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같은 신혼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뒤, 둘의 일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해인이 느꼈던 충격과 불안은 그저 서막일 뿐이었다.
가장 먼저 경제권이 문제였다. 상의도 없이 ‘당연히’ 남준이 지갑을 쥐었다. 해인도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남준은 고개를 저었다.
“5만 원 이상 쓰려면 나한테 말해. 아껴야지.”
“…“
그날부터 해인은 매일같이 절약 강의를 들어야 했다. 전기세 줄이는 법, 장을 더 싸게 보는 법, 심지어 커피 한 잔도 집에서 내려 마셔야 한다는 규칙까지. 알고 보니 남준은 극단적인 짠돌이에다 인색한 사람이었다. 놀라운 건, 이 인색함이 시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님 용돈이나 명절 선물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는 시어머니였다. 남준은 이틀, 길면 사흘을 못 넘기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30분에서 한 시간씩, 집안일부터 부부의 사소한 갈등까지 일일이 상의했다. 그리고 통화가 끝나면 어김없이 해인에게 잔소리가 이어졌다.
“엄마가 그러시던데, 네가 좀 더 신경 써야 하지 않겠어?”
“……내 얘기는 안 들어?”
해인의 말은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남준에게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곧 진리였다.
거기에 깔끔을 넘어 결벽에 가까운 성격까지 문제였다. 털털한 해인과는 정반대였다. 퇴근하자마자 남준은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이거 줄 맞춰서 정리하라고 했지? 썩어가는 채소도 못 봐? 돈 아깝잖아.”
거실 한쪽에 해인이 마음에 들어 걸어둔 작은 액자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내 취향 아니야.”
툭, 액자는 벽에서 내려졌다.
모든 면에서 남준은 ‘갑’이었다. 해인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해인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왜 이렇게 돌변했는지, 믿기지 않았다. 달콤해야 할 신혼은 매일 눈물의 연속이었고, 해인의 가슴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결혼 초반부터 ‘이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그건 너무 두렵고 무거운 결정이었다. 무엇보다 아직, 남준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해인은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준은 무심하게 말했다.
해인은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그런 건 나랑 상의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남준은 당연하다는 듯 되물었다.
넌 장남이랑 결혼하면서 그런 것도 생각 안 했어?”
순간, 해인의 심장은 세차게 내려앉았다. 신혼여행에서 느낀 불안, 끝없는 잔소리와 통제, 시어머니와의 긴밀한 통화들이 한순간에 퍼즐처럼 맞춰졌다.
앞으로의 삶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이미 결정되는 미래, 그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