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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는 나의 집

by 보통의 건축가


차 밑의 온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온기가 사라진 차 밑은 얼음 같은 바닥의 냉기로 더 몸이 떨렸다. 살아나자마자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몸을 움직이는 편이 낫겠다 싶어 은신처를 찾기 시작했다. 단지 안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가끔 바람을 가르는 차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가까이 왔다가 멀리 사라지는 차 소리가 그와 나 사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외로워지기 위해 살아난 거라면 그냥 영혼으로 있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후미진 담벼락에 뭔가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무로 된 상자였는데, 상자 안에 작은 상자들이 여럿 들어가 있었다. 그 작은 상자 크기가 내 몸을 누일 정도는 되 보였다. 머리가 들어갈 정도의 틈이 있는 작은 상자로 들어갔다. 따뜻했다. 바닥도 차갑지 않았다. 이 곳이라면 날이 밝을 때까지 쉴 수 있을 것이다.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청했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이 곳을 집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와 대화를 나눴던 영혼은 ‘집은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 했다. 아마도 이 나무상자는 날이 밝으면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곳은 집이 될 수 없다. 집이 없기에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일까, 돌아갈 곳이 없어 집이 없는 것일까.

돌아가고 싶은 곳이 생기긴 했다.

그였다. 그렇다면 그는 나의 집이 될 수 있을까? 그를 나의 집으로 삼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로 그 밤을 보냈다.


박스 안으로 하얀 빛 한줄기가 슬며시 들어왔다. 햇빛에는 따뜻한 온기가 실려 있었다. 발을 내밀어 햇빛을 묻히고 혀로 핥았다. 다시 살아나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고 1004호가 밥을 주는 곳으로 갔다. 아직 시간이 이른 것일까?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고양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벌써 그 경비 놈 손에 다 죽은 것일까? 어제 그 고양이들은 고통 속에서 죽어갔겠지. 하얀 구름 같은 영혼이 되어서 이미 하늘로 올라가 이 곳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을지 모른다.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죽어보니 알 것 같았다.


해가 중천에 올랐는데도 1004호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비가와도 나오고 눈이 와도 우리에게 밥을 주던 1004호가 밥을 주러 나오지 않았다. 1004호는 이미 고양이가 다 죽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어디가 아픈 것일까? 그녀도 걱정이 됐지만 더 큰 걱정은 영락없이 굶을 수밖에 없다는 눈앞의 현실이었다.

‘큰일이다. 내일도 1004호가 밥을 주지 않으면, 정말 굶어 죽을 수도 있겠어.’

더 기다려봐야 그녀가 올 것 같지도 않고 추위에 몸이 굳기도 해서 자리를 떴다. 밤을 보냈던 나무 박스에서 몸을 녹일 생각을 하고 가보니 역시 박스는 치워지고 없었다. 너무나 막막해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큰 소리로 울고 있어도 나를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 아파트에 고양이가 모두 사라졌는데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아파트라는 곳은 사람이 아닌 것들은 모두 밀어내고 있다. 종이 상자도 사람이 버리면 금새 사라지고 커다란 나무박스도 하루를 버티지 못했다. 나무처럼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은 이상 사람이 아닌 것들은 아파트에서 사람과 함께 살지 못한다. 사람들의 집 안에서 사는 고양이가 있다고 영혼이 얘기해줬었다. 그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들의 집이 곧 고양이의 집이기도 하다고도 했다. 그 들의 집 안에서 함께 사는 것들은 귀하게 여겨지고 집 밖의 것들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다.

