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의 학생들
무작정 기간제 특수교사 자리에 지원을 해 합격하여 출근을 하게 된 학교는 출퇴근 거리가 왕복 1시간 반 정도 되는 시골 중학교였다. 1학년 3명, 2학년 3명, 3학년 7명 총 13명으로 교직원 수가 전교생 수보다 많은 학교였다. 그중 내가 가르칠 학생은 두 명이었는데, '3학년 자폐 세형이, 2학년 지적장애 진용이'이었다.
(내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자폐 형아, 세형이 이야기
세형이는 혼자서 시내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등교를 할 만큼 똑똑한 아이이다.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을 좋아하고 애매모호한 국어를 어려워하는, 시간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자폐 학생.
그는 수업 시작 종이 치면 달려와 뒷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하고 큰 소리로 인사한 후 자리에 앉아 책을 펴고 나를 기다렸다. 내가 장난을 치고 싶어 세형이를 모른척하고 일어나서 반기지 않으면 그 아이는 내 존재를 잊은 듯이 좋아하는 책을 펴서 읽을 뿐이었다.
세형이의 1학년 시절 이야기를 들었을 땐 마음이 아팠다. 같은 반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거였다. 세형이는 시내의 중학교에 진학을 했어야 했지만 그의 부모님이 세형이가 괴롭힘을 당할까 싶어 시골 중학교로 입학을 시킨 것이었는데, 시골이든 어디든 장애학생들이 학창 시절을 보내기에는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 당시 세형이가 3학년이라 그를 향한 괴롭힘이 이미 다 지나간 일이었지만 세형이와 같은 반 학생들이 지나가면 괜히 그 아이들이 미워 보여 흘겨보기도 했다.
얼마 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영우의 학창 시절 속에서 세형이의 모습이 보였다. 세형이는 고등학교에서는 괴롭힘 없이 잘 지내고 있을까? 세형이에게 국어나 수학이 아닌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처하는 법>, <친구 사이에 할 수 있는 부탁의 종류와 거절하는 방법> 같은 것을 가르쳤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문득 마음이 아려왔다.
지적장애 동생, 진용이 이야기
진용이는 사회성이 뛰어난 아이였다. 선생님이 무거운 짐을 들고 가면 달려가 문을 열어드리고, 다른 선생님께 받은 소중한 간식을 뜯은 후 꼭 나에게 '먼저 드실래요?'라고 물어보는 따뜻한 아이였다. 어렸을 때 언어 훈련이 잘되지 않아 말을 어눌하게 해 처음에는 진용이의 말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마치 내가 통역사라도 된 듯 그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게 되어 진용이의 말을 듣고 다들 나를 쳐다보곤 했다.
진용이는 그 동네 토박이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와 함께였기에 언제나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다. 진용이는 종종 대변 실수를 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너무도 익숙하게 같은 반 아이가 뛰어와 "진용이 똥이요!" 하고 알린 후 고약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뒤처리를 도와주었다. 그럴 때진용이는 머쓱해하며 '히히-'하고 웃었는데 실수를 했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는 해맑고 순수한 웃음이었다.
가끔 그 순수한 웃음이 생각난다. 꾸며내지 않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그 아이의 말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