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은 외로움과의 싸움
1월의 영국은 춥다.
그리고, 영국의 겨울은 한파로 고생하던 한국의 12월이 오히려 그리워지던, 으슬으슬하고 기분 나쁜 추위였다. 사람이 비참해지는 그런 종류의 추위란 말이다.
바람은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날리게 하고, 사람들은 옷자락을 꽉 잡고 싸우듯이 거리를 누빈다. 앙상한 영국의 기다란 나무도 바람에 못 이기고 소리를 내면서 흔들린다.
그리고 그런 1월의 영국에,
나는 교환학생으로 영국 히스로 공항에 캐리어 두 개를 끌며 도착했다.
해외에서의 첫 한 달은 익숙함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영국은 내게 가족도 친구도 없는 갓 태어난 곳이다. 나는 이곳으로 정착을 시도했다. 빈 집에 익숙한 것들을 채워 놓으려 했다.
책상과, 침대, 서랍과 옷장, 그리고 내가 들고 온 캐리어 두 개만 있었던 황량한 기숙사. 그 안에서 짐을 풀고 친근한 책들과 이불과 베개와 향수를 진열해 놓았을 때 뿌듯함이 몰려왔다.
장을 하루에 한 번씩 보던 때를 지나, 어느새 장을 보러 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었을 때 나는 온전히 이곳을 집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꽉 찬 기숙사는 어떤 힘에도 떠내려가지 않을 안전한 요새와 같았다.
익숙함이 몰려올 때 원치 않던 감정 하나가 그 안에 함께 몰려왔다. 나는 미친 듯이 외로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 외로움에 허우적 거린다. 빈 강정처럼 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그 감정을 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다.
평소에 다니지도 않는 헬스장을 끊었다. 혼자 가면 또다시 외로울까 친구들에게 카톡을 돌리고 헬스장조차 여럿에서 뭉쳐 다녔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 교환학생의 로망이길래 마구잡이로 사람을 만나려 했다.
샤이한 코리안이 되기 싫어서일까, 나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주변에게 다가갔다. 친구는 몇몇 생겼고 우리는 몇 번을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지나지 않는 시간을 어서 지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물리적으로 누구와 함께 있어도, 내면적으로 나는 '혼자'라고 느껴졌다. 부정할 수 없는 이 감정은 분명 외로움이었다. 어느 날은 덜 외롭고 어느 날은 더 외로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영국 교환학생 기숙사에서 지낸 3개월 동안 나는 이 감정을 품고 지냈다.
외로움은 내게 대학교 전공 수업 때 얼핏 들은 실존주의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어머니의 탯줄을 잘라서 검은 흑해로 내온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슬픈 이야기를 말이다. 실존주의에서의 외로움은 말 그대로 필연적이다. 피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그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외로움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은 아니었다. 나는 한국에서 외로움을 쉽게 잊을 수 있었을 뿐이다.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라 느끼지 못하도록 고통을 마비시켰다. 집의 따듯한 온돌방에 숨어서 가족들 품에 안겨 나오지 않았다. 외로움은 따듯함에 녹아 없어진 듯했다. 나는 가족과 친구들의 품에 기대었다.
마비된 외로움으로 보냈던 20대의 초반 때문일까 마취제가 없이 다가온 외로움은 생경하기만 했다.
기댈 따듯한 온돌방이 없는 영국의 추운 1월은 감정을 놀랍도록 강렬하게 느끼게 하였다.
정통으로 맞는 새파란 바람과 같이, 내게 다가온 모든 감정들이 그랬었다.
외로움뿐이 아니라, 행복과 기쁨도 말이다.
따듯한 온돌방으로부터 달아난 뒤로 나는 정통으로 그 모든 것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짜릿할 정도로 몸을 울려 되는 음악과 온갖 언어로 불러대는 말소리들!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그런 것이다.
미친 듯이 외로운 만큼,
더 생생한 화질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