벌집을 닮은 아파트란 곳은 참 이상했다. 생긴 것은 벌집과 비슷한데, 확연히 달랐다. 벌집은 똑같이 생긴 작은 육각형의 방이 모여 커다란 하나의 집을 이루고 있는데 그 벌집을 건드리면 모든 벌들이 함께 건든 자를 공격했다. 예전에 내가 당해봐서 안다. 얼마나 독한 것들인지 끝까지 쫓아와서 벌침을 쏘았다. 벌들에게 집이란 작은 육각형의 방이 아닌 전체였고 벌들은 혼자가 아닌 함께였다.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집은 작은 방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시끄럽게 누가 떠들어도, 환호성을 질러도, 웃거나 울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단지 화단에 벚꽃이 피고 새들이 찾아와도 사람들은 기뻐하거나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와 상관없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모여 있어도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외로워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곳이 지긋지긋해졌다. 높이 떴던 해가 어느새 낮게 누웠다. 이제 곧 차가운 밤이 올 것이다. 오늘 밤을 보낼 대비를 해야 했다. 어제는 나무박스 덕에 견딜만했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한 오늘 밤은 노지에서 견딜 자신이 없었다. 단지의 담장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았는데 오늘은 몸을 기댈만한 것이 나와 있지 않았다. 결국 차 밑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노란 불빛을 환하게 키고 아파트로 들어오는 차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가 차가 멈추면 얼른 차 밑으로 뛰어 갔다. 차는 움직일 때 열을 내는지 멈추면 열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주 잠깐은 추위를 잊을 만큼 따뜻했다.

점점 아파트로 들어오는 차들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더 추워질 텐데 걱정이었다. 방법을 찾아야했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두리번거리는데 차 밑쪽에 군데군데 틈이 보였다. 깜깜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왠지 저 틈으로 들어가면 차 안에 도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차에서 사람이 내리는 것을 확인했으니, 차 안에는 분명 아무도 없다. 사방이 유리로 막혀 있으니 바람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종이 상자보다 더 따뜻할 것이었다.

‘그래. 저 위로 올라가보자’

점프를 해서 틈으로 뛰어 올랐다. 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역한 냄새도 심하게 났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는데, 발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역시, 안으로 들어오기를 잘 했어’

눈이 어둠에 적응을 해서 그런지 조금씩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부는 뭔가 복잡하게 생긴 것들로 꽉 차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을 빼고는 여유가 없어 보였다.

‘이상하네. 밖에서 봤을 때는 안이 꽤 넓었는데, 이런 작은 공간에 사람이 어떻게 들어간 거지?’

차 안은 좁지만 꽤 아늑했다. 지독한 냄새를 빼고는 차가운 바람도 느껴지지 않았고 사방에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여태 이런 좋은 곳을 몰랐다니... 앞으로 밤에는 차 안에서 자면 되겠어.’

만족감에 잠이 쏟아졌다. 깜빡 졸다가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사람 목소리에 잠이 깼다.

‘차 주인일까?’ 잔뜩 긴장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형준 아빠? 저 윤기 아빠에요. 늦은 시간에 전화 드려서 죄송해요. 퇴근하고 와이프한테 얘기 들었어요... 아. 예. 밖입니다. 집에 윤기가 있어서 밖에 나와서 전화 드리는 거예요. 형준 엄마는 좀 어떠세요? 아~ 예. 며칠 전에도 화단에서 뵈었는데.. 그렇게 아프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형준 아빠도요? 이런, 이걸 어째... 아픈 걸 왜 숨기셨대요. 형준이가 걱정이네요. 윤기엄마라도 있으면 옆에서 좀 도와드리면 좋을 텐데...네. 저희는 내일 이사 나갑니다. 인사도 못 드리고 가네요. 가서 정리 좀 하고 주말에 병원에 들르겠습니다. 네..네.. 형준 아빠. 힘내시고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지만, 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단박에 알았다. 그 사람이었다. 무슨 얘기인 줄은 모르겠지만 목소리에는 염려와 걱정이 묻어 있었다.

‘그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있구나.’

그에게 다가가 볼을 핥아주고 싶었다. 마음이 급했다. 그는 날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기회가 왔을 때 그를 붙잡아야 했다. 나의 집이 되어 달라고 애원해야 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빨리 나가야 했다. 차 밑으로 내려가려고 몸을 돌렸는데, 몸이 끼여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들어왔으니 당연히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갈 수도 없었다. 뭔가 단단히 잘 못 되었다.

그가 자리를 뜨기 전에 내가 여기 있음을 알려야 했다. 급한 마음에 최대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야옹~ 냐~옹”

“아이고. 날이 추우니 고양이가 또 차 밑으로 들어갔나 보네. 위험한데..”

