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선물
남편이 가르치는 학생이 있다.
첫인상에 모든 곳이 동글동글한 귀여운 남자아이다. 뒤에서 조금만 비켜 보아도 얼굴에서 빵빵하게 튀어나온 볼살이 보인다. 실상은 보통의 영특함을 넘어섰는지 여덟 살인데 월반을 해서 3학년이라고 한다. 레슨을 받으러 오면서 항상 한 10분쯤 일찍 와서 우리 집 앞마당에서 뛰고 구르고 어디를 건너고 올라가고를 한참 하다가 들어온다. 처음 왔을 때, 주말 아침에 거실 통창을 지나치다가 모르는 아이가 마당에서 굴러다니는 걸 보고 식겁한 적이 있다. 피아노 치는 걸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여러 지역 콩쿨에서 줄곧 1, 2등을 받아온다고 한다.
이 아이는 우리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데, 주말마다 이 아이와 똑 닮은 젊은 엄마가 아이를 실어 나른다. 엄마는 이 아이가 다섯 살 때 이미 스타인웨이 B를 사주며 교육열을 드러냈다고 한다.
(아.. 어머니.. 그러실 필요까진 없지만 투자목적으로 볼 때는 잘하셨다 말씀드려 봅니다).
어느 날, 레슨룸에 있는 허접스런 20불짜리 테이블이 이 아이에게 작살이 났다.
남편 말로는 아이가 테이블에 팔꿈치를 놓고 꽃받침을 시도 중 갑자기 중심을 잃었고, 그 김에 테이블이 우지끈 무너졌다고 한다. 몸무게가 나보다도 더 나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8세 아이의 꽃받침이 테이블을 부술 수 있었는지 내가 직접 보지 않아 상상은 잘 안된다. 그냥 아이가 다치지 않았으니 되었다.
다행히 비싼 건 아니었고 -비쌌으면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졌을 리도 없고 - 아이와 어머니는 수없이 사과를 하고 돌아갔다.
그래 이제 좀 좋은 테이블을 들여놓을 때도 됐어. 누가 부수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라는 마음으로 금세 잊어버렸다.
다음 주에 아이 어머니가 한눈에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는 테이블을 들고 왔다.
아이가 우리 집 테이블을 해 먹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아버지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이걸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감탄할 뿐이다.
너무 마음에 든다. 가구에 금색이 들어가면 일단 질색하고 보는데, 웬일인지 테이블 다리가 금색인 것도 묘하게 마음에 든다.
단 두 가지, 테이블 상판에 조금 붉은 기가 도는 것과, 마무리 니스칠을 아이가 했다는데 표면이 약간 고르지 않은 것이 좀 눈에 띈다. 붉은 기만 없으면 여기저기 잘 어울릴 텐데, 테이블을 끌고 다니며 어디에 놓아야 가장 어울릴까 생각하다가, 원래 있어야 할 부서진 테이블 자리에 놓기로 했다. 상판 색깔을 바꾸어 볼까, 어디에 맡길까 고심했지만, 시간이 가고 보니 붉은색도 나름 괜찮아 보인다. 살짝 울퉁불퉁한 표면도 여덟 살 아이의 테이블 제작 기여도를 생각하니 그저 기특하고 정겹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그리 눈에 띄지도 않는다.
뜻밖의 선물에 내가 뛸 듯이 좋아하는 걸 보고, 미안해하던 젊은 엄마도 활짝 웃었다.
부서졌던 테이블보다 훨씬 넓고, 이것저것 펼쳐놓아도 자리가 남아서 좋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만들어서 선물해 주었다는 사연 있는 물건이라 좋다. 아이가 다시 꽃받침을 하고 재주를 넘는다 해도 부서지지 않을 것 같다.
문화, 타인에 대한 신뢰도, 그리고 대학 교수의 레슨에 대한 법이 다른 한국에서는 마주할 일이 없던 어린 학생, 젊은 엄마, 그리고 그녀의 선물.
한국에서였다면 절대 받지 않았을 테이블을 기쁘고 고맙게 받았다. 아무도 이 테이블에 그 아이 엄마의 미안한 마음과 나의 고마운 마음 외 다른 것이 끼어들 거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 것 같다. 이 테이블을 볼 때마다 묵직한 안정감이 든다.
얼마나 오래 쓰며 손때를 묻히게 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