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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우리의 화양연화

by 보통의 건축가



화양연화

지천을 노랗게 물들인

네가 거기 있었구나

애기똥풀이 말했어

꽃을 피우니 겨우 나를 알아봐주네

그래서 내가 물었지

애기똥풀아

지금이 제일 좋은 계절이니?

애기똥풀이 말했어

아니아니

지금이 가장 슬픈 계절이야



“할머니, 제가 살았던 도곡리 집 앞에는 커다란 논이 있었어요.

처음에 제가 그 집을 보러 갔을 때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전철역에서 고작 20분 정도를 걸었어요. 나지막한 산모퉁이를 돌았는데, 눈앞에 푸른 들판이 쫙~ 펼쳐진 거예요. 그 때 반했어요. 집은 보지도 않고 동네에 완전히 빠져들었죠. 심지어 들판의 논은 우렁이로 농사를 지었어요. 물이 찬 논바닥을 들여다보면 우렁이가 잔뜩 돌아다녔는데, 여름이면 벼에 분홍색 알이 열매가 맺힌 것처럼 달리고는 했죠. 우렁이 덕분인지 왜가리나 백로가 자주 날라 왔어요. 초록 들판에 우아하게 앉은 백로가 얼마나 멋지던지. 거실 창문에서 백로를 보고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엄청난 행운이었죠.”

할머니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다며 재밌어 하셨다.

“그런데 도곡리에는 왜 간 거예요?”

과묵한 할아버지께서 느닷없이 물으셨다.


“음~ 그 이유를 말씀드리려면 저의 외할머니 얘기를 먼저 해야겠네요. 저는 외할머니 손에서 컸어요. 부모님이 모두 맞벌이를 하셨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홍대 근처 단독주택에서 살았어요. 어릴 때는 할머니랑 함께 철길이 있던 시장까지 장을 보러 다녔죠. 시장 구경이 은근히 재밌거든요. 할머니는 장을 보기 전에 꼭 잔막걸리를 한잔 하셨어요. 할머니가 가게에 들어서면 묻지도 않으시고 양은 잔 그득하게 막걸리 한잔과 김치쪼가리를 내 주셨죠. 가끔 혼자 드시는 게 미안했는지 초등학생이던 저에게 맛보라며 막걸리에 설탕을 타서 주기도 하셨어요.


그때 살던 단독주택은 골목의 다른 집과 비슷했어요. 집을 둘러싸고 작은 마당이 있었고 장독대도 있고 쓰레기 버리던 시멘트 박스도 있었죠. 그때는 다들 집마다 쓰레기 버리던 박스가 있었잖아요. 쇠로 만든 뚜껑이 달려 있어서 구루마를 끌고 온 청소부 아저씨 들이 뚜껑을 열고 쓰레기를 수거해 가셨었죠. 마당에는 장미나무와 큰 라일락 나무가 있었는데, 장미나무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송충이와 쐐기가 그렇게 많았어요. 여름 마다 할머니가 작대기로 나무를 털어 송충이를 잡았죠. 큰 라일락 나무는 제 놀이터였어요. 나무판자를 가지에 걸쳐 놓고 톰소여 흉내를 냈죠. 할머니는 수돗가에서 김치를 자주 담그셨어요. 배추를 절이던 빨간 다라이는 제가 물놀이를 하던 수영장이었고요.

할머니는 마당에 호박을 심으셨어요. 담장은 호박잎이 타고 올라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어요. 호박잎을 쪄서 쌈을 싸먹고(전 호박잎쌈이 정말 싫었어요) 호박전도 부쳐 먹다가 대여섯 개는 꼭 남겨서 늙은 호박을 만드셨죠. 가을볕에 호박과 씨를 말려서 할머니는 호박죽을 만들어 드셨고 저한테는 씨를 볶아서 간식거리로 주셨죠. 참 고소하고 맛있었어요.

비 오는 날엔 마루에 엎드려서 비를 보다가 숙제를 하다가 낮잠도 자는 걸 참 좋아했어요. 그럴 때면 할머니는 제 옆에 앉아 강판에 감자를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 주셨죠. 감자전을 쭉 찢어서 제 입에 넣어주시고 당신은 막걸리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켜셨죠.

겨울에는 마루에 연탄난로를 피웠어요. 그 때만해도 겨울이면 난로의 연통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는 집이 꽤 많았어요. 집의 단열이 온전치 않아서 웃풍도 세고 추웠던 시절이었으니까. 겨울밤이면 할머니랑 난로 옆에 앉아 밤을 구웠어요. 할머니가 밤 꼭지를 따주시면 제가 난로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뒤집었죠. 마루 안이 고소한 밤 굽는 냄새로 꽉 찼어요. 잘 구워진 밤은 할머니가 하나씩 까서 제 입에 넣어 주셨죠.

그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보냈던 추억이 계절마다 참 많았던 것 같아요. 할머니도 그러셨나 봐요.

제가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어요.

연탄을 갈지 않아도 되고 송충이를 잡지 않아도 되는, 몸이 편해진 집이었을 텐데 할머니는 말도 없어지시고 잘 웃지도 않으셨어요.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으셨죠. 저도 머리가 컸다고 할머니 방을 찾는 때가 거의 없었어요. 참 못난 놈이었죠.