그가 내 목소리를 들은 게 분명했다. 난 더 크게 울어댔다.

“냐~~옹 냐~~옹”

“어? 차 밑에는 없는데,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야옹아~”

내 울음에 그가 또 반응했다. 난 쉬지 않고 울어 댔다.

“이상하네. 이 차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한데. 차 안에 있나? 아닌데... 어? 뭐야? 보닛 안에서 들리는 거 같은데..”

그가 날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목소리가 분주했다. 더 가열차게 울어댔다.

잠시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설마 날 두고 가버린 건가?’

잠시 후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0000 차주시죠? 저기... 이 상황이 저도 이해가 안가기는 합니다만, 선생님 차 보닛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려요. 네. 저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진짜로 보닛 안에 고양이가 있는 거 같아요. 추워서 들어갔을 수도 있죠. 귀찮으시더라도 잠시만 내려오셔서 보닛을 열어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것 같은데, 꽤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어서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경비였다.

“사장님, 여기서 뭐 하세요? 내일 이사 가신다면서요? 짐은 다 싸셨어요?”

“안녕하세요. 지금 좀 황당한 상황이라.. 이 차 보닛 안에 고양이가 있는 거 같아요.”

“고양이요? 날이 추우니까 거길 기어들어갔나 보네. 얘기 들어보니까 3단지에서는 보닛 안에 고양이가 있는 줄 모르고 운행했는데, 고양이가 타서 죽어 있더래요.”

“그래요? 고양이들이 보닛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구나.”

조금 있으니 낯선 목소리 하나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참. 사람 귀찮게 하네. 아니, 거기 고양이가 어떻게 들어 가냐 고요?”

뭔가 위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확 밝아졌다. 누군지 분간할 수 없는 3개의 사람 머리가 보였다. 그 중에 하나는 다정한 그 일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원수일 것이고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나를 구하기 위해서 좋은 사람, 나쁜 놈, 모르는 사람 세 명이나 나를 찾고 있다.’

감동적이었다. 위에서 한 줄기 강한 빛이 비추었다. 눈이 부셔서 나도 모르게 “야옹” 소리를 냈다.

“소리 들리시죠? 분명 저 안에 있다니까요.” 기대에 찬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빛이 이리 저리 움직이더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멈췄다.

“저기 있다!”

“아니. 저 깊은 곳까지 어떻게 들어갔데요?”

위에서 손이 내려오더니 내 몸을 더듬었다. 따뜻한 손이었다. 그러더니 내 목덜미를 꽉 잡고 몸을 들어올렸다. 난 그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을 한 번 찡긋했다. 다정한 빛이 반짝하고 튀었다.

‘역시. 나의 집은 당신이야’

이제 그의 품에 안겨서 기대하던 집으로 가는 것일까? 기대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이고, 요 쪼그만 게 거기는 어떻게 들어갔니? 엄마는 어디 갔을까? 왜 혼자야?”

그는 걱정의 말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옆에 서 있던 낯선 사람이 얘기했다.

“선생님 덕분에 큰 사고를 피했네요. 전화로 짜증냈던 건 죄송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총총 사라졌다. 이제 그 사람과 원수인 경비와 나만 남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팔에 매달리려 애썼다. 제발 나를 이대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그가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너를 어쩌니... 사람을 좋아하는 걸 보면, 그냥 길냥이는 아닌 거 같은데. 이 어린 걸 누가 버린 걸까? 아니면, 어미가 있는 아이일까? 대체 넌 어디서 툭 튀어 나온 거니?”

옆에서 경비가 끼어들었다.

“저 이놈 알아요. 어젯밤 기억 안 나세요? 저랑 있던 그 아기 고양이.”

“아~ 그러네요. 그때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그런 거 같네요. 그렇다면 이 놈이랑 저랑 인연이 보통 아닌데요.”

경비가 어떻게 할 거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난감하네요. 이 아이를 집에 데려갈 수도 없고 길바닥에 두고 갈 수도 없고요. 저희 내일 아침 일찍 이사 나가잖아요. 애를 데려가면 어미를 다시는 못 볼 텐데, 제 마음대로 생이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경비가 뭔가를 얘기하려다 말을 삼켰다.

