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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리운 사람이 생겼다

by 보통의 건축가


혹독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내 몸을 뒤덮고 있는 노란 털도 소용이 없었다. 칼 같은 냉기가 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피부를 할퀴었다. 내 발톱보다 더 날카로웠다. 춥다는 감각조차 얼어붙었고 온몸이 아프고 쑤셨다. 이 단지는 고양이가 살기에 너무 가혹했다. 냉기와 바람을 막아 줄 것이 전무했다. 낮에는 햇빛이 있어 그나마 견딜 만 했지만 밤에는 냉기가 땅에서 올라왔고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로 윙~ 하고 소리를 내며 차가운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가끔 사람들이 아파트 앞에 종이박스를 내놨지만 내놓기가 무섭게 제복 입은 사람들이 분해해버려서 그림의 떡이 되었다.


이 겨울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힘은 아이러니 하게도 동족이 아닌 몇몇 사람의 측은지심이었다. 그간 아파트에서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발견한 특징이 있다. 약해 보이는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관심이 많고 애정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1004호 여자가 그랬고 어린 꼬마들이 그랬다. 1004호 여자는 툭하면 아파트의 다른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당했는데, 힘이 없어서인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꼬마들도 무리지어 다니고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보면, 약한 힘을 무리에 기대고 있음이 분명했다. 꼬마들의 무리가 보이면, 나도 경계를 풀고 그들 옆으로 다가가 슬쩍 옆으로 누웠다. 그러면 꼬마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르 다가와 나를 만지기 시작했다. 내 주위로 빙 둘러서 바람을 막아줬고 따뜻한 체온도 전해줬다. 먹을 것을 굳이 주지 않아도 이 때만큼은 보호받는 따뜻한 장소에 있는 기분이 들어 절로 가르릉 소리가 났다.


1004호 여자는 아무리 추워도 먹을 것을 주는 일을 빼먹지 않았다. 해가 뜨고 아파트에서 사람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때가 지나면 1004호 여자는 그릇에 사료를 가득 담아 늘 먹이를 주던 양지바른 화단에서 우리를 불렀다. 특이한 것은 우리 고양이를 부를 때 통칭해서 부르지 않고 개별 고양이를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친절한 꼬맹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꼬맹이들은 한술 더 떠서 대여섯의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다 달랐다. 아주 직관적인 노랑이부터 마일로, 왕눈이, 진흙이, 치즈 등등 일일이 외우기도 버거웠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는 이름 외우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다정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면 목소리 주인공의 눈을 바라봤다. 그 눈이 나와 마주치고 눈이 반짝였다면 그건 분명 나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름을 부를 때 마음을 담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1004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자는 조금 불쌍했다. 누군가 1004호라고 부를 때 그 사람의 눈은 빛나지 않았고 눈꼬리가 찢어지거나 올라가거나 했다. 그 표정은 애정이나 동정과는 멀었고 비웃음이거나 경멸에 가까웠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녀에게 우리와 비슷하다는 동질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털이 곤두설 만큼 추운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1004호 여자가 햇빛이 내려앉은 화단에 사료그릇을 놓고 고양이들을 불렀다. 그녀가 부르는 내 이름은 ‘햇살’이었다. 뜻은 모르겠지만 부를 때의 다정함과 어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눈에 띄는 대로 부르는 것이겠지만 내 이름이 불리는 순서는 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였다. 그만큼 난 그녀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어떤 고양이보다 먼저 그녀에게 달려갔다. 첫 번째로 불리는 영광을 안고 그녀가 내준 사료그릇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먹고 있을 때였다. 근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준 어머니. 안녕하세요? 추운데 애쓰시네요.”

1004호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고 정신없이 사료를 먹던 나도 놀라 멈칫했다.

“아, 윤기아빠...”

“진즉에 얘기는 들었어요. 미안해요 윤기아빠. 애들이 불쌍해서 그냥 둘 수가 없네요.”

그녀를 보니 표정이 어두웠고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다.


누가 또 천사 같은 1004호 여자를 괴롭히나 머리를 들고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그 사람이었다....