할머니 방에는 조금 높은 곳에 창이 있었어요.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 창문이었죠, 그 아래에 책상 높이 정도 되는 서랍장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그 위에 방석을 놓고 앉아 계셨어요. 서랍장이 높아서 위험하다고 말려도 항상 그 위에 올라가 창밖을 내다 보셨어요. 왜 그러고 계시냐고 그때는 묻지 않았어요.

그렇게 그 방에서 십년을 넘게 사시다가 제 결혼을 앞두고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얼마 전 방에 누워 계시던 할머니가 제게 그러시더군요. 이 방은 당최 정이 들지 않는다고,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이 방은 어제 온 듯하고 우리가 살던 홍대 앞 그 집이 자꾸 생각난다고.

그나마 저 창가에 앉아 있으면, 작은 하늘이라도 보여서 좋았다고 하시더군요.

한참 지나 그때 생각이 나서 쓴 시가 있는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날개만 있다면


두 평 남짓

벽 높은 곳에 작은 창이 있었고

창 아래에는 열어본 적 언제인지

낡은 서랍장 위에 방석을 깔고

할머니는

하루 종일 창밖을 보고 계셨어


이쪽과 저쪽이 똑같아

거울 속에는 할머니도

다른 이도 보이지 않고

방문도 열리지 않았어

말은 굳어지고 몸은 화석이 되어 갔지

하루에도 몇 번 하늘을 긋고 가는

비행기의 균열이 없었다면

작은 창보다도 작은 하늘이 없었다면


입담배의 연기가

방의 유일한 생존신호 봉화로 오르고

할머니는 끊임없이 피셨지

연기에 몸을 싣고 싶으셨을까


아파트 사이의 천창으로

신호를 보지 못한 비행기가 지나고

죽어도 못 타보는 저 망할 것

저런 것도 날개가 있는데


초라한 시죠?”

할머니는 꼭 어릴 때 외할머니가 내게 그랬듯이 주름이 가득하게 웃고 계셨다.

“아니요. 할머니가 저 위에서 좋아하시겠어요. 손자가 당신을 생각하며 시도 썼으니.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하고 또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아이를 키우고 일하느라 정신없이 보냈을 때는 잘 몰랐어요. 집이라는 곳이 이렇게 무감한 곳인 줄. 어느 때부턴가 집에서의 생활이 참 기계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이라는 장소와 얽혀서 생긴 추억이 별로 없었죠. 지금의 생활이 할머니가 서랍장 위에 올라가 창밖을 보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땅에도 하늘에도 속하지 못한 이 어정쩡한 아파트에서 벗어나자, 이 무감한 도시에서 탈옥을 하자고 그때 결심하게 됐죠.


전 이미 결심이 섰는데, 문제는 아내와 아들 이었어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들은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백화점이 코앞이던 곳에서 살던 아내는 편의점 하나 없는 곳에서 살자고 하면 어떻게 반응할까? 걱정이 많았죠. 그래도 부딪쳐 보기로 했어요. 날 좋은 주말에 김밥을 사서 한강으로 갔죠. 돗자리를 펴고 앉아 김밥도 먹고 책도 보고 하다가 말을 꺼냈어요. 서울을 벗어나 단독주택에서 살면 안 되겠냐고.

아내는 생각도 못한 말을 듣고는 황당해 했고 아들은 친구랑 헤어지는 거면 싫다고 했어요. 뭐, 당연히 예상한 결과였죠. 그래도 다행인 건 아내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군요. 전혀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던 거예요.

그러다 사건이 하나 터졌어요. 정말 가족처럼 여기고 키우던 새가 있었어요. 완두라는 이름의 모란앵무인데, 새끼 때부터 애지중지하며 키웠더니 애교도 많고 입질도 하지 않던 착한 애였죠. 좁은 집 안에만 있는 것이 갑갑할 거 같아서 종종 완두랑 산책을 가곤 했어요. 멀리는 못 가고 단지를 몇 번 돌고 오는 수준이었어요. 산책을 하면서 부메랑이란 걸해요. 앵무새 키우는 사람들은 다 알 텐데, 새를 날려 보내면 둥그렇게 궤적을 그리며 날다가 다시 돌아오죠.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부메랑을 했는데, 고양이가 튀어 나와 완두를 채 가는 거예요.“


“어이구. 이걸 어째...”

할머니는 내 얘기에 완전히 빠져든 눈치였다.

“그래서요? 어떻게 됐어요?”


“정말 난데없는 일이라 처음엔 무슨 상황인가 싶었어요. 잠시 멍했다가 얼른 쫓아갔어요. 그런데 얼마나 재빠르던지, 잡을 수가 없었어요. 완두의 짹짹 소리는 들리는데, 고양이는 저만치 뛰어가고 있고. 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울음이 터지더군요. 정말 뛰면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어요. 결국 놓치고 말았죠.

그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요. 어떻게 보면 집 앞 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경비아저씨에게도 다른 주민들한테도 얘기해봐야 모두 남의 일이었어요. 왜 새를 밖에 데리고 나왔냐고 오히려 저를 타박했죠. 전 그 일이 있기 전만 해도 단지의 공지가 저만의 마당은 아닐지언정 함께 쓰는 우리의 마당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아니었어요.


그냥 그 공지는 비무장지대였던 거예요.

너나 내가 문제를 만들지 않아야 되는, 누구의 것도 아닌 불가침의 땅이었던 거죠.