“요놈 눈이 참 예쁘네. 왠지 낯설지가 않아... 나랑 같이 갈래?”

그의 눈을 보고 있으니 봄날처럼 따뜻했다. 난 계속 그에게 애원했다.

‘제발. 날 데려가 줘요’

경비가 다시 끼어들었다.

“사장님. 이 놈 어미도 이 단지에 있으니, 그냥 여기에 두는 게 좋겠어요. 제가 오늘은 경비실에서 보살필게요. 내일 어미를 찾아서 상봉을 시켜주죠.”

“아~ 아무래도 그게 좋겠죠? 그러면 아저씨께서 수고 좀 해주세요.”

목덜미를 쥔 손이 그에게서 경비에게로 넘어 갔다. 뭔가 잘못 되고 있었다. 목덜미를 쥔 경비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목의 거죽이 아파왔다. 그는 내게 다시 눈을 맞췄다.

“두고 가는 게 마음이 안 좋네. 그래도 여기 아저씨가 엄마를 찾아 줄 거야. 잘 살아라. 꼬마야.”

아쉬움이 묻어 있는 음성이었다. 나는 다시 이별을 예감했다.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실패가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서러워서 울었다. “냐~~~~옹”

그도 걱정이 됐는지 가면서 자꾸 돌아봤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그가 야속했고 보고 싶었다.


이제 끔찍한 현실만이 남았다.

복수를 꿈꿨던 나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꿀 수 없는 현실을 체념하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 또 죽이려면 죽여라. 나도 이 지긋지긋한 아파트는 이제 미련 없다.’

그의 손에 들린 내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몸은 이미 탈진 상태였고 마음의 수분도 증발해버렸다. 마음이 서걱거리는 모래가 되어 바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주워 담을 여력이 없었다.

경비는 나를 들고서 어딘가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자마자 나를 땅바닥에 던지듯 내려 놨다.

“이 놈이 나를 끝까지 괴롭히네. 보닛에서 뒤졌으면 어쩔 뻔했어. 아마 아파트가 발칵 뒤집어졌을 거야. 동대표는 결국 고양이 때문에 이 사단이 났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을 거고. 그리고 희생양으로 나를 삼았겠지.”

말을 하면서 그는 계속 나를 노려봤다. 나도 눈을 피하지 않고 맞받았다.

‘내가 힘만 있었어도 네 목을 확 물어뜯어 버릴 텐데.’

그가 노려보던 눈의 힘을 풀고 웃는 얼굴로 얘기했다.

“이 놈아. 안심해라. 오늘은 어쩌지 않을 테니. 여기 주다가 남은 통조림이 있을 텐데...”

그가 책상 위를 뒤적거리더니 기막힌 냄새가 나던 음식을 그릇에 담아 내 앞에 내려놨다.

“걱정마라. 약은 안 탔으니. 네가 지금 죽으면 나도 곤란하거든”

그가 그릇을 내 앞으로 밀었다.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어차피 살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먹고 콱 죽어 버릴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엔 겁이 나고 두려웠다. 아직 마음속에서는 살고 싶다는 아우성이 더 크게 들렸다. 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날카롭게 “카악‘ 소리를 냈다.

“어허~ 이 놈 특이하네. 생선을 안 먹어? 그럼 뭐에다 약을 타야하나? 음~ 그래. 치킨이 좋겠어. 내가 다음에 출근할 때 치킨 가져다줄게. 맛있게 먹고 얼른 죽자~”

경비의 목소리는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징그러운 데가 있었다. 목소리 때문인지 속이 울렁거리고 토하고 싶었다. 캑캑 거리고 있으니 그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때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봉투와 그릇이 들려 있었다.

그가 경비에게 다가가더니 봉투 두개를 내밀었다.

“아저씨. 그간 감사했습니다. 약소한데, 가족들과 식사 한번 하세요. 한 개는 파트너 분께 좀 전해주시구요.”

