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는 하기 싫은 알콜 중독자의 절주일기 #05-2
2. 갓생 모임에 외치기
독서모임 다음으로 금주 소식을 알린 곳은 좀 신기한 모임이었다. 친목 모임으로 만나 3년 정도 알고 지냈는데 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열심히 산다는 게 저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본업도 잘하면서 꿈을 찾아 주말에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취미로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는 사람도 있다. 프랑스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아침 풋살 모임에 가는 사람도 있다. 아침 8시 반쯤 겨우 일어나 웹툰을 보며 잠을 깨우려다가 정신 차리니 한 시간째 유튜브를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출근 준비를 하는 나 같은 사람은 명함도 못 내밀 곳이다.
그 모임엔 진짜 신기한 점이 따로 있다. 바로 술을 즐기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총 아홉인데 그중 한 명뿐이라니! 아무리 요즘 금주인의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1/9명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 모임에서 나는 대표 술쟁이다. 몇 년 전에 유행이었던 ‘현실에선 ㅇㅇ이었던 내가 이 세계에서는 ㅇㅇㅇㅇ?!’식의 라이트 노벨 제목처럼 ‘다른 모임에서는 알콜 쓰레기였던 내가 이 모임에서는 대표 술쟁이?!’인 셈이다.
모임 초기, 아직 어색한 사이였을 때는 종종 술집에 가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자리에서 술을 즐긴 건 나뿐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며 서로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들 서른을 넘겼다 보니 건강을 신경 쓰며 술뿐만 아니라 밀가루, 액상과당 등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줄이는 사람도 늘었다. 자연스레 모임에서 술이 완전히 빠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얌전한 사람들은 아니다. 한번 모였다 하면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새벽 3시, 4시는 우습게 넘기며 떠들고 놀았다. 금주를 하기 전에는 그 사람들이 신기했다.
‘어떻게 술도 없이 그렇게 오래 떠들 수 있지?’
나는 카페에서 떠는 수다로는 2시간을 넘기기 힘든 사람이다.
‘어떻게 술도 없이 그렇게 할 말이 많을 수가 있지?’
나는 어색한 사람과도 술자리에서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술이 없으면 할 말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다.
‘어떻게 술자리도 아닌데 그 새벽까지 깨어있을 수 있지?’
나는 술자리에서는 새벽까지 놀 수 있어도 평소에는 11시면 눈이 감기는 사람이다.
나와는 아주 다른 사람들이라고 여겼는데 함께 어울린 지 3년이 넘어가니 나도 어느 정도 물들었다. 지난여름엔 함께 동해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여자 다섯이 저녁을 먹으러 고깃집에 갔다. 그중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하나, 다이어트로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 하나, 운전을 해야 해서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미 과반수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음주 없이 건전하게 고기만 먹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오락실에서 한 시간, 코인 노래방에서 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편의점이 문을 닫고 난 뒤였다. 동해의 편의점은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이젠 술을 사고 싶어도 파는 곳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아쉬운 마음을 고스톱으로 달랬다. 새벽까지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고 수다를 떨었다.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처음에는 좀 아쉬웠지만 같이 놀다 보니 나도 새벽까지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도파민이 팡팡 터져 나왔다. 새벽 3시가 넘어가도록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런 모임이다 보니 금주 선언을 하기 어렵지 않았다. 연말이 다가오자 단톡방에서 송년회 일정을 어떻게 할 건지, 어디서 모일건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술집에 갈 건지, 아니면 누구네 집에서 모일지, 몇 시에 모일건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이때다 싶어 고백했다.
“나 사실 금주 중이어서 혹시 술자리가 되더라도 물만 마실게.”
“세상에나!”
정말 이렇게 말했다.
“어디 아파서 그런 건 아니지?”
그동안 얼마나 맥주 사랑을 떠벌리고 다녔으면 금주 소식에 건강을 걱정하는 질문이 돌아왔다. 내가 아프지 않은 한 맥주를 마시는 이미 지였던 걸까? 이건 날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실은 오히려 감기 기운이라도 있는 날에는 알코올로 감기 바이러스를 소독하겠다며 맥주를 즐겼다. 걱정해 주는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아프지는 않아. 근데 이대로 살다가는 곧 아파질 것 같아서 금주를 해야 할 것 같아.”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엄청난 응원을 받았다. 심지어 나의 금주선언은 단톡방의 공지로 박제되기까지 했다. 논의 끝에 송년회는 그중 한 친구의 집에서 건전하게 새벽까지 수다 떠는 일정으로 정해졌다. 강아지 3마리와 사람 5명이 모일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