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마리 강아지와 그녀가 살게 될 집을 머릿속으로 그리다보니 어느새 동물병원 앞이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원장님이 먼저 병원 문을 열고 나를 맞았다. 들어서는 내게 그 사이 있었던 상황을 얘기하는데, 슬쩍 표정을 보니 뭔가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포도가 너무 기운이 없어서 일단 수액을 놨어요. 아무래도 신장 쪽에 문제가 있는 거 같아서 걱정이긴 한데, 좀 전에 소변을 많이 봤어요. 다행이죠.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큰 고비는 넘기지 않았나 싶어요.”
고비를 넘겼다니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머지 8개의 목숨으로 행복하게 살자던 기도가 통한 것일까?
포도는 철재 케이지 안에서 다리를 뻗친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철재 케이지를 보니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다. 감옥의 창살처럼 세로로 촘촘하게 박힌 철창이 포도와 나 사이를 영원히 가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얼른 철창을 열었다.
포도는 원장님의 말씀대로라면 좀 더 기운을 차린 모습이어야 할 텐데 헤어질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잠시 누그러졌던 걱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걱정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게 다정하고 밝은 음성으로 포도를 불렀다.
“포도야~ 좀 괜찮아졌어?”
내 목소리에 포도가 반응을 보였다. 모로 누운 몸을 힘겹게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나의 부름에 응답했다.
“선생님이 너 이제 괜찮을 거래. 오늘 밤만 잘 자면, 내일은 아빠 책상에서 쉴 수 있대.”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최대한 다정하게 진심을 담아 또박또박 얘기하며 손으로는 포도의 머리와 몸을 쓰다듬었다. 몸에서 미세하게 ‘그르릉’ 소리가 났다.
한참을 쓰다듬고 있는데, 원장님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 이제 병원 문 닫을 시간이에요. 포도는 오늘 여기서 재우실거죠?”
“죄송해요.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어요. 그럼, 포도는 오늘 여기 혼자 있는 건가요?”
“안타깝지만 그래야 되겠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집이 이 근처라 밤에 와서 상태를 좀 볼 겁니다. 그래도 걱정이 많이 되시면 데려가시겠어요?”
데려가고 싶었지만 회복을 위해선 이 곳에 있는 편이 나아보였다. 수액도 맞아야 하고.
“여기 두겠습니다. 그럼 밤에 꼭 좀 살펴주세요. 원장님, 죄송한데 1분만 더 보고 갈게요.”
“네. 그러세요.”
감옥 같은 철창 안에서 밤을 보낼 포도가 걱정이었다.
‘환경에 아주 민감한 녀석인데...’
수액 바늘을 꽂은 발이 애처로웠다. 그 발에 손을 살짝 얹으니 포도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포도의 검은 눈동자에 내 눈동자가 보였다. 이 세상에 오직 포도의 눈과 나의 눈만 존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뱀도 잡는 용감한 고양이이잖아. 그깟 병 따위에 지면 안 돼. 모두가 널 걱정하고 있어. 꼭 다시 일어나기다.”
작별 인사를 하고 손을 거두려는데 포도가 반대편 발을 손등 위에 얹었다.
그냥 얹은 것이 아니라 발톱을 세워 꽉 잡았다. 순간 나도 깜짝 놀라 손을 빼려는데, 포도가 손을 놔주지 않았다. 발톱을 손등에 더 깊이 박아 넣었다.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그래? 너 밤에는 늘 혼자였잖아. 혼자서 씩씩했잖아.”
순간 눈물이 났다. 사무실에 있던 몇 년간 늘 밤에는 혼자였을 포도에게 미안했다.
“포도야. 오늘만 여기서 자고 내일은 집에 가자. 옛날처럼 엄마, 아빠랑 같이 살자.”
알아들었던 걸까? 손등에 박아 넣었던 포도의 발톱이 스르르 빠졌다. 그리고 동그랗게 떴던 눈도 점점 감겨갔다.
꽤 늦은 시간이 돼서야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서 장화를 털며 급하게 물었다.
“자기야. 나 왔어. 포도는 좀 어때?”
“원장님은 신장 쪽에 문제가 있는 거 같다고 하네. 일단 고비는 넘겼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좋지는 않았어.”
아내는 현관에서 거실 소파까지 걸어가면서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 궁금한 듯 물었다.
“포도한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조 같은 것도 없었잖아요. 이렇게 갑자기 아프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포도가 먹은 걸 자꾸 토하기는 했어. 그런데 그건 하루 이틀도 아니었고.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는 한데...”
“뭔데요?”