“아이구. 뭘 이런 걸. 감사합니다. 이건 잘 전해드릴게요. 그런데 가시는 곳이 어디에요? 서울 아니죠?”

“네. 남양주 도곡리 라는 곳입니다. 농가주택에 전세로 가요.”

“여기 자가 아니세요? 멀쩡한 아파트 놔두고 왜 시골로 가요?”

“아파트가 지긋지긋 해서요. 아들 건강 문제도 있구요. 공기 좋고 마당도 있는 집에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하하”

그가 말 하고 있는 동안 난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다리에 머리를 부비고 말을 걸었다.

“나 좀 보라고”

그가 쪼그리고 앉더니 예의 그 따뜻한 눈으로 나를 봐주었다.

“낯선 곳이라 무섭지? 그래도 따뜻하잖아. 내일은 저 아저씨가 엄마한테 데려다줄 거야.”

그가 그릇을 내 앞에 내려놓았는데, 거기에는 하얀 우유와 1004호가 주던 밥이 섞여 있었다.

그가 내게 처음으로 주는 음식이었다.

경비가 참견을 했다. “제가 비싼 통조림을 줬는데, 안 먹어요. 배가 안 고픈가 봐요”

나는 그의 마음이 담겼을 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어? 이 놈. 이건 먹네. 사람 차별하나.”

“옆집에서 좀 얻어왔는데, 잘 먹어서 다행이네요”

그는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조용히 기다려줬다. 내가 밥을 다 먹으면, 그는 또 떠날 것이라는 생각에 식욕이 확 떨어졌다. 밥 먹는 걸 그쳤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부볐다.

“정이 많이 고픈가 보네... 마음은 정말 데려가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참는 거야. 엄마한테 사랑 많이 받고 씩씩하게 잘 살아”

그는 날 만지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만 보듬을 뿐이었다.

그가 떠난 후 경비는 의자에 앉더니 신발을 벗고 발을 책상 위에 올렸다. 발쪽에서 지독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리고 얼마 안가 숨이 넘어갈 듯 코를 골았다. 머리는 의자 뒤로 젖혀져 있고 자세도 불안했지만 세상 편한 듯 깊은 잠을 잤다. 뒤로 자빠져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다 죽는 상상을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방은 냄새나고 시끄러웠지만 내가 경험해본 곳 중 가장 따뜻한 곳이었다. 증오와 소음이 가득해도 졸음은 쏟아졌고 나 역시 간만에 깊은 단잠에 빠졌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경비와 난 화들짝 놀라서 깼다. 똑같은 제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의 또 다른 경비였다. 이 사람은 뭐랄까 걸어 다니는 아파트 같았다. 건조했고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지 않는 듯했고 고양이도 돌을 보는 듯했다. 화를 내거나 웃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 사람은 우리의 경계 대상은 아니었다. 우리도 이 사람을 없는 듯 대했다. 그 사람이 침을 닦고 있는 경비에게 말했다.

“순찰은 돌았나? 그냥 또 내처 잤지? 밤 근무 그렇게 하다가 언젠가 일 날걸세”

“김씨. 잔소리 그만하고 자네 왔으니 난 그만 퇴근 혀”

뭔가 생각을 하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김씨. 여기 이 놈 좀 데리고 있어 줘. 그냥 밖에만 나가지 못하게 하면, 저녁때 내가 출근해서 치움세.”

무해한 그 경비는 나를 보고는 눈이 똥그래졌다.

“아니. 이 놈은 뭐야? 여기 왜 있어?”

“어제 일이 있었어. 저 놈 때문에 큰일이 날 뻔했지. 저 놈이 자동차 보닛 안에 있었던 거야. 내가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거기 있다가 아침에 시동 걸고 출발했으면, 어쩔 뻔 했어? 저 놈 죽는 건 그렇다 치고 차가 망가졌으면, 그거 다 우리 탓 할 거 아니겠냐고. 어제 그 일 때문에 오늘 이사 나가는 아저씨가 엄청 열 받아 했거든. 우리한테 감정이 별로 안 좋으니까 가급적 마주치지 말라고.”

“우리한테 화낼 일이 아니잖아?”

