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0일 토요일
28살인 제자 **에게서 카톡이 왔다.
~선생님 안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라고 물으며 불현듯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음 이어질 말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00 이가 세상을 떠났어요. 지난주 주중에요. 선생님께 연락을 바로 드리지 못했어요. ~
나는 00 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교사였다. 순하고 착한 남자아이였다. 키도 크고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건강한 체격에 항상 밝게 웃었다. 같은 아파트라서 간혹 만났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면 반가웠다. 나는 폐암 수술 후 서울을 떠나 살면서 00이 얼굴을 못 본 지 오래됐다.
오늘 연락을 해 준 청년도 초등학교 1학년 때 제자다. 2년 전에 만났을 때, 00 이가 대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아빠 사업장에서 같이 일한대요,라고 말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교통사고였어? 갑자기 무슨 일이야! 라며, 차라리 교통사고라는 말이 들리기를 기다렸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들려온 말은 그랬는데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전화기로 들리는 제자의 슬픈 목소리가 끝을 흐린다.
너희도 얼마나 놀랐을까. 00 이가 그동안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나도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며칠 전 주중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제주도에 있었다. 선생님, 늦게 연락드려 죄송해요, 라며 제자는 내 마음을 다독인다.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소식을 들은 시각은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친구들과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 약속 장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식당까지 거리는 5분 정도 남았다. 걸음이 옮겨지질 않았다. 인도에 서서 울고 있는 나를 힐끗힐끗 보고 가는 사람들,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온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했다.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나 혼자 슬퍼해야 했다. 다음 날, 그러니까 오늘 제주도행 비행기 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내 옆에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 청년이 힘든 순간들을 잘 이겨내며 살아내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창 밖 하늘 위 구름을 바라보는 순간 00 이가 생각났다. 이제는 이 땅에 없다는 사실, 00 이의 부모님과 가족의 슬픔이 떠올려지며 더 괴로웠다.
내가 식사라도 한 번 사주지 못했던 게 속상했다. 반가웠지만 용기를 내 같이 차라도 마실까?라는 말을 건네보지 못한 게 가장 후회스럽다. 미안하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괜히 주책맞다고 여겨질까 봐서였다. 어른들을 향한 젊은이들의 생각이 어떤 지 몰라서다.
그래도 용기를 내 했던 말이 "잘 지내지?"였다.
**이도 1년 전에 너무 힘들어했던 제자다.
"**아, 너무 힘들면 쉬었다 다시 시작해도 돼. 그러니까 힘들면 무리하게 얽매이지 말고 잠깐 여행이라도 하고 그래. 눈앞에 보이는 게 삶의 전부가 아니란다." 나는 울며 말하고 있었다.
내 아들과 딸이 힘든 시간들을 보내왔고 지금도 보내고 있어서 그럴 거다.
나는 요즘 청년들이 안타깝다. 나는 이제 청년의 때를 지나 어른이 되었느니 다행이다. 힘이 생겼다. 이겨나갈 힘이. 그래도 순간순간 두렵기도 하다. 감당하지 못할 일이 생길까 봐서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비슷한 길을 지금의 청년들이 걸어야 한다. 삶의 내용이야 조금씩은 다를 거다. 인생길이 어디 쉽기만 한가! 그 길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순간순간 닥쳐오는 고난을 이겨내고 나면 더 큰 힘이 생긴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무너져 내릴듯한 그 상황 때문에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다 지나간다고.
1개월 전에도 또 다른 한 청년과 대화를 나누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문제가 큰 고민이라고 했다. 친구 관계에서 어느 선까지 서로 관여를 하며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 혼란스럽다고 했다.
나는 어른 멘토가 되어 주고 싶다. 청년들이 스스럼없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주고 싶다. 그런 어른으로 성숙해져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