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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석빈 Nov 05. 2024

사슴의 뿔 "үe" (8편)

재회 (Дахин уулзах)

4월의 찬 기운이 감도는 바이칼 호수 근처, 소오르 족장이 이끄는 부라트족 본진은 오랜 원정의 끝으로 본진으로 속속 복귀하였다.


  원정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소오르 족장은 부하들과 부족원들에게 전리품을 분배하고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왔다.


  원정의 기세를 등에 업고 소오르는 당당히 입성했지만, 그의 마음은 어딘가 묵직했다. 그의 눈길은 돌아오자마자 부인 바수가에게 향했으나, 오랜만에 만난 부인의 시선은 차가웠다.

장인인 사산이 동맹 부족의 족장인 만큼 결혼은 정치적인 동맹의 의미가 컸다. 족장은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바수가의 관계가 소원해진 걸 느끼며,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한 감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소오르가  부인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의 옆에는 여주술사 사가르가 있었다. 정벌에 동행하며 소오르의 병간호와 부적을 준비해 주었던 사가르소오르는 종종 밀회를 가졌다.


사가르는 예언의 목소리를 지닌 존재로, 고요한 밤마다 숲 속에서 두 사람만의 만남이 이어졌다. 사가르는 묘하게도 다른 이들과는 달리 소오르을 의심 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언제나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그녀의 깊고 검은 눈동자에 소오르는 어느새 매료되고 말았다.


소오르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가르의 존재가 커져감을 느꼈다. 그녀는 단순한 주술사가 아니라, 그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의 피로가 쌓인 저녁, 족장은 아무도 모르게 사가르게르를 찾았다.


 사가르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그녀는 소오르에게 조용히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전쟁으로 인해 거칠고 찢어진 상처투성이였지만, 그녀는 마치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의 손끝을 조심스레 감싸주었다.

"새벽인데  이제는 떠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사가르는 속삭였다.


"너를 떠나기란 쉽지 않군, " 족장이 답했다.


게 부탁이 하나 있어,” 소오르사가르의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가르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침착하고 예리했다.


“말씀하세요, 족장님,” 그녀가 속삭였다.


“전 정벌 때 나를 저주했던 여인을 기억하겠지.” 소오르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순간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녀는 예전 첩이자, 그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던 발펠마. 소오르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과거에는 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었던 첩보장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관계는 산산이 부서졌고, 그녀는 소오르에게 끔찍한 저주를 내렸다. 그 이후로 정벌 도중 소오르는 병마에 시달려왔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 소오르는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아.”


사가르는 족장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소오르의 과거와 그의 내면에 숨겨진 상처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내리는 결정이 단지 복수가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한 것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그녀의 위치를 찾아드리겠습니다.” 사가르는 눈을 감고 낮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차가운 땅 위에 닿자, 대지의 기운이 그녀의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듯했다. 눈을 감은 채 그녀는 자신만이 아는 영혼의 세계로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자, 사가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는 한순간의 공포와 놀라움이 비쳤다.


“그녀는 아직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그리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가르의 목소리가 떨렸다.


소오르는 깊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말을 되새겼다. 그의 눈빛은 예전과 달리 결연하고 확고했다. 과거의 그림자를 정리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마주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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