내가 물어 죽인 새의 주인, 나를 쫓으며 울부짖던 그였다.


나도 모르게 ‘“하악~” 경계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요놈 성깔 있네요. 방해해서 미안해 야옹아~”

“형준 어머니가 왜 미안해요? 완두를 물어간 냥아치 놈이 미안해해야지.”

그의 목소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긴장을 했던 탓인지 입맛이 뚝 떨어져 먹는 걸 그치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앉았다. 혓바닥으로 털을 고르는 척하며 그를 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도망갈 마음의 준비를 했다.

“윤기 엄마가 그 날 있었던 일을 얼마나 마음 아파하며 얘기하던지. 윤기 아빠, 괜찮아요?”

“괜히 자랑 삼아 데리고 나간 제가 잘 못한 거죠. 생각해보니 고양이 말고도 위험한 것들이 꽤 많았는데, 제가 너무 무심했던 거 같아요. 가끔 완두가 생각나기는 하는데, 그럴 때면 명복을 빌어줘요.”

“며칠 동안은 정말 완두를 물고 간 고양이가 죽도록 밉더라구요. 완두의 복수를 해줘야지 마음먹고 물어간 놈을 찾으려고 했는데, 마음을 접었어요. 막상 찾으면 어쩌겠어요? 그놈 다리를 부러뜨릴 것도 아니고 죽일 수도 없는데. 이 놈들 팔자도 참 기구해요. 이 작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어떻게 삶이 이토록 극명하게 나뉘는지. 어떤 고양이는 따뜻한 집에서 사랑 받고 살고 어떤 고양이는 추운 길바닥에서 미움 받고 살고 있으니.”

“그래서 더 불쌍해요. 지금 밥 먹다가 저기 앉아있는 아이 있잖아요. 제가 키우던 햇살이랑 너무 닮은 거예요. 그 아이 생각이 나서 저 아이한테 마음이 더 쓰이네요. 이 겨울을 어떻게 견딜는지, 걱정이에요.”

그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도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눈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의 눈은 나처럼 크고 동그랗지는 않았지만 깊었고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연민도 보였고 친근함도 담겼으며 스치듯 증오의 감정도 느껴졌다.

그의 눈을 보면서 확실해진 것은 나를 살해의 범묘로 의심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 불안이 있었다. 스치듯 느껴졌던 증오 때문이었는데, 경계의 눈으로 그의 다음 행동에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가 떠졌다. 그리고 떠진 눈이 빛났다. 그 빛에는 햇살마냥 따뜻한 온기가 실려 있어서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다.

‘이 사람 뭐지? 왜 이렇게 따뜻한 거야?’

적대적 관계일 수 있는 사람에게서 온기를 느끼니 적잖이 당황했다.

“저 놈, 완두를 물고 갔던 놈이랑 많이 닮았네요. 그런데 여기 단지에서 사는 고양이들이 다들 비슷하게 생겼더군요. 형준 어머니, 저런 얘들을 뭐라고 부르죠? 코.. 뭐라고 하던데.”

“코숏이요?”

“아~ 맞아요. 코숏... 형준 어머니, 얼마 전에 보니 동대표가 또 뭐라고 하는 것 같던데,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요. 전 애들 밥 주는 거 찬성입니다. 와이프도 그렇고. 이 단지에 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예요. 기죽지 마시고요.”

그녀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고마워요. 윤기 아빠.”

‘아~ 이렇게 고양이한테 호의적인 사람에게 난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었다. 아니, 고백했다.

“냐~옹”

사람이 고양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오늘만큼 다행스러운 적이 없었다. 그가 나를 웃으며 바라봤다.


