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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 Nov 19. 2023

두리안, 제대로 먹어봤나?

태국 vs 말레이시아 두리안 200% 즐기기


고통스러웠던 첫 두리안의 기억


홍콩에서 살던 20대 초반 시절, 태어나 처음으로 두리안을 먹어본 내 머리 위엔 커다란 물음표가 하나 떠올랐었다.

마늘이랑 양파를 섞어서 삭힌 것 같은 맛이 나는 이런 달달한 덩어리가, 도대체 어째서 과일의 왕이라는 거지..?

그리고 나는 그다음 날까지 삭힌 마늘+양파 향의 거북스러운 위력을 온몸으로 체험해야만 했다. 두리안 과육이 내 소화기관을 훑고 지나가며 모공을 포함한 내 전신의 구멍들을 (!) 통해 그 낯설고 농도 짙은 향기를 내뿜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자연스럽게 나는 두리안을 찬양하는 이들은 단체로 어떤 최면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는 편파적인 결론에 다다랐다.


물론 그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내가 언젠가 태국에 살게 될 것이고, 두리안이 내 최애 과일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훗날 내가 말레이시아라는 나라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너무 맛있는 두리안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몽땅.


반전: 태국에 산지 1년 만에 나는 두리안 덕후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껍질을 깨고 나오는 두리안 스티커를 보며 용기를 얻는 지경에 이르렀다.





태국에 사는 나에게, 말레이시안 두리안이란?


말레이시아에서 처음으로 두리안을 맛보았을 때는 이미 태국에 산지 몇 년이 지난 뒤였다. 때문에 슬그머니 내 가슴속에 스며든 두리안을 이미 먹어볼 만큼 먹어본 나였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맛본 두리안의 그 첫 한 입은 내가 이전까지 태국 두리안에서는 맛볼 수 없던,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머릿속에 종이 댕댕댕- 하고 울리면서, 이 전에 말레이시아계 호주인 동료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말레이시아 두리안의 우월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순간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두리안의 멋짐을 모르던 과거의 나는 '과일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하며 썩은 동태눈깔을 하고 허공이나 쳐다봤더랬지.


그의 말이 맞았다. 말레이시아의 두리안은 마치 태국 두리안을 농축해 놓은 것처럼 진하고, 달고, 부드러웠다. 이건 차차 알게 된 사실인데, 말레이시아에서는 더 다양한 종의 두리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데다 가격대도 그만큼 다양해 저렴한 것부터 아주 비싼 두리안까지 경험해 볼 수 있다. 게다가 두리안 전문점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접근성까지 좋으니 말 그대로 취향 따라 입맛 따라 두리안을 골라먹기에 훨씬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요약하자면, 만약 내 삶이 두리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인생이었다면 나는 방콕이 아닌 쿠알라룸푸르에 살았을 것이다. (아무 말)


말레이시아의 두리안 전문점 DKing 한편에 열여섯 가지 두리안 종들이 소개되어 있다.
카드를 뒤집으면 이름, 원산지, 맛의 특징, 제철 시기 등 각 두리안 종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두리안 철


태국에서 재배되는 두리안의 가장 싱싱하고 맛있는 제철은 짧게 4월에서 8월까지다. 하지만 이 시기를 벗어나서 태국에 간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시기에 상관없이 백화점 식품관에서는 일 년 내내 두리안이 판매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제철 기간에는 길거리와 시장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두리안을 맛볼 수 있고, 제철이 지나면 백화점에나 가야 볼 수 있다는 정도다.

10월경 방콕의 한 슈퍼마켓에 진열되어있는 두리안. 킬로당 1,450밧 (약 5만 3천 원).

말레이시아의 두리안 철은 태국보다 좀 더 긴 편이다. 서쪽 말레이 반도와 동말레이시아의 두리안 시즌을 전부 합치면 대략 5월부터 9월 그리고 11월-2월까지, 그러니까 거의 일 년 내내 싱싱한 두리안을 먹을 수 있다. 두리안 철을 벗어난 때에는 '이 정도면 비싸도 먹을만하다' 싶던 두리안들은 쏙 들어가고, 훨씬 비싼 가격에 나오는 생두리안이나 제철 기간 생두리안을 살 수 있는 가격에 냉동 두리안을 구매할 수 있다.






두리안, 어디서 사 먹나?


태국 방콕에서는 백화점 식품관, 슈퍼마켓, 시장, 배달앱 (그랩) 등에서 두리안을 사 먹을 수 있다. 가격은 내 경험상 대략 100g 당 100밧(약 3,700원)을 기준선으로 잡고 그 아래면 저렴한 편, 그 위면 비싼 편이라고 친다. 종종 배달앱에서 1kg에 800밧 (약 3만 원) 내외로 주문할 수 있으면 만족스러워하는 편. 한창 두리안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는 동네 시장에서 100g당 60밧(약 2,200원) 단위에 사다 먹기도 했다.