마지막 남아 있던 정이 뚝 떨어졌어요. 아내는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저를 보고는 심란해 하더니 그 날 밤에 그 간 고민의 결과를 말하더군요. 처음에는 많이 당황하고 놀랐는데, 자기와 아이 앞에서 고민을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자신 보다 가족을 생각한 고민이라 믿고 싶다며, 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아내의 동의가 있고부터 바로 집을 찾기 시작했어요. 아내가 제시한 몇 가지의 조건이 있었어요. 가장 우선은 아이의 학교였죠. 걸어서 등교가 가능한 위치의 집을 찾는다. 이것이 제1의 조건이었어요. 두 번째 조건은 이왕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니 주변에 공장이나 축사, 무덤 같은 것이 없을 것. 세 번째는 집 어디에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소가 꼭 있을 것. 네 번째는 저의 출퇴근이 용이할 것. 이었어요. 아내가 제시한 조건에는 아내의 바람은 없었어요. 물론 원하는 것이 분명 있을 텐데, 아마도 가장 후순위로 두고 제게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위의 조건 만으로도 딱 맞는 집을 찾는 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겠죠. 역시 조건에 맞는 집을 찾는 건 쉽지 않더군요. 몇 달을 찾다가 지쳐갈 때 즈음, 지금의 도곡리 집을 만난 거예요.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들어맞았죠.”


“우여곡절이 많았네요. 그래도 원하던 집을 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도곡리 집에서의 생활은 어땠어요?”

할머니는 아마도 도곡리에서의 내 생활로 당신의 주택살이를 미루어 짐작해 볼 요량이었을 것이다.

“도곡리 집은 오래된 농가주택을 리모델링한 집이에요. 건물은 총 3채였는데, 집주인이 사는 건물은 개량 한옥이었어요. 돈을 많이 들여 고친 집은 아니라 어설프긴 해도 정겹고 고풍스러운 맛이 있는 집이었죠. 집주인 내외가 참 좋으신 분들이었어요. 지금 할아버지, 할머니 같이 넉넉하고 친절하신 분들이었죠. 주인댁과 너른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저희 집이 있었어요. 고치기 전에는 축사였데요. 방이 두 개가 있었고 마당을 바라보는 거실과 뒷마당을 바라보는 주방이 이어져 있었죠. 박공지붕이라 다락도 있었어요. 엄청 큰 다락이었는데, 지붕에 천창이 있어서 별을 보기에 딱이었죠. 집 안에서 하늘을 보고 별도 볼 수 있다는 것에 아들은 신나했어요. 저도 물론 신났구요. 둘이 다락에 올라가 제가 팔베개를 해주고 별을 봤어요. 주변이 다 논이고 산이니 깜깜해서 별이 정말 잘 보였죠. 아들에게 다락은 보물 같은 장소였어요.

주방에서 보이는 뒷마당은 저희 집 전용 마당이었어요. 집보다 마당이 1미터 정도 높았어요. 그래서 주방에서 창을 내다보면 뒷마당의 푸른 잔디가 눈에 들어왔죠. 낮게 핀 들꽃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마당을 비껴서 별채가 있었어요. 집과 별채가 마당을 두고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었죠. 별채는 방앗간이었데요. 별채는 집주인이 정말로 돈이 없었던지 별로 손을 대지 않았어요. 단열도 되어 있지 않았고 창문으로는 찬바람이 거침없이 들어왔어요. 그래도 다행인건 안에 화목난로가 있었어요. 주물로 만든 꽤 멋지고 듬직한 난로였는데, 상단에는 고구마를 넣을 수 있는 서랍도 있었죠. 겨울에는 온 가족이 캠핑을 간 듯 별채에 모여 고구마도 구워 먹고 침낭 안에서 함께 잤어요. 정말 추워서 서로 꼭 껴안고 잤는데, 그때의 아내와 아이에게 느꼈던 따뜻한 체온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어요.


포도와의 추억을 얘기하려고 시작했는데 서두가 너무 길었죠. 포도는 도곡리로 이사를 간지 얼마 안 되서 만났어요. 도곡리에서 맞는 첫 눈이 내리던 밤이었어요. 참 오랜만이었어요. 손에 잡힐 듯 내리는 눈을 보는 것이. 너무 반가워서 얼른 뒷마당으로 나갔죠. 10평 남짓 마당에 소복하게 눈이 쌓이고 있었어요. 밤은 이미 깊어 사위는 고요하고 바람도 한 점 불지 않았는데, 이건 마치 눈 내리는 무성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어요. 저에겐 정말 경이로웠어요. 제가 경험한 도시의 밤은 무례하고 신경질 적이었거든요. 예고 없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따질 길 없는 오토바이의 질주, 고함을 유발하는 무례한 비명들... 도시의 밤은 정신병 걸린 밤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완벽한 고요를 마주하니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고요함에 몰입하고 있는데 어디서 작은 소리가 들리데요. 이건 무슨 소릴까 귀를 기울이는데, 아~ 눈이 내리는 소리였어요. 눈이 내릴 때 소리가 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갈피없이 내리는 눈송이가 서로 부딪쳐 나는 소리를 신기해하며 듣고 있는데, 포도나무 아래에 뭔가 반짝이는 게 있는 거예요. 앙상한 가지에 등을 기댄 작고 귀여운 것이 눈을 껌뻑이고 있었는데, 그게 포도였어요. 포도나무 아래에서 발견했다고 나중에 포도라고 이름을 붙여줬죠.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새끼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계속보고 있는데, 가까이 가도 저를 경계하지 않더군요. 오히려 살금살금 저에게 다가오는 거예요. 아내를 급하게 불렀죠. 아내가 무슨 일이냐며 문을 열고나오니 고양이가 나무 뒤로 피하더군요. 저는 고양이가 낯설지 않았어요. 그만큼 작은 고양이를 이사 오기 전에 본 적이 있었거든요. 자동차 보닛 안에 갇혀 있던 고양이를 꺼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봤던 고양이랑 많이 닮았었어요. 왜 보닛 안에 고양이가 있었냐고요? 아마 날이 추워서 들어갔었나 봐요. 그때 그 아이가 눈에 밟혔는데, 똑같이 생긴 아이가 눈앞에 있으니 관심이 갈 밖에요.

