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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죽여야 사는 남자

by 보통의 건축가


나는 ㅇㅇ아파트의 경비원이다.

이십 년도 넘은 늙은 아파트의 늙은 경비원이다.

지하주차장이 없어 단지의 마당은 거의 다 아스팔트 주차장이었고 덕분에 아파트의 경비에 더해 주차장의 경비까지 서고 있다. 빌어먹을...

주차장은 차가 있을 때도 문제였고 차가 없을 때도 문제였다. 차가 꽉 차는 퇴근 시간에는 부족한 주차장에 대한 원성을 들었다. 주차장이 부족한 것은 자기들도 다 알면서 외부차량 단속을 열심히 안한 탓으로 돌렸다. 꽉 차있는 주차장에서 차가 나가는 출근 시간에는 하루의 에너지를 차를 밀고 당기는 데에 다 썼다. 차가 빠져나간 주차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낙엽이 대신했다. 낙엽은 바람이 발렛을 해와 빈 곳 없이 빼곡하게 채웠다.

떨어진 낙엽은 쓸고 나면 또 그만큼이 금방 쌓였다. 쓸면 뭐하나 자괴감이 들지만 이마저도 안하면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져 쓸어 담아야할 처지이니 안할 수도 없다. 동대표 그년은 내가 그냥 미운 게 분명하다. 아니면, 어떻게 볼 때마다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굴 수가 있을까. 천성이 못돼먹은 그년은 여름 내내 길고양이 문제로 그렇게 괴롭히더니 지금은 낙엽으로 들들 볶았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내 얼굴이 낙엽처럼 누렇게 뜰 지경이었다.

방금 바닥을 쓸고 수위실에 앉아 쉬고 있는데, 동대표 그년이 나타났다.


“대표님(그년은 곧 죽어도 대표라는 호칭을 붙이라 했다), 저 방금 낙엽 쓸고 와서 잠깐 쉬고 있는 거예요”

“아니, 아저씨도 참 이상하다.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왜 절 이상한 여자로 만들어요?”

“아니... 그냥, 저기 열심히 치우고 있다고 보고하는 거예요(에이, 이 나쁜 년아)”

“그건 그렇고. 아저씨 얘기 들으셨죠? 이번 동대표 회의 때 나온 얘기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그 얘기로 경비들이 한참 어수선하던 참이었다.


“경비원 인원 감축하기로 했어요. 아마도 여섯 분 정도 그만두셔야 될 텐데, 어쨌든 아저씨들에게 미안하게 됐네요. 아직 어느 분이 그만두는지 결정된 건 없는 거 같은데... 그래서 말인데요”

동대표가 잠시 말을 끊더니 두리번거렸다.

“아저씨가 그 놈들을 좀 정리하면 어때요?”

“네? 그놈들이라뇨? 누구요?”

“아니, 고양이들이요. 작년보다 올해 그놈들이 더 많아졌잖아요. 내년에는 더 숫자가 많아질 텐데, 그러면 저 스트레스 받아서 죽을지도 몰라요. 정말 미치겠어요. 아저씨가 좀 어떻게 해주시면 안돼요? 저 놈들만 없어지면 제가 관리소장님한테 잘 얘기해놓을게요. 아저씨는 우리 동에서 꼭 필요한 분이라고.”


은밀하고 무서운 제안이었다. 한편으론 바라던 제안이기도 했다. 고양이만 없어지면 내 밥줄은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단 그 전제가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아저씨. 어떻게든 해보세요. 뭔 일을 벌이시던 제가 나서서 막아드릴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그녀의 혀가 뱀처럼 날름거리고 있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나중에 약속이나 지키세요. 꼭이요”


이젠 낙엽 따위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 고양이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들어오더니 어느새 머릿속을 꽥 채웠다. 노란 놈, 까만 놈, 점박이 놈 들이 머릿속을 할퀴며 뛰어다녔다. 뇌가 간질간질했다. 나만 이놈들 때문에 머릿속이 시끄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이 귀찮은 존재들이 없어지면 한 두 사람은 아쉬워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주민들은 좋아할 것이다. 라고 마음으로 단정해버렸다. 그랬더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며 고양이들에 대한 적의가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번 기회에 싹 다 정리하는 거야’

‘자~ 이놈들을 어떻게 죽여 버리지?’ 막연하게 정리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구체적으로 살해를 떠올려 스스로도 화들짝 놀랐다.

