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한나예요.”
모두 잠시 멈칫했다. 한나가 문 틈으로 들어오는 순간,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모델 같은 키, 옷맵시—그렇지만 그 ‘완벽함’이 더 민감한 사람들에겐 방어막처럼 느껴졌다. 그 표정 하나로 어깨가 좁아지고 숨이 작아지는 사람이 분명 있었다.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다혜가 먼저 물었다.
“저요? 다이어트약 중독도 있고, 식단은 철저히 계산해요. 10대 때부터 시작했고… 지금은 20대 초반이에요. 하하.”
한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신나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말이 어딘가 어눌했고, 눈의 초점은 가끔 흐려졌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불안해 보였다. 윤설은 그 모습에서 오래된 부작용을 떠올렸다—다이어트약 장기 복용이면….
“약은 오래 드셨어요?” 윤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예뻐요.”
“아니에요. 더 마르고 싶어요.”
한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지만 목소리에는 굳은 결이 섞여 있었다. “약은 한… 1년 반 정도요. 원래 장기 복용 약이 아닌데 처방받기 쉬워서… 가끔 헛것이 들릴 때도 있는데 이젠 뭐 내성이 생겨서. 하하. “
잠시, 방 안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다혜가 돌아가며 소개를 마쳤다. “우리는 다이어트가 목적이 아니라 치료하러 모인 거예요.”
“네 알아요… 물론 나아지고 싶어요!”
“그래요! 우리 같이 노력해요.”
단톡방에서 네 명이 되자 대화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수연은 ‘뼈처럼’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을 솔직히 털어놓았고, 한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심지어 자신이 다니는 다이어트 병원을 소개하려 했다.
다혜(단톡): “우리는 건강을 되찾는 게 목적이에요. 다이어트약은 그만하셔야 해요. 전문가 도움도 꼭 받으세요.”
한나: “난 못 끊어요… 살찌는 게 죽는 것보다 싫어요.”
윤설: “그래도 우리가 같이 노력하는 거잖아요. 건강해져야죠. “
한나: “네…“ (우는 임티)
며칠 후 단톡방.
수연: “여러분… 사실 어제 한나가 알려준 병원 가봤어요. 약도 조금 처방받았는데 체중도 1kg 줄었어요!”
윤설은 순간 핸드폰을 꼭 쥐었다. 눈이 커지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수연은 이미 거식증 환자에 가깝게 말랐는데 더 빠졌다니!
한나: “봐요! 제가 괜히 추천한 게 아니잖아요. 저희 같은 사람한테는 꼭 필요한 거예요.”
(한나는 의기양양한 이모티콘까지 붙인다.)
다혜: “잠깐만. 우리 모임은 다이어트 모임이 아니라고 여러 번 말했죠? 치료와 회복이 목적이에요. 약을 권유하는 건 규칙 위반이에요.”
수연: “…하지만 다혜 언니, 전 진짜 오랜만에 희망을 느꼈어요. 제 몸이 변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윤설: “수연아, 혹시 부작용 같은 건 없었어?”
수연: “가슴이 엄청 뛰어서 잠을 거의 못 잤고 어지러운 거 정도? … 솔직히 무서운 것도 있어요. 그래도 결과를 보니까 너무 행복한 거 있죠? “
다혜: “그 결과는 오래 못 가요. 오히려 몸을 더 망칠 수 있다고요. 우리 지금 다 죽을힘 다해 버티고 있는데, 한나 씨가 이런 식으로 병원을 홍보하는 건 무책임해요.”
채팅방 공기가 차갑게 식어갔다. 누구도 다음 말을 쉽게 올리지 못했다. 화면 속 대화창에 “…” 입력 표시만 깜박일 뿐.
다음날 단톡방.
한나: 죄송해요… 전 그냥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규칙 어긴 것 같아요 ㅠㅠ
윤설: 한나 씨, 진심으로 묻는 건데요… 나아지고 싶어서 여기 온 거 맞죠? 우리… 다 아픈 사람들이에요.
한나: ……
한나: 네… 알아요. 죄송해요. 이제 안 그럴게요.
다혜: (읽음)
수연: (읽음)
윤설: …그럼 다 같이 노력해요.
한나: (오케이를 뜻하는 임티)
단톡방 – 늦은 밤
한나: 여러분… 아까는 죄송했어요. 괜히 규칙 어긴 것 같아서요.
윤설: 괜찮아요. 우리도 같이 노력하자는 마음이에요.
다혜: 네, 앞으로는 조심해요. 우리 모임은 치료가 목적이니까요.
수연: 맞아요. 우리 같이 건강해져요 ^^
(잠시 대화가 끊긴다. 모두 ‘이제 정리되었구나’ 생각하며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새벽 1시 12분, 알림이 울린다.
잘들 지내요. (하트 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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