아내에게 “저 아이가 뭔가 기대하는 게 있어서 우리 집 마당에 온 거 아닐까?”

얘기하니, 뭔가 의심하는 눈으로 저를 보는 거예요. 근처에 어미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가까이 가지 말고 먹을 거나 주라고 하면서, 저 아이를 혹여 키우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덧붙이더군요. 저도 덜컥 이 아이를 거둘 자신도 생각도 없어서 그날은 밥하고 우유를 챙겨서 먹이고 집으로 들어갔죠. 그런데 들어가면서도 왠지 그 아이는 계속 거기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뒷마당으로 나갔어요.

아! 하고 탄성을 질렀죠. 소복하게 쌓인 눈이 만든 원시의 풍경.

아파트에서 탈옥을 하니 눈(雪)이 그 자유로움을 눈(目)으로 확인시켜주는 듯 했어요.

크게 기지개를 켜고 눈으로 고양이를 찾았죠. 포도나무 아래를 살폈는데, 안 보이는 거예요. 좀 서운하데요. 그러다 ㅋㅋㅋ 웃음이 나왔어요. 최초의 눈에 흔적을 남긴 친구가 있었죠. 작은 발자국이 마당을 가로지르고 이어졌는데, 툇마루 아래에서 끊겼더군요. 고개를 숙이고 툇마루 아래를 보니 거기에 고양이가 저를 빤히 보고 있는 거예요. 어찌나 귀엽던지. 가서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아내한테 혼날까봐 겨우 참았어요. 밤새 많이 춥고 힘들었는지 얼굴이 푸석해보였어요. 아니 원래 그랬는데, 밤이어서 못 본 것일 수도 있어요. 아내한테 먹다 남은 닭고기를 데워달라고 해서 별채 문을 반쯤 열고 그 안에 넣어 놨어요. 별채는 우리도 잘 가지 않는 곳이니 편하게 몸을 녹이고 가라는 뜻으로 잠시 허락을 해준 거죠.

자리를 비켜주고 집 안에서 아내와 창문으로 지켜보니 슬그머니 툇마루에서 나온 고양이가 별채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어요. 아내는 길고양이이니 잠시 쉬다가 떠날 거라고 했어요. 전 아닐 거 같다고 했죠. 만약에 저 아이가 우리 집에 눌러 앉으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아내한테 물으니, 아내는 난감해 하더군요. 고양이는 아내의 반려 리스트에는 없었거든요.


뒷마당의 눈은 감상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두고 집 앞의 눈을 치웠어요.

눈으로 보는 눈은 즐거웠는데, 치우는 눈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더군요. 성인이 되고 아파트에 살면서 눈을 치웠던 기억이 없어요. 그 많은 눈을 누가 치웠을까? 내 집 마당이라 여기고 살았다면 주민들이 함께 십시일반 손을 보탰을 텐데, 결국은 아파트가 직장인 관리인들이 심드렁하게 눈을 치웠겠죠. 집 앞부터 골목 어귀까지 눈을 쓸어 나가고 있는데, 마침 골목 끝 집에서 우리 쪽으로 눈을 쓸고 오는 아주머니랑 맞닥뜨렸어요.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였는데, 옆에는 까만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면서 촐싹거리고 있었죠. 집주인 말고는 처음 마주치는 동네 분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눴어요. 대뜸 옆에 있는 까만 강아지 이야기부터 꺼내시는 거예요. 집 앞에서 알짱거리는 유기견이었는데 하도 불쌍하게 생겨서 거두고 키운다고 하더군요. 그 아이 말고도 집에 두 마리가 더 있다고 하는 거예요. 아주머니 말씀이 이 곳이 도시와 가까운데 숲이 있고 한갓져서 강아지 유기를 많이 한다고 쯧쯧 혀를 차시며, 사람들이 참 모질다고 한숨을 내쉬셨죠. 그러고는 우리의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를 이어가셨어요. 아주머니의 옆집에 비닐하우스를 개조해서 살고 계시는 아저씨가 계시데요. 저희도 슬쩍 그 집을 살펴보니 사람이 살기에는 많이 어설퍼 보이는 비닐하우스였어요. 검은 망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안은 도통 어떤지 알 수가 없었어요. 비닐하우스 앞에는 낮은 담이 쳐진 작은 마당이 있었고 누가 보면 주류도매업소라고 해도 될 만큼 소주병이 엄청 쌓여 있었어요. 아주머니는 거기 사는 사람이 하루도 취하지 않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매일 화난 것 같은 표정에 말씀도 없으셔서 옆에 살기 무섭다고 하시더군요. 아저씨 말고는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혼자 살고 있는 건 같은데, 무슨 일을 하는지는 도통 모르겠다고 하니 저희도 은근 걱정이 됐어요.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근처에 뭔가 수상한 이가 살고 있다는 게 영 께름칙했거든요. 그런데 이 아저씨에게 특이한 버릇이 있었데요. 가끔 집에 돌아올 때 보면 손에 뭔가를 들고 왔데요. 아주머니도 밤에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손에 들린 것이 꼼지락 대고 있어서 정말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구요. 알고 보니 까만 강아지였데요. 어린 새끼였는데, 왜 보통은 그런 새끼들을 데리고 다닐 때 품에 안잖아요. 근데 그 아저씨는 강아지 뒷덜미를 잡고 덜렁덜렁 들고 오더래요.


