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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 J Oct 06. 2022

허세 정도는 이해합니다

고전 음악의 역할, 죽지 않을 권리를 전할 의무

새로 자리 잡은 학교는 꽤 규모가 크다. 나는 패컬티와 학생, 5개나 있는 합창단들의 연주들 중 많은 부분이 나를 필요로 하는 포지션에 있다.


첫 출근을 한 날은 이미 이 학교가 개강 3주째를 맞는 시점이었고, 내가 맡은 한 합창단에서는 매우 심도 있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 준비 중이었다.

Craig Hella Johnson의 “Considering Matthew Shepard/매튜 쉐퍼드를 기리며”

악보를 전해 받고 작품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1998년, 와이오밍 대학 정치학과 학생이었던 매튜 쉐퍼드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는 심한 구타와 학대를 당한 후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펜스에 묶여졌다. 10시간 이상 방치된 끝에 발견되었지만, 수술 닷새 후 죽음에 이른다.  

이 사건은 미디어에서 크게 다뤄지며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사건 10년이 지난 후에야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관련 법안이 정착되었다 한다.


“Considering Matthew Shepard”는 이 사건에 기반한 수난곡의 성격을 띤 작품이다.

한 시간이 훌쩍 넘는 플레잉타임 동안 여러 장르와 여러 기법을 넘나든다.

바하의 평균율 1번으로 오프닝을 연 후, 고전주의, 가스펠, 포크뮤직, 일렉트릭, 미니멀리즘 등 수많은 장르와 기법을 아우른다. 합창단이 입을 꾹 다물고 피아니스트와 내레이터만으로 작품을 진행시키는 부분도 꽤 많아서, 나도 집중의 시간이 좀 필요하다.


콰이어 디렉터는 처음부터 ‘나는 콰이어 디렉터요, 그러므로 적어도 그에 걸맞은 친절함을 장착하였소’라는 전형적인 친절함과 약간의 허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풋 하고 웃음이 나는 정도, 밉지는 않은 그런 허세.

그는 내가 수업에 참여한 첫날,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 원했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본인과 나의 생각이 일치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합창단과 지휘자, 피아니스트, 객원 연주자들 모두 이 작품을 그저 공연하는 곡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교감과 공유의 매개체로 바라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 뒤에 덧붙인 말이 흥미로웠다.


“옳고 그름, 맞고 틀리고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 아닙니다. 작곡가가 Considering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보았어요. 학생들 중에는 동성애자라는 대상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이 학생들에게 지휘자 개인인 나의 시각과 생각을 주입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다만 적어도 매튜는 다른 걸 모두 떠나서 목숨을 함부로 잃지 않을 권리는 있었다는 것, 그 정의는 이 음악을 통해 전해졌으면 해요. 합창단원들에게뿐 아니라, 우리 공연을 찾을 관객들에게도 말이에요. 작곡가가 이 작품에 이렇게까지 많은 기법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출근 첫날이었다.

무너져 가는 아파트와, 여기까지 왔는데 또 남편과 떨어져 살아야 되는 난감함이 피부를 뚫고 장기 어딘가를 찌를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건 몹시 잘못된 결정이었나 보다, 넋 놓고 괴로운 와중 그와 나눈 이 대화는 적어도 그날 어치의 난감함을 모두 잊게 했다. 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서 조차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그의 허세 따위도 역시 속으로 조금 피식거려주기는 했으나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 한가롭게 음악  때인가 라는 모욕을 당하기도 했고, 학과평가를 위하여 전문성과 진실성을 내던지고 어떻게든 교과 축소를 해야만 했고, 축소된 교과 안에서 어떻게든 교육의 질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게 하려고  과목  과목을 연계할 방법을  순간 찾아야 했던 지난  , 그렇게 애를 써도 학생들에게도 학교에게도  마음이 그다지 닿는  같지 않아 외롭고 괴로웠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열악한 교육 환경에, 다른 환경 좋은 음대 교수들보다도 오히려 치열하게 생각했던 ‘음악의 역할’ 그리고 ‘대학 음악교육의 역할’  