“당연하지. 그런데 저 놈이 차에 올라탄 거부터가 우리의 관리 소홀로 생각하나봐. 아침에 이사 간다니까 조금만 피해있게.”

당부를 마친 경비는 주섬주섬 옷을 입더니 밖으로 나갔다.

무해한 경비가 나를 보더니 쯧쯧 혀를 찼다.

“거긴 뭐 하러 올라갔냐. 잠잠해질 때까지 여기 있어라,”

오늘도 여전히 그에게서는 적의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안심이 됐다. 그는 자리에 앉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이 공간에서 비로소 혼자가 됐다. 경비가 어제 밤에 놓고 간 밥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군침이 도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흥. 내가 바보냐?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저건 안 먹는다.’

뱃속이 꾸르륵 거렸다. 배고파서 나는 신호라기 보단 어제 밤에 먹은 우유 때문인 거 같았다. 볼 일을 봐야 하는데, 여기는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큰일이었다. 점점 배는 아파오고 가만히 있기 힘들어 좁은 공간을 맴돌았다. 얼마나 맴 돌고 있었을까. 이제는 이 방에라도 실례를 무릅쓰고 일을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문이 열렸다.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냅다 뛰어 나갔다. 무해한 경비가 깜짝 놀라서 잡으려고 했지만 그는 둔하고 느렸다. 정신없이 화단으로 달렸다. 일을 치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따뜻했던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마음이라도 편히 있을지.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고약한 그 경비가 다시 나타나면 큰일을 당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파트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구가 잘 보이는 화단에 자리를 잡았다. 그를 혹여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오늘은 특이하게 아주 커다란 차가 출입구 옆에 세워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집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을 꺼내와 차에 싣고 있었다. 며칠 전에 잠자리를 제공해줬던 나무 상자 같은 것도 있었고 사람보다 큰 물건도 있었다. 물건은 끊임없이 나와서 차에 실렸다. 벌집 같은 집 안에 저렇게 많은 물건이 있다는 것이 무슨 마법 같았다. 어제 차 안도 비슷했다. 밖에서 봤을 때는 충분한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차 안은 복잡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왜 저렇게 많은 물건들로 집을 채우는 걸까? 물건들이 집을 채우면 그만큼 집은 좁아질 텐데... 그런 상황을 감수하더라도 집 안에 둘만큼 소중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 소중한 것을 집에 두고 왜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것이지?’

참,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었다. 어쨌든 집의 물건을 저렇게 다 빼내어 차에 싣는 것을 보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상황임은 알 수 있었다. 집을 옮길 수 없으니 사람과 소중한 것들을 다른 집으로 옮기는 것이겠지.

‘사람들도 한 곳에서 살지 않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구나.’

그 많던 물건이 차에 다 실렸다. 저 안에 다 들어갈까 싶었는데, 요리조리 쌓고 넣고 하니 거짓말처럼 물건이 사라졌다. 재밌는 구경거리였는데, 살짝 아쉬웠다.

사람들이 차에 타고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자 사람과 아이가 손을 잡고 아파트 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 뒤에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따라 나왔다. 그였다.

어제 나를 차에서 꺼내 주었고 따뜻한 우유를 줬던, 내 집을 삼고 싶은 그 사람이었다.

여자 사람과 아이는 커다란 차 앞에 있던 작은 차를 탔다. 그리고 그는 커다란 차에 올랐다.

‘뭐야? 그럼 저 사람의 집에서 나온 물건들인 거야? 그는 여기를 떠나는 거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그가 여기를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저 커다란 차에 물건을 실었다는 건 더 이상 이 곳은 그의 집이 아니라는 것이고 난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야. 그럴 수 없어. 내가 다시 사는 이유가 그 사람에게 가기 위함인데, 그가 떠나면 영영 그 기회는 오지 않을 거야’

차를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차는 이미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눈물이 바람에 날려 귀를 적셨다. 어떻게든 내 목소리가 그에게 닿길 바라며 울부짖었다. 그의 새를 물고 달렸을 때 나를 쫒던 그의 마음이 지금의 나처럼 절망적이었겠구나. 많이 아팠겠구나.


차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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