다음날 슬쩍 마당을 들여다보니 까만 강아지 혼자 마당에 있는데, 밥그릇도 물그릇도 보이지 않더래요. 그래서 집에 있던 사료하고 물을 마당 안에 넣어줬는데, 그날 밤에 아저씨가 술에 취해 찾아와 자기 집 일에는 상관 말라며 화를 내고 갔데요. 그래서 신경을 끊고 지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집 마당을 들여다보니 낯선 강아지만 보이고 까만 아이는 없었데요. 그리고 종종 강아지 들이 바뀌었데요. 먹이도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아서 도망간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보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집에는 강아지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얘기를 듣다보니 저도 참 이상했어요. 그냥 주사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잖아요. 사는 게 정말로 외로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강아지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무책임하거나 왜곡된 욕망에 기인한 것이니 잘못된 행동임이 분명했죠.


그러다 며칠 전이었데요. 밤에 강아지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집 앞에서 아저씨를 마주쳤데요. 이번에는 양 손에 두 마리를 들고 비틀비틀 걷는데, 자세히 보니 이번에는 고양이었데요. 노란 고양이 두 마리가 손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이 놈들은 성질이 보통이 아니어서 하악질을 하고 발톱을 세우고 허우적대서 아저씨가 애를 먹는 게 눈에 보이더래요. 다음 날 궁금해서 마당을 살피니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았데요. 그런데 어젯밤, 강아지들이 하도 짖어서 나가보니 새끼 고양이가 마당에 앉아 자기를 빤히 보고 있더래요. 아주머니는 단박에 손에 들려있던 두 놈 중 하나일거라고 직감했죠. 아저씨가 잘 몰랐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고양이는 강아지와 달라서 마당에 가둬 뒀다고 가둔 것이 아니라는 걸.

아주머니는 당장에 그 아이를 거두기로 결정했데요. 아저씨에게 돌려줘 봤자 그 아이에겐 좋은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에.

아주머니가 아내의 옷깃을 잡고 마당으로 이끌었어요. 집 안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우리를 보고 시끄럽게 짖어 댔고 마당 귀퉁이 장독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어요. 아내와 난 서로 바라보고 웃었죠. 조금 못난 포도였어요. 몸집이나 얼굴이 지금 별채 안에 있는 고양이와 너무 닮은 거예요.

아주머니는 그 아이의 이름을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날에 만났다고 해서 ‘보름’이라고 지어 줬데요.

길 위의 눈을 다 치우고는 우리도 별채에 있는 고양이를 보러 갔어요. 별채 문을 여니 밥그릇 옆에 앉아 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서 저한테 다가오더니 머리를 비비더군요. 경계가 전혀 없어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내와 저는 아주머니가 했던 대로 처음 만났던 상황의 특징을 생각해 ‘포도’라고 이름을 지어줬어요. 아내도 그 아저씨에게 돌려보내는 것은 아니다 싶어 받아들였지만 집 안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었어요. 뒷마당과 별채까지만 포도의 영역으로 허용하고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은 절대 안된다가 아내와의 약속이었죠. 저도 그런 편이 우리나 포도에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고 포도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했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포도와 우리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됐죠.


겨울에 포도는 주로 별채에 있었어요. 아내가 아침, 저녁으로 사료를 챙겨줬죠. 저는 퇴근을 하면 가족과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 밤에 별채로 넘어 갔어요. 별채는 단열이 시원찮아서 한낮에도 추웠어요. 거기에 자유롭게 밖으로 나다닐 수 있게 문을 열어 놔서 더 추웠죠. 밤에는 별채의 문을 닫고 화목난로에 불을 지폈어요. 팔뚝만한 장작 서너 개면 두세 시간은 따뜻했죠. 별채에 불을 피우는 건 포도의 몸을 녹여줄 의도였지만 저를 위한 것이기도 했어요. 불을 피우는 건 마치 의식 같았어요. 하루를 일이라는 채에 거르고 남은 찌꺼기 같은 상념들을 태우는 일종의 화형식이었죠. 화목난로의 동그란 유리창으로 이글이글 타는 장작을 보고 있으면,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와 내일도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어요. 제가 그렇게 불을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포도도 제 옆에서 화목난로의 불빛을 바라봤어요.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 어떤 때는 말보다 옆에 가만히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잖아요. 포도가 그랬어요. 같이 불을 바라볼 때는 야옹 하지도 않고 조용히 옆에 있어줬죠. 때로는 화목난로에 고구마를 구워서 서로 나눠 먹기도 했고요. 어떤 때는 본채로 가지 않고 별채에서 포도와 밤을 보낸 적도 있어요. 물론 아내한테 지지리 궁상이라고 핀잔을 들었죠. 핀잔을 들어도 별채에서 지내는 시간이 제게는 정말 귀했어요. 사는 집과는 불과 열 걸음 정도의 물리적 거리였지만 그 안에 있으면, 숲 깊은 암자에라도 와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고독하다고 할까? 외로운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어요. 은근 달콤했죠. 이 고독은 제가 불러 맞는 자발적인 것이었어요. 제 스스로 자발적인 고독에 몰입하면, 외부 세계와 나는 하나인 것처럼 느껴져요.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이 제 손등에 떨어지면 피부에 미묘한 온도의 차이가 감지되는데, 나뭇잎과 햇빛과 내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개구리 울음에 새가 화음을 얹고 제가 콧소리로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세상과 내가 함께 부르는 음악이 되죠.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 이게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영성’ 아닌가 싶어요.

