수 없다는 친정 부모님, 그냥 불편한 시부모님.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의반 타의반 오롯이 내 손으로 두 아이를 모두 키워냈다.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새롭게 바뀌는 삶의 환경에 적응하느라 부단히도 애를 써야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줘서 예전보다는 육아가 덜 힘들어진 지금도 소아과병원에 갔을 때, 남편이나 친정 엄마와 같이 아이 진료를 보러 온 주부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저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엄마로서 내 아이들에게 잘하고 싶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이기적인 생각일 지도 모르지만, 학교에서 남들 자식 신경쓰느라 내 자식 엉망으로 키우고 싶진 않았다. 워낙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라 아이들에게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바쁜 워킹맘. 내 마음대로 살 수 없다. 매일 오늘은 어느 식당에서 한 끼를 떼워야하나 고민해야 했다. 

    평일 나의 삶은 아침에 두 아이를 학교로, 유치원으로 데려다준 뒤 미친 듯이 엑셀을 밟아 출근을 하며 시작한다. 주당 19~20시간의 맡은 수업들을 잘 해내야 했고, 담임으로서 학급 운영도 상담도 잘 해야했다. 업무 역시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가끔은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곤 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모두 접고 미친 듯이 달려가 둘째를 하원시킨다. 하원 후 소아과에서 한 시간 이상씩 대기하며 진료를 받은 뒤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간다. 음료를 쏟은 아이를 나무라고 극성스러운 두 사내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며 저녁을 먹는다. 밥을 먹다 잠이 든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 남은 밥을 대충 먹은 후 아이를 엎고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오기도 한다. 집에 와서 아이들 물통과 도시락통을 닦고 빨래를 하고 목욕을 시킨 후 책을 읽어주며 나도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주말엔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해 미안해하며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근처 카페로 가서 해야할 수업 준비와 수행평가 채점과 마무리 하지 못한 업무 등을 해야했다. 

   남편과의 잦은 부부싸움으로 인해 관계는 극도로 나빠져 이혼의 위기까지 갔다. 하루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 놀기로 한 남편이 빨리 나가지 않아 재촉하자 남편은 나에게 어느 영화의 대사를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고... 지금은 관계가 많이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문득문득 남편이 준 상처들이 떠올라 감정을 추스르기 어렵다. 결혼 전이나 결혼 후에나 남성의 삶은 많은 변화를 겪지 않는 반면, 여성의 삶은 결혼과 출산 후 많은 변화를 겪는다. 결혼 전에는 남성과 비슷한 삶을 살다가도 결혼 후 여자는 열 달 동안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키우고, 집안일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휴직과 복직을 하며 급격히 변화된 삶에 적응해야 한다. 결혼 후 10년 동안 ‘불공평’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에 가득차 있었고, 그것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참지 못하고 폭발하며 싸웠다. 

   이렇게 살아온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10년 동안 곪아온 그 무언가가 결국 마음 속에서 터져버렸다. 갑자기 모든 게 허무해졌고 알 수 없는 무기력과 우울감으로 허덕이게 되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내 힘으로 할 수 없었다. 예전에 친했던 선생님이 소개해 준 심리상담센터가 생각나 예약을 하고 상담을 받았다. 우울증이라며 근처 정신의학과에 가서 약을 복용하면서 상담을 하면 좋아질 거란다. 근 1년은 토요일마다 상담을 받으며 약을 먹었다. 하지만 상담 센터 소장님도, 정신과 의사도 나의 우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신처럼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과 가족과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데 왜 힘들어하냐고 배부른 소리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진짜 원했던 건 이해였을까, 위로였을까? 좋으신 부모님 덕에 별로 고생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걸 누리며 평탄히 잘 살아온 덕에 작은 고생에도 불평하며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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