‘죽이지 않으면, 쫓아내봐야 또 돌아올 거야. 아예 싹을 잘라버려야 돼’

어렸을 때 쥐는 많이 잡아 죽였어도 쥐를 잡는 고양이를 죽여본 적은 없으니, 어떻게 죽일 것인가가 막연했다. 그리고 겁도 났다. 혹시 고양이를 죽인 것이 들통이 나서 감방에 가는 것은 아니겠지? ‘고양이 연쇄살해자’ 라고 신문에 실리고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경비원도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미치자 동대표에게 괜한 약속을 한 것은 아닐까 후회가 밀려왔다.

‘아니야. 고양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어차피 동대표는 나부터 자르자고 했을 거야. 그년이 날 좀 미워했어야지.’


마음을 다잡고 경비실 의자에 앉아 폰으로 검색을 했다. ‘고양이 죽이는 방법’ 으로 검색하니 진심을 다해 고양이를 죽이는 방법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를 죽이는 꿈에 대한 해몽, 고양이를 죽이는 9가지 방법이라는 책, 그리고 잔인한 방법으로 고양이를 살해했다는 뉴스 등등. 특히 끔찍하게 살해된 고양이에 대한 뉴스를 보니 저렇게 요란한 방법으로 죽여서는 남의 이목만 끌겠다 싶었다. 다시 ‘고양이 쥐약’으로 검색했다. 쥐약으로 죽임을 당했거나 그랬다고 의심할 만한 여러 사례가 검색이 됐다. 또 어떤 사람은 고양이가 영악해서 사료에 넣은 쥐약은 먹지 않는다고도 했다. 인터넷에는 캣맘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와 캣맘에 대한 경멸과 비웃음이 충돌하고 있었다. 내용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은 아무래도 쥐약이겠다 싶었다. 다만 시기와 방법을 치밀하게 고민해야했다. 주민들로부터 의심을 받지 않아야 할 것이었고 그러려면 고양이는 가급적 자연사로 보일 수 있는 편이 좋았다.


때는 오고 있었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더 추울 거라 했다. 한 달만 기다리면 아파트 사이 계곡으로 살을 에는 바람이 불 것이고 밤이면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 것이었다.

동사를 가장한 독살.

“어제는 유난히 춥더라니” 혼잣말처럼 주민에게 흘리고는

“글쎄. 어젯밤에 고양이들이 다 얼어 죽었어요”

라고 하면 될 것이다. 연민을 담은 얼굴표정이 중요할 것이다. 고양이 사체는 누가 보기 전에 재빨리 처리해야 할 것이었다.

‘마대를 준비 해야겠어’


며칠 동안 쥐약에 대해 공부를 했다.

‘다 늙어서 공부라니. 그것도 살해를 위한 공부라니’

스릴러 영화도 아니고 현실에서 살해 계획을 세우게 될지는 몰랐다.

‘아냐. 이건 생존을 위한 투쟁이야. 아니, 생존영화라고 생각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쥐약의 성분도 다양했다. 대략 3종류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는 항응고제 성분으로 복용하게 되면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방해하여 출혈로 사망하게 되는 쥐약이었다. 복용 후 즉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며칠 동안 서서히 작용하기 때문에 쥐들이 독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섭취하게 되는 특징이 있었다.

‘며칠 동안 서서히 작용한다고?’

최악이었다. 며칠 동안 시름시름 앓는 것도 문제지만 출혈을 동반한다니, 고양이 밥을 주는 1004호가 눈치 챌 것이 뻔했다. 고양이한테 쥐약 먹인 범인을 찾겠다고 아파트를 들쑤시고 다니면, 문제가 커질 터였다. 일단 이 성분의 쥐약은 배제하기로 했다.


두 번째는 천연 성분의 쥐약이었다. 화학적 독성에 비해 안전하며, 환경에 덜 해롭다고 하는데, 내가 환경 생각할 처지도 아니고 안전하다는 설명이 거슬렸다.

‘위험해야 하는 거 아냐? 안전하다는 건, 효과가 그만큼 덜 할 수 있다는 얘기잖아’

경고성으로 하는 짓도 아니고 나도 목숨 줄 걸고 하는 일인데, 이런 믿음이 안가는 쥐약도 배제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장기 기능을 빠르게 손상시키는 신경독성 성분의 쥐약이었다. 증상으로는 근육이 경직되고 호흡곤란이 오며, 심장마비 등이 빠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오~ 빠르다’

마음에 쏙 드는 특징이었다.


이 것으로 정했다. 스트리크닌이라는 신경독이 들어간 쥐약.

고양이들은 냄새에 민감할 터이니 건식 사료보다는 비린내가 많이 나는 생선 통조림이 좋을 듯싶었다.

돈은 아깝지만 아주 맛있고 비싼 걸로 준비해야겠다. 내 생존을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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