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것
아버님이 오시고 세 식구가 된 지 이제 곧 한 달이 되어간다.
아직 적응기라 ‘아 어떡하지’ 싶을 때가 물론 있지만, ‘아버님 다녀오겠습니다’ 라든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때가 좋다. 말수 자체가 없어지셔 예전처럼 보는 사람을 무방비로 미소 짓게 만들던 순수한 언변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게 슬프고 가끔 힘들다. 그래도 의사의 말대로 노인이 되면 누구나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려 한다.
나는 오래 혼자 살았다.
유학 2년 차 시절부터 귀국해서 결혼 전까지, 그리고 결혼 후에도 혼자 살았던 시간이 훨씬 길다.
그러다 방학 때마다 둘이 되면, 우리 둘 다 이해할 수 없던 것이 있다.
각자 만들어내던 생활 쓰레기의 양 - 둘이 살 때면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왜 네 다섯 배가 되는 건지. 오죽하면 남편은 우리가 같이 살 때마다 ‘Life is trashing’이라고 했다. (잠깐! trash 아니고 trashing. 오해금물. 우리 삶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
아버님 오시고 나니 조금 이해가 된다.
익숙하게 가꾸어 살고 있던 내 삶의 터전에 누군가가 더해지면, 그 누군가의 1인분 몫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과 그의 삶이 섞이는 과정에서 예측을 쉽게 벗어날 만큼의 몫이 함께 온다. 쓰레기던 다른 것이던 말이다.
마치 테트리스 같다. 비슷한 듯 다른 도형들이 예상 범위 안에서 순서대로 착착 떨어져 주면 그것들을 침착하게 더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나면 에누리 없는 꽉 찬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내려오는 도형의 생김새들을 단번에 잘 읽어내지 못하거나, 쏟아지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면 임의대로 쌓인 도형들이 느슨하게 서로에게 빈틈을 허용한다. 전체 면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게임은 이렇게 구멍 난 면적이 늘어날수록 망조가 들며 곧 판이 접힌다. 삶은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오히려 서로 간 생긴 듬성하게 빈 공간을 통해 도형들이 더 잘 숨 쉴 수도 있다. 그리고 여차하면 도형들을 오리거나 공간을 다시 재배치할 수 있는 기회를 그래도 한두 번은 기대해 볼 수 있는 거 아닐까?
어차피 아무도 쓰고 있지 않던 아버님의 방, 그 방에 아버님이 안착하셨을 뿐이고, 아버님은 아래층에는 내려가실 일이 별로 없는데도 우리 집 아래층은 전혀 다른 집이 되었다.
키친과 가까이 있는 방에 머무시는 아버님을 아침에 깨울까 걱정하지 않고 커피 내리고 빵을 구울 방법을 찾으려, 아버님이 가져오신 40년 넘은 천소파에 방이 먹혀버리는 것을 해결해 보려, 그러느라 제자리에서 쫓겨난 신혼 소파 자리를 또 나름 꾸며보려, 살림살이가 빠르게 불어났다.
늘어난 살림살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아버님이 가져오신 수많은 테트리스 조각들.
그것이 물건이던, 아버님 삶의 패턴이던, 또는 내가 아직 모르고 있는 무엇이던 말이다.
단번에 그것들을 스캔해 내어 제자리에 꽉 맞게 빈틈없이 채워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제자리가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도 없다.
그저 이제 이해가 간다. 둘이 살 때 만들었던 쓰레기가 왜 두 배가 아니라 다섯 배였는지.
이해해야 할 것이 단지 쓰레기나 살림살이의 늘어남에서 그친다면 인생이 쉽겠지만 어디 그럴리가.
가장 압도적인 것은 감정과 정서의 늘어난 쓰임이다. 좋은 쪽으로 또는 거친 쪽으로 양쪽으로 늘어날 것을 예상했고 예상대로 가고 있다. 나는 어느 날은 가족이 더해졌다는 든든함에 힘이 생기고, 어느 날은 내가 어떡하면 좋겠는지 모르겠어 가슴이 막힌다.
우리 부부 두 명이 15년 살아오면서 설치한 교감 채널들에, 아버님 한 분 그 몫 이상의 채널들이 여러 개 생겨나길, 곧 우리가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을 것들을 같이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는 회로들이 충분히 더 생겨나길 기다린다.
결국에 큰 후회 없이 이 시기를 회상하게 될 때쯤, 지금보다 현명한 내가, 지금보다 현명한 부부가 되어 있기를 아버님 오신 그날부터 매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