“내가 너의 새를 물어 죽였어”

라고 고백했는데, 그가 웃어줬다.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몇 걸음 다가왔다. 무릎을 굽혀 쭈그리고 앉더니 천천히 얼굴을 내 쪽으로 옮겨왔다. 난 물러서지 않고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찡긋 미소를 짓더니 다시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그때였다.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저릿하더니 그의 눈과 나의 눈을 연결하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원통의 통로였는데, 통로의 밖은 보이지 않았고 통로의 끝에 그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의 눈이 검게 빛났다. 이어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한텐 여기가 사막일까? 정글일까? 구박하는 사람들을 피해 먹이도 구해야 하고 외롭기도 할 테니 정글이기도 하고 사막이기도 하겠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려면 사막이나 정글이 아니라 집이 필요해. 난 사람들의 집을 짓는 일을 하거든. 꽤 많은 사람들의 집을 지었는데, 정작 사람들 주변에서 가족 같은 존재로 사는 강아지나 고양이에 대한 고민은 한 적이 거의 없네. 이 아파트 안에 너희들을 위한 집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밥을 주는 것도 이렇게 구박을 하는데, 그렇게 되기는 어렵겠지. 부디 이 곳을 벗어나 너의 삶이 평온하기를 기도할게. 너에게도 사랑하는 가족과 집이 생길 수 있기를.”


혼잣말이었겠지만 나는 그의 말이 뚜렷하게 들렸고 심지어 이해하기 까지 했다. 통로를 통해 전해진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음을 깨닫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핍박과 소외된 나의 삶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삶을 이해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그는 내 삶의 평온까지 기도해줬다. 그는 현자였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 말대로 가족과 집이 생긴다면 내 삶은 정말로 평온해지는 것이냐고, 가족과 집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고.

그런데, 통로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벌써 내게 등을 돌리고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아직 내 목소리를 들려주지 못했는데..’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알 수 있었다.

나와 그가 연결되었다는 걸.

아까 봤던 통로는 헛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과 나의 눈이 핏줄처럼 연결되어 그의 다정한 음성이 통로를 따라 내게 전해진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가 나와 같은 경험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같은 통로를 봤다면, 그냥 그렇게 떠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쉽기는 하지만 내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 묘생에 있어 가장 특별한 존재를 만났다는 것이다. 나를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존재, 어쩌면 내 비루한 삶을 빛나게 할 광원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 특별한 인연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의 작고 귀엽던 새를 물어 죽였을 때부터?

‘아~ 그런 비극으로 시작된 연이라면 끝도 비극이지 않을까? 내게 과연 희망이 남아 있는 걸까?’

비관적인 생각이 그 때 새를 물어 죽였을 때의 비릿한 피 맛을 소환했다.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결국 꺽꺽 거리다가 먹었던 것을 모두 토하고 말았다.


떠나 간 그가 돌아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가 아파트로 돌아오는 장면을, 걸어오는 그의 정면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기회가 되면 그에게 다가가 오늘 하루 먹이를 구하러 다닌 노고를 치하해주며 머리를 비비고 싶었다. 그가 언제 아파트로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걸어서 단지를 나갔으니 언젠가는 걸어서 돌아올 것이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2가지 방식으로 이 곳을 떠났고 동일한 방식으로 돌아왔다. 걷거나 혹은 차라고 불리는 것을 이용했는데, 걸을 때는 고양이보다 느렸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면 고양이보다 빨랐다. 그의 새를 물고 도망쳤을 때 그가 차를 타고 쫓아 왔으면, 난 아마도 그에게 붙잡혔을 지도 모르겠다.

단지를 드나드는 사람이 가장 잘 보이는 큰 나무 위에 올라가 지나는 사람을 유심히 지켜봤다.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송곳 같은 바람이 털 속을 찔렀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깜깜해지면 더 매서운 바람이 찾아올 것이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좀 전에 먹은 걸 다 토했었지.’

바보 같이 하루에 겨우 한번이나 먹을까 싶은 밥을 다 토했으니 내일 아침까지는 허기와 추위를 오롯이 견뎌내야 할 처지였다. ‘힘든 밤이 되겠네.’

