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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람 Aug 30. 2022

누구의 고집이 이길 것인가

학생VS교사

 특수교사들이 수업자료를 공유하고, 업무 중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는 특수교사 커뮤니티가 있다. 그곳에 3년 전의 나는 질문 게시글을 하나 올렸었다.


고집이 한 번 발동되면 끝까지 고집부리는 행동,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당시에 나는 이 문제로 인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고집을 부리는 학생은 진용(가명)이었는데 앞 선 나의 글 <자폐 형아, 지적장애 동생>에서 짧게 소개했듯 진용이는 사회성이 뛰어난 아이였다. 선생님들을 좋아해 수업시간 전 교무실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렸다가 같이 수업을 받으러 올라가고, 수업 시간에 모두 알아듣지 못해도 무언가를 열심히 필기하고 절대 엎드려 있지도 않는 등 수업 태도가 굉장히 좋다고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나와의 수업 시간에 진용이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특수학급에 오자 마자 소파에 누워 "오늘은 쉴래요!"라고 하거나 느닷없이 팔 굽혀 펴기를 하며 어떻게든 수업을 늦게 시작하려고 꾀를 부리곤 했다. 그럴 때는 칠판에 '35'를 적으며 "저 시계의 숫자가 35로 바뀔 때까지만 누워있게 해 줄게. 그다음엔 바로 일어나서 수업하는 거야~"라고 시간 약속 후 수업을 시작했다. (진용이는 시간 개념을 어려워해 35분까지가 1분 후여도 기뻐하며 그렇게 약속을 했다!)


 그렇게 수업을 시작하면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진용이가 입을 절대로 열지 않는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수업이 끝날 때까지 절대로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달력을 보고 날짜를 읽고, 요일을 말하는 수업을 할 때 "진용아 오늘 날짜는 30일이야. 손으로 찾아봐!"라고 하면 정확히 찾지만 소리 내어 "30일, 화요일"이라고 소리 내어 말할 수 있게 지도하면 잘 따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만 멀뚱멀뚱 쳐다보며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이 수업 시간마다 계속되니 너무 힘이 들었고 진용이에게 화를 내보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기도 해 봤지만 전혀 나아지는 게 없었다.

 진용이 통합학급 담임선생님이나 다른 교과 선생님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해봤으나 "진용이가 그런 행동을 한다고? 우와~ 진용이가 선생님은 그래도 편하게 생각하나 보네.", "선생님이 자기 편인 줄 알아서 걔가 어리광도 부리고 그러는 거네."라며 전혀 도움도 위로도 안 되는 이야기만 하셨다.


 그러다 고민 끝에 위에 말한 특수교사 커뮤니티에 이 문제행동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고자 글을 올리게 되었고, 받은 답변은 이러했다.


아이랑 기싸움하거나 대치하다가는 진만 빠지고 아이도 선생님을 이겨보려고만 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비슷한 아이가 있었는데 하기 싫다 하면 일단 하고 싶은 걸 선택하게 하고 그래도 뭐든 싫다 하면 그럼 앉아있는 연습 하자 하고 그냥 두었어요. 하고 싶어지면 알려달라고 선생님은 언제든 너와 같이 공부하고 싶고 너를 돕고 싶다 하면서 흥미를 끌만한 교재나 교구들을 앞에 놓고 기다렸어요. 이때 아이와 힘겨루기 하듯 마주 앉아 대치하는 게 아니라 다른 아이와 재미있는 활동을 하거나 다른 아이의 수업에 집중했어요.  공부 시간에 공부하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놀거나 자유롭게 시간을 주는 게 아니라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면 아이가 재미없고 힘들어 처음에는 저항의 의미로 한 시간 내내 버티다가도 차츰 고집이 줄더라고요. 어쨌든 말이 통하거 선생님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는 아이라면 공부 안 하면 너만 손해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 하는 배짱도 필요해 보여요. 체벌도 아니고 방치고 아니고 바르게 앉는 연습이니 문제 될 건 없다 생각해요. 기싸움은 하지 마세요. 선생님 열받는 모습 아이가 더 통쾌해합니다.


 '아! 내가 언제부턴가 진용이와 기싸움을 하고 있었구나..'를 깨달았고, 답변을 달아 준 선생님처럼 왜 ‘이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 ‘이 고집을 어떻게 꺾어줄지’에만 집중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답변을 받은 후 아이의 마음에 집중을 하니 그 문제행동은 얼마 안 가 사라졌다.


 이름 모를 익명의 선배 특수교사에게 한 수 배운 후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원인을 파악해보려고 애썼다. 물론 쉽지 않았고, 아이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는 없었지만 진용이를 통해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듣는 법을 배우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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