“며칠 전 사무실에서 야근했을 때 말이야. 사무실에서 쉰내 같은 냄새가 나서 향을 피웠거든. 포도 옆에서. 한참을 킁킁거리더니 책상 밑으로 피하더라구. 냄새에 민감한 아이인데, 그 때 스트레스를 받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에이, 설마. 포도가 얼마나 강한 아이인데...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생각나? 도곡리 살 때 말이야. 포도가 진드기한테 물린 적 있었잖아요. 비틀거리고 잘 걷지도 못해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이마에 커다란 진드기가 붙어 있었던 거. 얼마나 징그럽던지... 그거 제거하고 바로 좋아졌잖아요.”
“나도 그 생각이 나서 포도 몸을 샅샅이 뒤져봤지. 진드기는 없더라고”
“그럼 대체 왜....”
잠시 말이 끊겼다. 아내에게 포도와의 약속을 말할 때였다.
“헤어질 때 포도랑 약속했어. 퇴원하면 집에서 함께 살자고.”
“여기서? 이 집은 마당도 없어서 집 안에서 살아야 되는데? 자기야. 나 그거 자신 없어요.”
“포도가 사무실에서 지낸 지 4년 정도 됐잖아. 내가 집 지을 때를 제외하고는 저녁과 주말에는 늘 혼자였더라고. 외로움이 깊어서 생긴 병일지도 몰라.”
“하긴 도곡리에 살 때는 온 동네가 자기 집이었는데, 사무실에 갇혀서 많이 답답했을 거야. 집은 사무실보다 더 좁아서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도 있어요. 방법을 같이 생각해 봐요.”
아내 말도 일리가 있었다. 좀 고민해볼 문제라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원장님이었다. 시간을 보니 11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원장님이 포도를 살피러 갔을 때 포도의 상태가 괜찮았으면, 이 늦은 밤에 전화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아내도 불안한 듯 조바심을 내며 빨리 받아보라는 눈짓을 했다.
“네. 원장님. 포도는 괜찮죠?”
원장님은 선 듯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다급하게 물으니 그제서야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꺼내놓듯 흘려서 얘기했다.
“포도가 죽었어요.”
“네? 뭐라구요?”
“와보니까 포도가 죽어 있네요.” 결국 듣고 싶지 않은 얘기를 듣고 말았다.
“원장님이 고비는 넘긴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괜찮아지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그렇게 보였는데,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었나 봐요. 죄송합니다.”
아내는 벌써 펑펑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지금 포도를 데려가셔도 되고요. 아니면, 내일 아침에 오셔도 되고요.”
“잠시만 맡아주시면 내일 아침 데리러 가겠습니다.”
아내와 나는 한참을 울기만 했다. 고작 7년을 살다간 것이 모두 우리 탓만 같았다.
울음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다가도 추억이 한 자락 꺼내지면 또 울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아내에게 포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요즘 반려동물 화장을 해주는 곳이 있다던데, 화장을 해야 할까?”
아내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놨다. 그 조그만 놈을 죽자마자 가루로 만든다는 생각을 하니 포도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예전에 살던 도곡리 집에서라면 아마도 뒷산에 묻어주지 않았을까 싶다. 도곡리에 살 때도 툇마루 아래에서 얼어 죽은 길고양이를 뒷산에 묻어준 적이 있었다.
“선주야. 난 포도를 집에 데려오고 싶은데.”
“집에 데려와서 어떻게 하려고?”
“이거 불법인 건 아는데, 우리 집 정원에 묻어주고 싶어.”
“괜찮을까? 동네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고”
“어차피 그냥 묻을 수는 없잖아. 나무로 수목장을 해줬으면 하는데, 혹여 누가 보더라도 나무 심는 줄 알겠지.”
“그래요. 나도 곁에 두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나무는 내가 구해올게.”
무덤을 옆에 두고 사는 걸 꺼림칙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아내는 한술 더 떴다.
“생각해둔 나무가 있어?”
“내가 거래하는 화원에서 본 나무인데, 이름이 황금회화나무야. 가지하고 잎이 온통 노란색인데, 포도와 딱 어울릴 거 같아.”
“그래? 그럼 그 나무로 하자.”
날이 밝는 대로 아내는 화원으로 가서 황금회화나무를 사오기로 하고 나는 포도를 데려오기로 했다. 철창 안에서 쓸쓸하게 죽은 포도를 도저히 못 볼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공감했다. 나도 볼 용기가 나지 않았으니까.
새벽녘에야 깜박 잠이 들었다가 수종사의 종소리에 잠이 깨었다. 양수리에서 아침을 깨우는 첫 소리는 새소리가 아니라 수종사의 종소리이다. 묵직한 종소리가 안개처럼 깔리고 난 후, 새들의 지저귐이 시작된다. 결국 한 두 시간 눈을 붙인 셈이었다.
