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하는 계산법
작년 1월 나는 결혼을 했다. 그러면서 10년 넘게 살아온 전주를 떠나 수원으로 이사를 왔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고 기쁘기도 했지만 막막하기도 했다. 결혼 후 타지로 떠나면 남편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만 기다려야 하는 것이 외롭고 괴로워 우울증세를 겪고 있다는 사람이 많다고 이야기하며 겁을 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결혼 후 바로 일을 하지 않을 계획이었기에 더더욱 집에 있는 것 외에는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없었고, 그로 인해 괜찮겠냐며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MBTI 검사를 하면 I가 100%가 나오는 완벽한 집순이이다. 전주에서 살 때는 I임에도 늘 약속이 많아 체력이 방전된 채 집에 돌아와 혼자만의 시간을 잘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 후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는 것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 많던 퇴근 후의 약속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기가 쏙쏙 빼앗길 일도 없으므로 ‘하고 싶었던 걸 하고 배우고 싶은 걸 배우자’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주중에는 영어회화 학원도 다니고 맛있게 요리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 바빴고, 주말에는 집들이로 지인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정신없는 6개월을 보냈다. 그런데도 남편이 없는 평일 낮 시간에는 외로움이 찾아왔다. 집안일을 하고, 좋아하는 드라마와 예능을 보며 시간을 보내도 공허함이 찾아왔다. 남편이 없는 낮 시간이었기 때문에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전화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계획과는 다르게 조금 더 빨리 기간제 교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스무 명 정도의 직장 동료와 함께 근무를 하고 있다. 그동안의 사회생활에서 직장 동료는 동료일 뿐 사적으로 가깝게 지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에 같이 일하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여있고 다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성향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선생님이 있고, 또 성격이 비슷하진 않지만 호감이 가 친해지고 싶은 선생님도 있어 내가 생각했던 관계보다 조금 더 가깝게 잘 지내고 있다.
그러다 지난 주말, 거의 반년만에 친구를 만났다. 수원까지 나를 보러 오는 것이었는데 친구를 만나기 전 어디를 데리고 가 구경을 시켜줄지 고민하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는 건데 어색하지는 않겠어?” 사실 그런 걱정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남편의 말대로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글쎄.. 아닐 거 같은데?”하고 말았다.
남편의 걱정과는 달리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너무 편안했고, 주말 약속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이지만 그 시간은 선물과도 같았다. 친구와 만나면 늘 하는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나 직장에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그리고 시댁 이야기, 임신 준비에 관한 이야기, 요즘 관심사나 고민에 대한 것들까지 아무리 수다를 떨어도 시간이 모자를 지경이었다.
‘직장동료와도 장난치고 이야기하며 지내는데 왜 이런 편안함은 없는 걸까?’
내가 생각한 바로 직장동료와 친구와의 차이점은 ‘계산’이다. 동료를 대할 때는 나도 모르는 새 계산을 하고 있다. ‘내가 지금 하는 이야기가 TMI는 아닐까?’, ‘근무 시간에 자꾸 말 시킨다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저번에 한 번 도와주셨으니 내가 이번엔 도와드려야지.’와 같은 것들을 생각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피곤하게 따지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건 나의 성향상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생각들이다.
반면 친구와 함께 할 때는 이런 잡생각들이 필요가 없다. 내가 하는 얘기는 TMI가 아닌 나의 근황이며 심지어 친구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내게 들려준다. 오랜 시간 친구였기에 성격을 무척 잘 알고 있어 서로 어디까지 배려하고, 어느 정도가 친구의 ‘선’인지 잘 알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하더라도 학창 시절로 돌아가 거리낌 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친구들이기에 더욱 마음이 편하다.
소중한 친구 덕에 위로를 받은 지난 주말이었다.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