도곡리에서 맞는 첫 봄은 축제였어요. 땅에서 온갖 것들이 올라오고 마당의 매실나무는 하얀 꽃을 피웠어요. 집 앞의 논두렁에는 냉이와 돌미나리가 지천이었어요. 냉이가 뭔지 돌미나리가 뭔지도 몰랐는데, 주인댁 교수님이 하나하나 알려 주시면서 그러시데요.

“즐기세요.”

말씀 그대로 정말 즐길 거리가 지천이었어요. 냉이로는 국을 끓이고 돌미나리로 전을 부쳐 막걸리를 마셨죠.

포도는 뒷마당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어요. 제가 별채에 함께 있지 않으면, 대부분을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별채의 툇마루에는 볕이 잘 들었는데, 그 위에 낮고 입이 넓은 항아리가 있었어요. 아파트에 살 때 수경식물을 키우던 항아리를 예뻐서 가지고 왔죠. 포도는 그 항아리를 집으로 삼았어요. 전 항아리에 푹신한 담요를 깔아 줬죠.

저의 불장난은 화목난로에서 마당의 드럼통으로 옮겨졌어요. 이사 올 때부터 마당 한쪽에는 드럼통을 반으로 자른 화로가 놓여 있었고 주변으로 통나무가 의자처럼 자리하고 있었어요. 드럼통은 널찍해서 뭐든 태우기 좋았어요. 집에서 나오는 종이 쓰레기, 뒷산에서 주워온 나무를 통나무 의자에 앉아 태웠죠. 포도는 그 옆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다가 나비를 쫓다가 항아리에서 잠을 자기도 했어요.


봄이 깊어지니 축제는 절정으로 치달았어요. 집 안부터 온 동네가 난리였죠. 뒷산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옆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어요. 포도는 밭을 갈고 검은 비닐을 씌울 때도 옆에 있었죠. 일부러 포도를 그곳으로 불렀어요. 포도가 화장실로 삼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일석이조잖아요. 포도는 생활공간 밖에 화장실이 생겨서 좋고 저는 거름이 생겨서 좋구요.

여름부터 가을까지 먹을 채소를 심었어요. 상추, 쑥갓,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등등. 텃밭이라면 연상되는 채소는 몽땅 심었어요. 처음이라 욕심이 컸죠.

산과 들에는 먹을 것, 볼 것이 넘쳐 났어요. 우리는 채집의 즐거움에 완전히 빠져 버렸죠. 산을 크게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하면, 산딸기, 뱀딸기, 보리수, 살구, 앵두를 한 아름 따서 왔어요. 이 때가 사계절 중에 산책을 가장 많이 하는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틈만 나면 산책을 나가니 어느 날은 포도가 우리를 따라 나서는 거예요. 고양이는 산책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저러다 말겠지 했어요. 그런데 한 시간의 산책을 끝까지 함께 했어요. 우리와 조금 거리를 두고 뒤에서 따라오다가 산딸기를 따느라 정신이 팔려있으면, 포도는 풀 위의 곤충을 따라 이리저리 뛰어 다녔어요. 그러다 다시 길을 나서면 포도도 뒤를 따랐죠. 묘한 긴장과 느슨함이 공존하는 산책이었어요. 그날 이후로 산책할 때는 늘 포도와 함께였죠.

아내가 들꽃을 꺾어 포도 귀에 꽂아 주기도 하고 포도는 열매가 많이 달린 나무 위로 올라가 딴청을 부리며 은근하게 알려주기도 했어요. 지나고 보니 참 귀한 경험이었던 거 같아요.

채집해온 열매로 청과 술을 담갔어요. 마당에서 딴 매실은 잘 씻어 말리고 예쁜 장독에 설탕과 켜켜이 쌓아서 청을 담갔어요. 장독의 입구는 모기장으로 막고 그늘에다 두었죠. 살구는 따오는 족족 먹어버렸고 보리수와 앵두, 버찌는 술을 담갔어요. 투명하고 예쁜 병에다 저희 사무실 스티커를 붙여서 한 병 씩 정성을 들여 술을 담갔죠. 나중에 건축주한테 한 병씩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정말로 효과가 좋았어요. 다들 좋아하시더군요.