이 지휘자는 음악의 역할에 대해 한마디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본인의 자리에서 본능적으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나에게 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을 얼굴이 벌개질 때까지 이야기 하는 순수함을 보며, ‘음악에 대한 사랑’이라는 불변의 기본 값이 ‘음악의 역할’을 학생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의 무의식에 작용하고 있는 것임이 전해져 왔다. 만난 지 두 시간 만에 받은 인상이라 강한 확신이 있을 리는 없었지만, 이런 나의 짐작이 만약 틀렸다면 굉장히 아쉬울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적어도 그가 제 할 일을 할 수 없게 주저 앉히는 대학 시스템으로부터의 방해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가 속한 조직에서 이해받고 있다. 부러웠다.


음악은 실용적인 분야가 아니다. 실용이 아닌 다른 것에 기여한다. 이는 약점이 아니다. 이 분야의 성격이다.

극단적으로, 순수예술을 하며 그 예술하는 행위로부터 돈이 벌리는 예술가도 극히 드물다.

나같은 음악대학 교수도 예술가로 분류되지만, 예술의 행위로부터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가르치는 행위로부터 돈을 번다.


순수예술에서의 음악은 사람 마음을 보다 깊숙이 건드릴 수 있는 힘이 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마음을 두드리고 어루만지다가, 결국은 경이로운 절대적 아름다움 앞에 나를 세워놓고 내 존재의 한없이 작음을 자각하게 한다. 그 아름다움은 희노애락의 극한을 포함하며, 세상 속된 것이 줄 수 없고, 말로 잘 표현될 수 없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한다. 예술을 수용하는 사람에게 어떤 층위에서든 그 순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예술가의 할 일이다. 그 경험치가 쌓인 사람이 세상에 나가서 하는 일, 그런 것을 아예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세상에 나가서 하는 일은 분명 다를 것이다. 예술적 소양이 어떤 한 사람의 부분으로 안착되면, 그것이 그 사람이 지닌 다른 이성적 소양들과 맞물려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개인의 인생에 큰 결정을 할 때,

속해 있는 조직을 위해 무언가를 논의할 때,

나라를 위해 중차대한 선거를 할 때,

윗 세대를 향해 직언할 때,

다음 세대를 위해 조언할 때,

이럴 때 말이다.


한 개인들이 무엇을 결정할 때 그들의 예술적 사고가 미미한 영향력이라도 가져왔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덜 흉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서 예술은 시절 좋을 때만 향유하는 잉여의 것일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술의 역할이 단순히 고단한 세상에 대한 위로에 그친다고만 볼 수가 없다.


‘돈을 벌지 못함, 세상 실용과 실효에 쓸데가 없음’이라는 이유로, 사람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 안에서 온갖 멸시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도 돈 벌 수 있다, 우리도 최첨단 시대에 대한 자각이 있다, 우리도 시대에 발맞출 수 있다, 봐라 AI랑 같이 연주도 한다’, 나는 기반없이 성급한 이런  방향으로의 항변이 항상 걱정스럽다. 음악으로 돈을 벌고, 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노력 또한 필요하지만, 이것이 본질의 파악 없이 논의 되면 위험한 범주의 것이된다.  



이 지휘자와 거의 4-50분 긴 이야기를 나눈 끝에, 이 사람도 나처럼 텍사스에서 공부했다는 걸 알았다. 그런 걸 알아가다 보니 늦둥이 막내 동생뻘의 나이라는 것도 짐작으로 알게 되었다. 학생들 앞에서 주워 챙기는 카리스마가 어쩐지 내 눈에 뭔가 어색하다 했다. 어린 사람이다.

그러나 허세가 좀 있으면 어떤가?

본질을 알고 진심을 장착한 상태에서의 젊은 허세는, 금괴 가득한 금고를 언제라도 열 수 있는 열쇠 끝자락에 달린 장식 같은 것이리라 이해해본다. 그 불필요한 장식이 있든 없든, 금고는 열리게 되어 있다.

내 마음을 들키지 않을 정도의 스킬은 이미 나에게도 장착이 되어있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의 진심을 파악했고 마땅히 존중한다.

Dr. S! 당신 공연의 의미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나도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다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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