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영리 자원봉사 동아리를 만들다

난 학생들에게 꿈을 주고 싶다

by 병욱

중국 유학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재외 한국 학교의 운영 현황을 보면 알 수 있듯,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중국에서 수학하기 위해 가족 전체가 중국으로 오게 되고, 그렇게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외국어 교육과 외국 생활에 대한 준비를 단단히 갖추게 되며 순탄한 해외 생활을 보내게 되는 학생도 적진 않다.


screenshot-20250313-133700.png 재외교육기관 포털 재외 한국학교 운영 현황(2024년 4월)


34개교의 한국학교 중 11개교가 중국에 있으니, 대충 계산해서 약 4천 명 정도가 중국에서 조기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데다가 홈 스쿨링이나 국제학교까지 포함하면 약 5천 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중국에서 유학을 준비하거나, 이미 유학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대학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은 얼마나 될까? 의무 교육 기간은 모두 한국에서 보내고, 대학에 입학할 시기가 와서야 중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최소한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중국 대학으로 입학하게 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screenshot-20250313-134632.png 2024년 국외 고등교육기관 내 한국인 유학생 현황


2024년 기준으로 14,512명, 당연하겠지만 중국에서 조기 유학을 했다고 해서 중국 대학으로 100% 연속 진학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약 50%만 중국 대학으로 진학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중국 대학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 중 17.2%만이 언어적인 준비를 마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머지는? 어쩌면 아무런 언어 준비가 안 된, 마치 나 같은 학생들일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인 만큼 상응하는 실력을 갖추고 오는 사람만 가득했다면 중국 유학 생활이 개인으로서도, 단체로서도 참 이상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외국 대학에서 수학할 만큼의 능력을 갖추고 중국으로 발을 들이는 경우는 상당히 적은 게 사실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피 유학이다 보니... 언어조차 안 되는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을 제대로 잘 꾸려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와중에 실패한 유학생이었던 난 다른 학생들보다도 중국어를 못했고, 그러다 보니 학교생활에서 뒤처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인 유학생회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활동이 유학생회 내부에서 이뤄지는 친목 활동이었기 때문에 유학생회 내부 인원이 아니었던 내가 유학 생활에서 도움받을 만한 일은 없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인 유학생회에서 주최한 입학 OT에 참석하며 사백 위안 정도 되는 학생회비를 냈던 기억이 있는데, 사실 그 이후로 학생회랑은 전혀 접점이 없었다. 한 달 용돈이 천 위안이었던 내게 사백 위안은 참 큰돈이었는데... 아쉽게도 그만한 가치가 있진 않았다. 학생회가 개최한 활동 대부분이 내부적인 친목 활동에 그쳤던 데다가, 진정으로 유학생들을 위한 자원봉사적 성격을 띠는 경우도 잘 없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어떤지는 몰라도, 최소한 나 자신은 도움받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내 학교생활은 대부분이 바닥부터 꾸역꾸역 기어 올라온 과정들로 가득했다. 4년의 대학 생활 속에서 한국인보다는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한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한국인을 피한 게 아니라 애초에 한국인들과 만날 접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 학생들 사이에서 도는 정보와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도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참여한 대부분의 국제 대학 활동과 대회, 공모전에서 난 항상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딜 가나 관심을 많이 받았다. 한국인이라고 관심을 보여주는 중국인 친구들이 많았고, 교수님들이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관심을 많이 받는 위치였던 만큼 힘들기도 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내가 걷는 길을 같이 걸어주는 사람도, 먼저 걸어가는 사람도, 뒤따라오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일을 내가 직접, 그리고 가장 처음으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놓치면 놓치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모든 걸 내가 스스로 겪어야 했다.



학교생활을 떠나, 중국 생활 자체에서도 사는 게 쉽지 않았다. 부동산 사기를 당했을 때도,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애초에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도 몰랐던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일 뿐인 내가, 그나마 관계가 좋다고 생각했고 그나마 믿고 의지하고 싶었던 재중 교민 어른들에게 연락했을 때도, 이렇게 차가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선을 긋더라. 도와주겠다는 척조차 하지 않더라.


그러게, 왜 그렇게 했냐?


날 탓하는 말은 나도 할 수 있다. 그런 걸 듣자고 연락한 게 아니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 괜히 불똥 튀어서 자기한테 매달리면 귀찮아질 테니 애초부터 상대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국가 기관도 실질적인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돈을 줄 수도, 수사를 할 수도, 수사를 도와줄 수도 없다는 건 나도 안다. 뭘 어떻게 알아봐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방법조차 내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현실은 차갑다는 걸 뼛속 깊이 느끼게 됐다.



중국 유학을 결정한 학생 중에는 실패자가 많다. 성급한 일반화가 아니라, 주변에서 실패하지 않은 학생을 꼽으라면 꼽을 손가락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난 생각했다.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건 자기 할 거 다 하고, 먹을 거 다 먹고, 자기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남는 돈으로 생판 모르는 학생들을 지원할 사람이 나타나기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늦다고.


난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왕훙을 하겠다는 사람도, 중소기업에 취업하겠다는 사람도,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사람도,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도,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학생들을 '무보수'로 돕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겉으로는 학생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인 교민을 위하여'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 붙여 놓고 사업을 하더니, 결국 눈먼 한국인 교민들을 등쳐먹으며 한국인 프리미엄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발에 챈다.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면 전혀 모르는 체 하는 사람이 지천에 깔렸다.


당연하겠지만 남을 '무조건' 돕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피 같은 자기 '생돈'을 바보같이 '남 줄' 사람은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저런 사람들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유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저런 사람들이 아니다. 이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난 내가 시초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거, 나 같은 평범한 일반인에겐 감히 넘볼 수도 없는 그런 무언가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무보수로, 오히려 내가 회사에서 번 돈으로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간단한 음료부터 식사까지 사주면서 말이다.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도록 '재투자'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순간, 내 알량한 정의감을 채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단지 그 순간, 잠시나마 내가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학생들이 맛있는 음료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하면 그걸로 족하다. 학생들이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난 그걸로 족하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했던 2022년 6월, 그때부터 작은 나만의 선의로 혼자서 시작한 '취업 정보 공유방' 운영은 중간에 엎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2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2024년 실질적인 자원봉사 동아리 창립으로 이어졌다. 혼자서 고독하게 올리던 취업 공고는 나와 마음을 함께해 준 동아리 1기 친구들의 손길이 닿게 됐고, 난 우리 친구들이 조금 더 재밌고 도움 되는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금전이든, 경험이든 뭐든 열심히 지원해 주려 하고 있다.


그렇게 2025년 지금도 그 정보 공유방에는 하루에 하나씩 학생들에게 필요한 취업 공고가 올라올 수 있게 됐다. 또 자원봉사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친구들 자신도 인턴과 취업에 멋지게 성공하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나와 마음을 함께한 동아리 친구들은 인턴이든, 취업이든 성공할 수 있도록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 지식을 마음껏 나눠줄 것이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최소한 '밥 잘 사주는 선배'가 하나 있었다고, 덕분에 공부하는 게 외롭진 않았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걸로 족하다.


모든 학생이 인생에서 한 번쯤 되돌아볼 만한 행복 가득한 유학 시절을 마음에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문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