여름에 들어서니 잡일이 많아졌어요.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의 가지도 쳐줘야 했고 야생화의 꽃대도 잘라줘야 했어요. 무엇보다 가장 큰 일은 잔디를 깎는 일이었어요. 2~3주만 지나도 무성해지니 주말에는 잔디를 깎고 잡초를 뽑느라 다른 일은 생각도 못할 지경이었죠. 여름이 무르익은 어느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잔디를 깎고 있었어요. 수동이라 정말 빡세게 밀어야 해서 몰입하다가 어느새 말벌한테 되게 쏘였어요. 벌한테 쏘인 적 없으시죠? 꿀벌이 아니라 말벌한테 쏘이면 진짜로 아파요. 불에 타는 듯 화끈거리다가 물린 자리가 점점 커져요. 혹부리 영감처럼 혹은 말도 안 되게 커지고 아픔도 가라앉지 않고 점점 커지죠. 잔디밭에 주저앉아서 끙끙 거리니 포도가 와서 부은 곳을 핥아 줬어요. 까칠한 포도의 혀가 닿으니 저도 소스라치게 아파서 포도를 밀쳐냈죠. 그날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하루를 꼬박 병원에 있다가 나왔더니 뒷마당이 무섭더라구요. 포도가 주방 창에 앉아서 나오라고 그렇게 애원해도 나갈 수 없었어요. 제가 처음 겪은 자연의 공포였거든요.

아내가 포도의 일상을 얘기해주는데 폴짝폴짝 뛰면서 뭔가를 열심히 잡고 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못 놀아주니 뭔가 놀 거리를 찾고 있나보다 생각했죠.

여름이 가는 끝에 매실청이 궁금했어요. 이제 어느 정도 잘 삭았겠지 싶어서 가보니 좀 당황스럽더라구요. 제가 살피지 않은 탓이겠지만 모기장이 여기저기 뚫려 있는 거예요. 올해 청은 망했으려나 하고 들여다보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말벌이 그 안에서 죽어 있는 거예요. 말벌의 사체와 진득한 청이 하나가 되어 있더군요. 처음엔 망쳤다 생각이 들었고 상황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선 횡재라고 생각하게 됐죠. 억지로 만들어도 되기 힘든 상황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그것이 정말 희귀한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좀 억지스럽지만 이 상황을 포도의 복수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저를 공격한 말벌에 대한 복수. 좀 웃기죠? 그래도 그때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랑하는 아빠를 위한 효심 같은 거라고. 제가 무심해도 포도는 아빠를 기쁘게 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하고 있었다는 망상에 포도를 더 예뻐하게 됐죠.


가을까지 이어진 산책에 오히려 포도는 산책을 가지 않으면 조바심을 냈어요. 희한한 고양이죠. 우리는 도토리를 마지막으로 수렵의 매력을 다한 숲을 가지 않게 됐어요. 춥기도 했고 볼 것도 없고 줏을 것도 없으니. 포도와의 조우도 줄었죠. 그게 문제였을까요.

포도가 어느 날 보이지 않는 거예요. 아내가 아침부터 보이지 않더라고 얘기했을 때 그러려니 했어요. 경계 없는 집에 살다보니 하루 이틀 안 보이는 때가 가끔 있었거든요. 그러다 이틀이 지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죠. 진짜 집을 나간 걸까? 한참 신나게 놀다보니 이제 이 집이 답답해서 탈출한 걸까? 이런저런 걱정이 생겼어요. 진짜 떠나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은 저보다 아내가 더 컸던 거 같아요. 전 아내가 그럴 줄은 몰랐어요. 집에 들이지 않고 덤덤하게 살자고 한 것이 아내인데, 포도가 사라지니 온통 포도 걱정인 거예요. 삼일 째가 되니 아내가 찾으러 나섰어요. 동네에 수소문을 하고 다니는데 종적을 못 찾겠는 거예요. 저도 그때부터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어요. 다음 날이 때마침 휴일이라 아내랑 아침부터 포도를 찾기로 작정했죠. 그때 좀 황당했어요. 아내가 포도의 집이었던 항아리를 들고 나서는 거예요.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우리가 산책했던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포도의 이름을 불렀어요. 누가 보면 미친 여자라고 했을 거예요. 굳이 그러지 말라고 말려도 소용없었어요. 아내는 포도와 우리가 쌓은 시간은 눈으로 보낸 세월이 아니라 서로의 냄새로 익숙해졌던 시간이라고 하더군요. 포도와 산책했던 길을 거의 다 돌았을 무렵 우리 둘은 거의 자포자기가 되었어요. 이렇게 찾아 헤매도 없으면 포도는 이미 이 동네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터덜터덜 집으로 오는데, 동네 어귀 어느 집 지붕에 고양이가 올라와 있는 게 보이는 거예요. 목줄이 당겨서 몸은 지붕위에 있는데 머리는 처마 쪽에 있었어요. 하도 이상한 광경이라 가까이 가보니 포도였어요. 포도가 목에 빨간 리본을 두른 채 목줄을 하고 낑낑대며 지붕에 올라가 버티고 서 있는 거예요. 우리를 보더니 지붕에서 뛰어 내려와 우리 쪽으로 오려고 애쓰며 울었어요. 아내도 다가가 마주 안고 울더군요. 그러더니 미친 여자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집주인 나오라고. 어떤 사람인데 우리 애를 유괴하느냐고. 집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나오는데, 화를 내는 아내를 보더니 겁부터 먹었어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자기는 유기 묘인 줄 알았데요. 너무 예쁘게 생기기도 했고 붙임성도 좋아서 자기가 키우려고 했다고, 주인이 있는 고양이인줄 몰랐다고 하면서 머리를 연신 주억거렸어요. 아내가 목줄은 왜 했냐고 따지니 정들 때까지 붙들어 두고 싶어서 그랬데요. 동네 분이라 더 시끄럽게 하는 것도 민망해서 포도를 데리고 왔죠. 목에 두른 리본도 떼어 버리고 항아리에 넣어서 아내가 이고 돌아왔어요. 이 때부터 포도는 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다음 해 봄이 오고 산책을 가도 따라오지 않았죠. 후유증이 오래 남아서 우리는 많이 아쉬웠어요.


