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THE FAR EAST IN ASIA (EP14)
ser dejado de lado
점점 어둠이 내리고 진주성( 晋州城) 외곽에 위치한 고요한 교방은 마치 그림자처럼 숨어버린다. 무슨 기구한 운명이라 여기 진주성 아니 진주목 (晉州牧) 교방까지 끌려와 기생이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하는 스스로
상념에 빠져있다.
진주성은 거대하고 웅장했으나, 그 안에 흐르는 기운은 나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 싸늘함은 단순히 한겨울의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엔 사람의 숨소리조차 얼어붙게 만드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진주성 깊은 곳, 남들이 잘 찾지 않는 한 구석에 작은 방에 나는 앉아 있었다. 방은 천장이 낮고 벽은 습기로 얼룩져 있었다. 방 안엔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로 들어오는 찬바람은 칼날처럼 예리했다.
창틀에 서리가 얹힐 때마다 그 서리의 날카로움은 방 안의 열일곱 살 밖에 안된 나에게 두려웠다
나 서현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여기서는
화심(花心)
이라는 삼패기생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화심이라... 한숨이 절로 나온다 꽃의 마음이라.
아비가 항상 지혜롭고 덕이 있는 사람이 되라고
서현(瑞賢) 이러고 지어주었는데 난 왜 화심이 되어 여기에 앉아 있는 걸까?
서현은 온몸을 웅크린 채 얇은 거적데기 하나로 추위를 막아보려 애썼다. 이방의 한마디에 그녀에게 아전이고 하인이고 아무것도 내주지 않았다. 끼니는 하루 한 끼, 그것도 주로 찬밥과 물김치였다.
하지만 서현은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다른 무엇보다도 강렬한 결의를 품고 있었다.
서현은 이 년 전, 자신의 가문이 안동 김 가문의 음모에 의해 몰살당한 것을 기억했다. 서현의 아버지는 성실한 학자였고 그리고 초충도(草蟲 圖)를 그리기 좋아하던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분이었다, 부와 재물 보다도 새로 발견한 풀벌레들을 좋아했던 아버지, 살아생전 한양에서 안동김 씨 일족들 밑에서 벼슬살이가 없다던 아버지는 한양 가는 길이 실어 소달구지에서 혀를 깨물었나 보다. 솟구쳐 나오는 피는 추운 엄동설한에 얼어 입에 한주먹이었다는데 우리 불쌍한 아버지는 어이할꼬.
어머니는 충청도 토박이 양반 가문의 장녀 출신이었고 생면부지 아버지를 처음 만나 첫눈에 풀벌레에 관심이 많던 호기심 어린 개구쟁이 모습에 반해서 시집온 어머니. 여타 다른 양반들 탐관오리(貪官汚吏)
질하며 매관매직(賣官賣職)하며 백성들 고혈(膏血)을 짤 때 집에 쌀이 떨어져도 외갓집에 가 자기보다 어린 남동생에게 눈치를 보며 빌려온 쌀로 집안을 이끌어 나가시던 우리 어머니.. 벼슬 안 한다는 타박 하나 없이 아버지가 새로운 풀벌레를 발견해서 오시면 같이 좋아하시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충청도 지역 탐관오리의 악행을 낱낱이 적어 올린 상소가 나라님한테 가지도 못하고 안동김 씨 일가에 의해 충청도 천주쟁이 수괴라고 역모를 뒤집어 써져 아버지가 관군들에게 개 패듯이 맞아 오라줄에 묵이던 순간, 어머니는 일면식이 있던 포졸들에게 옷가지라고 챙겨 오겠다고 부탁하고선 방 안에서 목을 매어 앞으로 생길 일에 대한 예견이라도 한 듯 세상을 떠나셨다.
부모님의 죽음은 너무도 참혹했고, 그 배후에 안동김 씨 일당들이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서현은 그날 밤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연행. 엄청난 충격아래 주저앉아 한걸음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이 기울어져가는 양반집에 유일한 노비였던 박가네 여식이었던 서단이는 비슷한 연배였던 나에게 벗이자 외동딸이었던 나에게는 형제와도 같았다
"아씨. 나랑 얼른 도망갑시다. 여그 있으면 다 죽어유."
"설단아. 나 말이여, 지금 걷지를 못하겄어. 모든 게 무섭단 말이여.""
" 너라도 도망쳐라 설단아. 너라도 도망쳐서 살아라"
" 아씨... 제가 어찌 아씨를 두고 가여"
난 힘껏 설단의 뺨을 갈겼다
" 어서 가라고 이년아. 넌 이젠 우리 집 노비가 아니여"
" 아씨! 아씨! "
그 난리 이후 양반집 규슈에서 천한 관기가 되기까지 벌써 두 해가 지나오면서 나는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인지 곧 깨달았다.
복수. 그녀의 몸을 지탱하는 것은 오직 그 하나였다. 서현은 울지 않았다. 그녀는 슬픔을 복수의 불길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 불길은 날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타올랐다.
억지로 잔치에 나올 때마다 탐관오리들과 졸부들은 그녀를 무시하거나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의 냉대는 서현의 복수심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불길에 휩싸여 하나씩 무너져 내리고 있던 내가 살던 고향집을 생각하던 서현의 얼굴에는 슬픔에 찬 미소가 그리고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가녀린 몸을 에워쌀 때, 갑작스러운 인기척으로 눈을 떴다
" 화심이 있나? 아니 화심아기씨 있나"
" 죽지 않았으면 인기척이라도 하랑께"
하루에 한 끼 주는 교방 관노비이다. 오늘부터 하루에 두 끼를 주나 잠시 내심 기뻐해본다. 배고프다 무지..
일부러 개미 죽어가는 목소리로
" 화심이라 부르지 말게"
" 밥이랑 찬은 밖에 두게"
라며 슬며시 문지방을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