방콕에서 배달앱으로 주문한 두리안 1kg어치. 아주 탱글 하고, 먹음직스럽다.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도 방콕과 다를 바가 없이 백화점 식품관, 슈퍼마켓, 시장, 배달앱 등에서 두리안을 구입할 수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차이점은 오로지 두리안만을 취급하는 가게들을 도시 곳곳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가게들은 포장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마치 횟감을 고르듯 원하는 두리안을 골라 무게를 달아 계산을 하면 그 자리에서 싱싱한 두리안을 쪼개 플레이팅 해준다. 싱싱한 두리안을 테이블에 앉아서 곧바로 즐길 수 있고, 다양한 현지식 음료 및 디저트도 함께 판매하는 두리안 전문 디저트 카페/식당들인 셈이다. 개중에는 두리안 테마파크처럼 꾸며져 있는 곳들도 있어 두리안으로 만든 가공식품들과 기념품을 구매할 수도 있으니 두리안 덕후들이라면 절대 쿠알라룸푸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경험이다.


이렇게 진열되어 있는 다양한 종의 두리안들 중 맘에 드는 녀석을 골라 무게를 달아 구입하면 된다.
무게를 달고 계산을 마치면 그 자리에서 두리안을 열어 테이블로 가져다 준다.
플레이팅 해 테이블로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자태의 두리안. 비닐장갑을 끼고 얌냠 먹으면 된다.
그냥 일반 카페에 가듯 친구/가족들과 함께 두리안을 즐기는 쿠알라룸푸르 시민들. 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광경이다.
혼자 방문해 두리안에만 집중하는 시민분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그랩 (음식 배달 앱)으로 주문한 두리안.




어떤 두리안 종이 유명하고 맛있나?


태국에서는 몬통, 깐야오, 챠니 등 여러 가지 두리안 종을 재배하는데, 이 중에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종은 단연 몬통 두리안이다. 중국과 북미에 수출되어 유통되는 두리안 중 바로 이 태국의 몬통 두리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몬통 두리안은 너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맛과 향이 특징적이다. 덕분에 처음 두리안을 맛보는 사람들도 크게 호불호 없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맛이다. 또 말레이시아의 두리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식감이 드라이한 느낌도 있는데, 여기에서 어느 정도 과육의 식감이 살아있는 것을 좋아하는 태국인들의 선호도를 알 수 있다.

태국 두리안은 과육 표면이 매끄럽고 말레이시아 두리안에 비해 드라이하고 단단한 편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위에서 말했듯 태국에서보다 더 다양한 두리안 종들을 이리저리 비교해 보고 취향에 따라 골라먹는 색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종으로는 무상킹, 블랙쏜, 우당메라, D24, XO 두리안 등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태국 두리안에 비해 더 진하고, 더 달고, 더 크리미한 편이다. 태국의 몬통 두리안을 선호하는 이들이 먹었을 때 "너무 진하고 달다"라고 할만한 그런 맛. 나에게는 최고였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수많은 두리안 종들 중에서도 무상킹 두리안이 왕 중의 왕이라 불리며, 가장 비싸게 팔린다. 여타 저렴한 종에 비해 두 배 이상 가격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맛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에 따라 갈리겠으나, 나는 비싸다고 무조건 맛있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종을 한데 펴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본 결과 나와 지인들 모두 각자 제일 맛있다고 느낀 두리안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랩으로 배달시킨 두리안. 왼쪽부터 차례로 우당메라, XO, 무상킹.


개인적으로 그중에 눈을 가리고서도 '이건 내가 알던 두리안과 다른 독특한 맛이다!' 싶어 내 가슴에 내려 꽂힌 종들은 불그스름한 과육에 우유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나는 우당메라 (udang merah, 붉은 새우라는 뜻), 그리고 알코올의 쌉싸름한 맛이 나는 XO - 이 두 가지였다.


XO 킬로당 35링깃 (약 1만 원) / Butter King 킬로당 37링깃 (약 10,500원) / Red Prawn 킬로당 38링깃 (약 10,800원)
이 날 내 픽은 우당메라와 버터킹. 무게를 다니 각각 58링깃과 41링깃으로 총 99링깃이 나왔다. (약 28,000원)
아름다운 자태의 두리안. 우당메라 (Red Prawn)는 약간 씁쓸하고 향이 독특하다. 버터킹은 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두리안과 상당히 비슷한 맛이다.





쿠알라룸푸르 여행 계획이 있는 두리안 덕후들 또는 두리안이 궁금한 이들은 아래 두 곳 중 하나에 방문해 두리안을 온몸으로 즐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두리안킹 쿠알라룸푸르 SS2 지점


Durian BB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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