밖은 아직 어둠이 묻어 있었다.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일어나 1층 정원으로 내려갔다. 예상대로 정원은 손대지 않아서 잡초로 가득했다. 정원으로 부르기도 민망한 공간이었다. 집을 짓고 남은 삼각형의 자투리땅이었는데, 면적은 한 평 반 정도였다. 그나마 환경부의 땅과 인접해서 땅을 조금 넓게 사용하고는 있지만 절대 정원으로 부를 수 있는 크기와 분위기는 아니었다. 거기에 잡초까지 무성하니 어디가 정원의 경계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창고에서 녹 슬은 호미를 찾아서 잡초 안으로 요란스럽게 뛰어 들어갔다. 겁이 나서였다. 언젠가 퇴근길에 정원 한가운데에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한참을 보고 있는데도 꿈쩍을 하지 않던 뱀이 떠올라 그 이후로는 정원에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포도를 묻어줘야 하니까. 호미로 잡초의 뿌리까지 하나하나 캐냈다. 땅은 작아도 잡초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두 시간을 넘게 잡초를 캐고 한 평 반의 맨땅이 만들어졌다. 나무 심을 위치를 가늠하고 있는데, 아내가 나왔다.
“아침부터 뭐해요?”
“잡초가 너무 무성해서. 포도가 묻힐 곳인데, 정리는 해야 하잖아.”
“훤해졌네. 포도를 묻으면, 여기도 좀 가꿔야겠어요.”
포도의 눈은 감겨 있었고 몸도 많이 굳은 상태였다. 병원에 오래 있기 싫어서, 아니 원장이 미워서 설명도 듣지 않고 스웨터에 싸서 나왔다. 가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사람은 무감해지기도 하는데, 지금이 딱 그랬다. 고작 하루 만에 딱딱해진 포도를 들고 나오는데,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화창한 날과 원장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문구점에 들러 한지와 삼끈을 샀다. 물티슈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포도의 마지막 가는 길은 아내와 함께하고 싶었다. 아내는 차에 커다란 나무를 싣고 돌아왔다. 아내의 말대로 가지가 노랗고 수형이 예쁜 나무였다.
아내와 함께 포도를 보내는 의식을 준비했다. 바닥에 한지를 깔고 포도를 뉘였다. 그리고 물티슈로 포도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줬다. 아내는 포도를 만지며 이내 눈물을 보였다. 몸을 깨끗이 닦아 내고는 한지를 잘라 발을 하나씩 싸주었다. 선물을 포장하듯 삼끈도 예쁘게 묶어줬다. 발까지 묶고는 포도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감긴 눈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아내와 난 고맙고 미안하다고 속삭여줬다. 마지막 인사를 끝내고 머리까지 한지로 싼 다음 몸을 큰 한지로 싸고 삼끈으로 꽉 묶어줬다. 나름 정성을 들인 염습이었다.
염습을 끝낸 포도는 땅위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안의 알맹이가 다시 세상에 꺼내질 일은 없을 것이었다.
진짜 마지막이었다.
침울한 마음으로 삽을 들고 땅을 파려는데 아내가 내 손을 붙잡았다.
“병규씨. 포도랑 마지막으로 어디 좀 다녀오자.”
“지금? 어디?”
“포도의 고향”
그랬다. 포도도 고향이 있었다. 삐걱 거리는 나무대문이 있고 넓지는 않지만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던 곳, 플라스틱 기와를 얹은 보잘 것 없는 별채이지만 햇빛이 잘 드는 툇마루가 있던 곳, 창턱에 앉아 부엌에서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곳, 그 곳이 포도의 고향이었다.
고향이라는 말에는 그리움이 새겨져 있다. 화양연화 같은 시절을 보내고 그 기억이 쌓이고 곰삯아 추억이 되는 곳, 그 추억을 되새김질 하며 그리워하는 곳이 고향이다. 사람이 늙고 약해지면 고향을 찾는 것도 추억에 기대어서라도 살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포도도 죽기 전에 고향을 찾았으면 추억의 힘으로 다시 살아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포도와 함께 고향집을 가보자는 아내의 제안은 역시 따라갈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하얀 고치 같은 포도를 안은 아내는 조수석에 앉았다. 여기 양수리에서 남양주의 도곡리 옛집까지는 고작 10km 남짓이었다. 소풍가기 딱 좋을 만큼 날씨는 얄궂게 화창했다. 지프의 지붕을 열고 창문도 활짝 내린 채 천천히 도곡리로 향했다.
아내와 난 그 길에서 포도와의 추억을 얘기했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소리, 차 소리가 들어와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아니, 포도에게 닿을 수 있도록, 포도와의 소풍이 정말 즐겁다는 양 일부러 크고 즐거운 목소리로 추억했다.
아내에게 고개를 돌리고 큰 목소리로 얘기했다.
“포도에게 가장 행복했던 장소는 도곡리 집이지 않았을까? 그 집 뒷산에 포도를 묻어주고 올까?”
아내가 말했다.
“아니. 포도가 제일 행복했던 곳은 우리 옆이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