포도와 사계절을 보내고 이듬해에는 포도도 완전히 성묘가 돼서 온 마당을 헤집고 다녔어요. 포도에게는 완벽한 자연의 놀이터였죠. 보통은 레이저포인터나 깃털이 달린 낚시대로 고양이와 놀아주잖아요. 그런데 포도는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마당에 날아오는 참새나 까투리를 노리고 이리저리 뛰어 다녔죠. 포도의 놀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냥으로 변해갔어요. 울창한 포도나무에 몸을 숨겼다가 날아오는 참새를 낚아채서 입으로 꽉 물었다가 땅으로 내동댕이쳤어요. 참새를 향해 날아오를 때의 맹수 같은 모습이 낯설었어요. 우리에게는 순하고 애교가 많은 아이였을 뿐인데. 포도는 참새를 먹으려고 잡지 않았어요. 그저 놀잇감이었죠. 잡은 참새를 위로 던졌다 다시 낚아채고 다시 던지고를 반복했어요. 그러는 와중에 참새는 죽어버렸고 너덜너덜해졌죠.

여름이었나? 휴일에 아내가 텃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거예요. 마당 캠핑의자에 앉아 포도와 놀고 있던 저는 놀라서 뛰어갔죠. 아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아내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더군요. 땅과 구분이 잘 가지는 않았지만 그건 분명 뱀이었어요. 저도 뱀을 보는 순간 몸이 얼어버렸죠. 그때 뒤에 있던 포도가 뱀에게 살금살금 다가가는 거예요. 우리는 위험하다고 소리를 질러댔어요. 말리고 싶어도 우리 둘 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요. 포도는 머리를 쳐드는 뱀에게 하악질을 하면서 노려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재빨리 날아서 뱀의 목을 콱 물어버렸죠. 뱀은 몸을 꿈틀거리고 포도는 목을 문채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어요. 뱀의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포도는 머리를 절대 놓지 않았어요. 결국 전투에서 포도가 승리했죠. 전리품을 내려놓고 우리에게 와서 머리를 비볐어요. 다시 순하고 착한 아이로 돌아온 포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린 칭찬을 해줬어요. 그때는 죄 없는 뱀을 물어 죽였다는 사실보다 우리를 위험에서 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컸어요.

그런데, 이게 문제였어요.


칭찬의 각인이 특별했던지 그 사건이후 포도는 어마어마한 짓을 벌였어요. 어느 날 아침에 뒷마당으로 연결된 문을 열었는데, 문 앞에 죽은 뱀이 놓여 있는 거예요.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던지. 아내가 보고 놀랄까봐 얼른 뒷산에다 버리고 왔죠. 그 일은 아내에게 비밀로 했어요. 분명 포도의 짓일 텐데 망나니 같은 행실 때문에 포도에게 실망을 할까 싶었죠. 그런데 얼마 후에 아내도 알게 됐어요. 문 앞에 포도가 또 뱀을 물어다 놓은 거예요. 그날 밤 문제아 포도를 놓고 아내와 대책을 논의했어요. 일단 우리 잘못이 크다, 포도를 칭찬하면 안됐었다, 이제 와서 그런 얘기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우리도 걱정이지만 아들이 보면 큰일이다, 겨우 전원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는 아이가 정 떨어질 일이다 등등. 이렇게 진지하게 아내와 오랜 시간 대화했던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결국 아내와 난, 결론을 내렸어요. 이대로 포도를 방치하면 피가 낭자한 살육을 끝없이 저지를 것이니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포도의 장소를 옮기는 것으로요. 때마침 제 사무실을 양수리로 옮기고 난 후였거든요. 양수리 사무실에는 널찍한 베란다도 있고 나도 있고 직원들도 함께이니 오히려 집보다 덜 외로울 거라는 생각에 그렇게 결정했죠.


그런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그런 결정을 하지 않은 편이 좋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기도 해요. 얘기가 너무 길었죠?”


턱을 괴고 듣던 할머니는 자세를 고치고 크게 숨을 내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장님께서 우리 집을 맡아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세요?” 물으니 그 답을 할아버지가 하셨다.


“소장님이 포도와 함께 했던 도곡리의 사계절에 저희도 함께였던 기분이 들었어요. 우리의 별채도 소장님이 자발적으로 불러 맞았던 고독의 장소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어요. 우리 집의 사계절이 도곡리의 계절만큼 아름답고 즐거울 거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무엇보다 그 한 가운데에 있었던 소장님이 여기 계시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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