벌집 같은 아파트에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저 안은 최소한 바람은 불지 않으니 덜 추울 거야. 내일은 작은 박스라도 하나 찾아야겠어. 박스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져다 놓고 그 안에 들어가 하루 종일 잠을 자야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차가운 바람에 비릿한 냄새가 실려와 코를 건드렸다. 냄새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자극적이고 진한 냄새였다.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어둠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뚱뚱한 몸피의 사람이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차하면 도망가려고 발톱을 세우고 몸을 일으키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추운데 거기 왜 올라가 있니? 나비야~ 내가 맛있는 거 줄 테니까, 이리 내려와라.”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사람은 제복 입은 사내였다. 별 일이었다. 한 번도 고양이에게 말을 건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신경질적인 혼잣말은 들었어도 이렇게 친절한 목소리로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오니 당황스러웠다.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다가 그의 손에 들려있는 뭔가에 눈길이 갔다. 1004호가 주던 밥이 담긴 그릇과 비슷했는데, 강렬하고 군침 도는 냄새가 거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나무 아래에 그릇을 내려놓더니 “이거 비싼 생선이다. 너 이런 거 먹어본 적 없지?”

라고 얘기하고는 자리를 비켜줬다. 몇 발짝 뒤에 서서 아마도 내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그간 그의 행동을 아는지라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제복 입은 사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슬금슬금 자리를 떠났다. 그가 보이지 않게 되자 냄새에 이끌려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그릇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보니 천상의 냄새였다. 비릿하고 쿰쿰한 냄새가 났는데, 따뜻했고 촉촉했다. 1004호가 주던 딱딱한 음식과는 비교할 것이 못되었다.

경멸해 마지않던 그가 준 음식이었지만 지금의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비린 냄새와 고기의 단맛이 조화로웠다. 뭔가 위화감이 드는 쓴 맛이 끼어있기는 했지만 전체의 맛을 헤칠 정도는 아니었다. 맛으로 음식을 먹은 것이 처음이었다. 음식이란 것이 이렇게 맛난 것인 거구나 처음 깨달았다. 그릇을 싹 비우고는 발로 주둥이를 닦아내면서 연신 감탄했다.

‘정말 맛있는 밥이었어. 오늘은 운이 좋아. 그를 만난 것도 그렇고, 이렇게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었으니. 왠지 예감이 좋은데? 내일부터는 사는 게 조금 즐거워질지도 모르겠어.’

포만감에 기분이 좋아져서는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가 그를 기다리는 것을 계속했다. 배가 불러선지 추위도 견딜만했다.

그가 오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눈을 뜬 내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여기 왜 올라와 있는 거지?’

갑자기 나무 위에 있는 내가 당황스러워 얼른 몸을 일으키려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앞발, 뒷발 모두 꼼짝을 하지 않았다. 겁이 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버둥대다가 나무 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평소라면 몸을 빙그르 돌려 사뿐하게 착지했을 높이인데, 몸이 먼저 바닥에 닿았다. 다행히 흙바닥이라 충격은 크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 해도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목구멍도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내 몸이 왜 말을 듣지 않는 거지?’

이 난데없는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생각을 집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고 몸은 뜨거웠다. 그러다 퍼뜩 생각이 났다.

‘그래. 난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어. 나무 위에서. 그런데... 중간에 뭔 일이 있었지? 아~ 맞다. 제복 입은 남자가 음식을 놓고 갔지. 난 그 음식을 정신없이 먹었고.’

음식에 뭔가 문제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심각하게 몸이 아플 리가 없었다. 온 몸의 힘을 짜내서 겨우 일어났다. 그리고 몇 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푹 쓰러지고 말았다. 앞발에 침을 묻히려 해도 발도 고개도 움직이지 않았다. 꼬리만 겨우 움직일 뿐, 몸의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졸음이 몰려왔다.

‘다행히 춥지는 않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괜찮아지는 걸까?’

눈앞의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을 때였다. 단지로 들어오는 그가 보였다.

‘아~ 그 사람이다. 얼른 가서 잘 돌아 왔다고 인사를 해줘야 하는데...’

가로등 불빛에 빛나는 그의 머리를 본 것을 마지막으로 나의 무대는 암전되었다.

제복 입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듯하다.

“그래. 거기서 자다가 너는 얼어 죽은 거야. 쥐약 때문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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